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우리는 모두 최고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생각하며 사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결정됩니다. 성경은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권합니다. 그리스도인(Christian)이면서도 자신의 정체성과 예수님을 별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사람입니다. 예수로 보고 듣고 선택하고 결정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은 ‘이름’의 변화가 아닌 ‘인격’의 변화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환경’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관점이 바뀔 뿐입니다. 추상적으로 믿을 것이 아니라, 삶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인격적인 관계에서 바라보고 생각하십시오. ‘거룩한 형제들’은 하나님 나라의 부르심 가운데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인격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을 불러 주셨기 때문입니다. 부름 받은 우리는 이제 하늘의 거룩한 것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상황과 목표를 바라봅니다.
‘거룩함’조차 욕망이나 야망으로 대하지 않습니까?
영적인 것을 추구할 때 조차 우리는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뜻을 잊을 때, 거룩한 사명조차도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늘 하나님의 본의와 본심을 기준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사랑’의 동기를 잊고, 법령만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내 생각을 예수님께 고정하십시오(Fix your thoughts on Jesus)!
예수님께 우리 시선과 생각을 고정할 때만 하나님 나라가 보입니다. 볼 수 있어야 하나님 나라를 향해 달려갈 수도 있습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시 62:5). 예수님을 바라보면 베드로처럼 물 위를 걸을 수 있지만, 바람을 바라보면 물에 빠지게 됩니다(마 14:29-30).
나는 예수님께 시선과 생각을 고정하고 있습니까?
❶ 주님께 나의 시선을 고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❷ 지금 내 시선이 고정된 곳은 어디입니까?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생각하며 사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결정됩니다.
❶ 관련 칼럼 – 향기 : 내 몸에 밴 영성 냄새일까 향기일까 (국민일보 더미션 / 이지현 국민일보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과학자들은 인간의 뇌에 냄새 또는 향기의 추억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인용되는 것이 ‘프루스트 현상’이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어느 겨울날 홍차에 마들렌 과자를 적셔 한입 베어 문 순간, 어릴 적 고향에서 고모가 내어주곤 했던 마들렌의 향기를 떠올렸다.
그 향기의 기억은 그의 대표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집필로 이어졌다.
잠 못 이루는 밤, 주인공은 마들렌의 향기를 통해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사도 바울은 신앙인들을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불렀다.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 2:15) 목회자들은 “신앙인들은 예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을 드러내는 곳에서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지 않는다. ‘나’라는 인간적인 냄새만 풍기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화가 조르주 루오는 “의인은 향나무 같아서 그를 찍는 도끼에도 향기를 묻힌다”라고 말했다.
향나무는 도끼에 찍혀도 향을 품어낸다. 그리스도인의 향기는 시련과 박해 속에서 더 아름다운
향기를 품어 낸다.
상처에서 향기가 나는 사람이 있다. 수년 전 한국을 방문했던 닉 부이치치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 저를 괴롭힌다면 똑같이 괴롭힐 수 있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아요.
그들에 대한 연민을 품고 있거든요. 저를 괴롭히더라도 사랑한다고 말하죠. 그들이 ‘뭐?’ ‘왜?’ 라고 놀립니다. 그래도 저는 ‘사랑해 그리고 너는 충분히 멋진 사람이야 나를 괴롭힐 필요가 없어’라고
말했더니 괴롭힘이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팔다리 없이 태어났지만, 장애를 극복하고 수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전하는 닉 부이치치의 이야기이다.
그의 생각은 살아계신 주님과의 관계를 통해 가능하다. 개인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닉 부이치치에게서 나오는 향기는 그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나는 향기이기 때문이다.
향기는 소리없이 움직인다. 향기는 머물러 있는 곳에 선한 영향을 미친다. 성경은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 2:14)라고 말한다.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란 무엇인가. 이에 대해
목회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밀함과 깊은 교제, 만남을 통해서 드러나는 삶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즉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통해 드러나는 삶의 방식과 성품이 향기이다.
좀 더 나아가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된 삶을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표현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 5:2)
생선을 싼 종이에서 비린 냄새가, 향초를 머금은 종이에서 향기가 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느냐에 따라 코를 막아야 하는 냄새가 될 수도, 아름다운 향기가 될 수도 있다.
같은 환경 속에 살아도 독기를 품고 분노하고 우울한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향기를 품기 어렵다.
반면 온화한 마음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을 품으면 향기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내 안에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 향기가 될 수도 악취가 될 수도 있다. 나의 영성은 향기인가?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환경’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관점이 바뀔 뿐입니다.
❷ 관련 설교 – 2013 풍성한 삶의 원리 6. 태도의 문제다!
아주 좋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헤비급 권투 챔피언이었던 진 터니(Gene Tunney)라는 사람은 1차 대전 중에 양 주먹이
부서졌습니다. 더 이상 권투 선수로서 강펀치를 휘두를 수 없었습니다. 그의 주치의이자 매니저였던 사람이 더 이상 권투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전 시합에서 쓰던 권투의 패턴을 바꾸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늘 강펀치로 이겨왔는데, 이제는 기술적으로 머리를 쓰는 권투를 구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바삐 움직이면서 점수를 따내고, 요리조리 교묘히 빠져나갔습니다. 그런 새로운 작전으로 그는 세계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저는 종종 신앙생활을 하면서 인생의 위기나 중요한 순간을 지날 때,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들을 봅니다. 대학에 실패했다는 이유 때문에 신앙을 멀리하기도 합니다. 사업에 실패했기 때문에, 건강을 잃었기 때문에 우리 신앙이 소홀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탄의 방식은 이런 위기 가운데서 우리가 ‘포기’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삶의 환경이 우리를 포기하도록 몰아갈 때, 우리는 삶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하나님의 방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하나님께 붙들려 사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묵상하며 결단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뜻을 잊을 때, 거룩한 사명조차도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❸ 관련 도서 – 『아직 끝나지 않은 길』 (레슬리 뉴비긴 저, 복있는 사람, 2011.07.13.)
레슬리 뉴비긴 선교사는 인도 선교사로 떠났을 때, 선교사와 현지인의 서로를 대하는 모습에서 문제점을 발견했었습니다. 당시 교회가 하나의 종교기관으로 변모하고, 종교적 욕망의 도구로 타락하면서 서구의 선교사들은 현지인들을 대하며 상대적 ‘우월감’에 빠져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래 내용은 뉴비긴의 자서전 『아직 끝나지 않은 길』의 한 대목입니다.
“우리가 맨 처음 받은 충격이 시골의 아름다운 풍경 때문이었다면, 두 번째 충격은 선교사들과
인도인 동료들 사이의 관계로부터 왔다… 당시 내가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를 보여주는 예로,
내 일기장 한 대목을 인용하면 이렇다. ‘선교사들과 인도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혐오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신약성경으로부터 너무나 동떨어진 듯이 보인다. 그들과 함께하고
그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그들을 영적으로 도와주는 모습이 전혀 없는 것 같다. 격려의 말 한 마디 건네는 일도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주인처럼 자동차를 몰면서 길에서 다른 모든 사람에게
진흙 세례를 주고 일종의 감사를 실시하여 모든 잘못을 들춰내고, 모든 사람의 역량을 시험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차렷 자세를 취하고, 나리(Sir) 하면서 존칭어를 사용한다. 참으로 끔직한 일이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베드로처럼 물 위를 걸을 수 있지만, 바람을 바라보면 물에 빠지게 됩니다(마 14:29-30).
❸ 관련 칼럼 – [겨자씨] 목표가 분명한 인생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미국의 매슈 에먼스는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줬습니다. 그는 소총 3자세 결승전에서 2위와 격차가 한참 벌어져 과녁을 맞히기만 해도 무조건 금메달을 딸 수 있었습니다.
에먼스는 마음을 가다듬고 과녁을 겨냥한 다음 격발했습니다. 총알은 과녁 정중앙을 뚫고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과녁을 맞혔다는 효과음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가 맞힌 과녁은 다른 선수의 것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다 잡은 금메달을 놓치고 8위로 떨어졌습니다.
에먼스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도 마지막 순간 실수를 했습니다.
남자 50m 소총 3자세 결승전에서 아홉 발까지 선두로 나서다가 최종 한 발에서 결정적 실수로
4위로 추락했습니다. 그의 사격 솜씨는 대단했으나 목표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게 문제였습니다.
그의 인생에 불운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경기가 끝난 뒤 체코 여자 대표팀 소속으로
금메달을 딴 카트리나로부터 위로를 받았습니다. 두 사람은 2007년 결혼했습니다. 사격대회의
과녁은 잘 맞히지 못했지만 큐피드의 화살만큼은 제대로 맞힌 셈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인생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녁을 향해 총을 쏘듯 집중력을 갖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박성규 목사(부산 부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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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영생도록 최고의 삶을 살기를 추구합니다.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생각하며 사는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결정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삶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인격적인 관계에서 바라보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것을 추구할 때도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뜻을 잊을 때 거룩한 사명조차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늘 하나님의 본의와 본심을 기준으로 삼으십니다.
그러므로 내 생각을 예수님께 고정시켜야 합니다. 예수님께 우리시선과 생각을 고정할 때만 하나님 나라가 보입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시62:5) 예수님을 바라보면 베드로처럼 물 위를 걸을 수 있지만 바람을 바라보면 물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오직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믿고 겸손과 온유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고정시켜 배우므로 말씀의 영이신 성령의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을 통하여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이 땅위에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는 천국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아 예수님을 바라보고 생각하며 시선을 고정시켜 예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알고 깨달아 진정한 믿음으로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삶이되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나요한 목사님 설교 중에 나실인이며 사사인 삼손이 정작 보지 않아야할 것들에 함몰되어 어쩌면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눈이 뽑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시선"이라는 찬양을 부르며 내게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눈을 들어 하나님의 일을 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성경은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권합니다. 그리스도인(Christian)이면서도 자신의 정체성과 예수님을 별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가끔 그렇게 살지 않았나 회개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사람입니다. 예수로 보고 듣고 선택하고 결정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은 ‘이름’의 변화가 아닌 ‘인격’의 변화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환경’이 바뀌지는 않지만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관점이 바뀔 뿐입니다.
삶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인격적인 관계에서 바라보고 생각하는 복된 삶을 살기 원합니다.
히브리서 3장1절.
열심히 살았다고 착각할 때가 있다
그 열심은 내 욕망이였다.
하나님 안에서 열심은 행복이여야 하지 안을까?
하나님께 시선 고정이
주님의 뜻을 분명히 알아야 함을
깨닫는 아침입니다.
시선, 내 욕망의 시선이
되지 않게 인도해 주시고
일상 가운데서 주님의 향기가
있게 하소서.
오늘 하루 주님께 시신을 고정하고
시련도 향기롭게 극복하는
주님의 영성을 닮게 축복하여 주옵소서.
할렐루야 찬양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