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호렙에서 이스라엘 자손과 세우신 언약 외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여 모압 땅에서 그들과 세우신 언약의 말씀은 이러하니라 2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소집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너희의 목전에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행하신 모든 일을 너희가 보았나니 3 곧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 눈으로 보았느니라 4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5 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광야에서 인도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아지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6 너희에게 떡도 먹지 못하며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못하게 하셨음은 주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7 너희가 이 곳에 올 때에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이 우리와 싸우러 나왔으므로 우리가 그들을 치고 8 그 땅을 차지하여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나니 9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을 경험하고도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반어적인 표현입니다. 홍해의 기적과 광야에서 샘을 내신 기적과 만나를 주신 기적을 보고도 믿지 못하는 백성들을 책망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거나 능력을 보이지 않으신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보려 하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스스로 인생의 키를 쥐려 했습니다.
자기 지식이나 경험을 가지고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며 판단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인생의 항로에 대해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출 14:11). 내 마음대로 키를 잡고 목적지를 바꾸려 했습니다. 하나님을 보는 영적인 눈이 뜨이지 않으면, 하나님과 그분의 일을 볼 수 없습니다. 성경 말씀이 이해되지 않고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방향을 잃고 표류하다가 거대한 풍랑을 만나 흔들리며 파선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된 신앙은 영적인 눈이 열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영의 일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눈으로 확인하고 직접 경험하면 믿겠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 2:14).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영적인 일은 성령으로만 분별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우리 삶을 볼 때, 은혜를 은혜로 깨닫습니다(신 29:5).
나는 영적인 눈으로 하나님의 일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❶ 하나님이 보여 주신 항로를 믿음으로 항해합니까?
❷ 육의 눈으로 바라보며 원망하고 불평합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거나 능력을 보이지 않으신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보려 하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은 것입니다.
❶ 관련 설교 – 2021 믿음으로 함께 2. 네 믿음이 둔하구나 중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부터 인도해 내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믿음이 없습니다. “깨닫는 마음”,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여호와께서 주시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신명기 29장 2-9절까지를 보면 이것이 ‘반어적 표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신명기 29장 9절
9.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이스라엘이 40년 광야 생활을 하면서 홍해를 가르는 기적부터 시작해서 광야의 샘물을, 그리고 만나의 기적을 체험했는데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시지 않았다”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스라엘이 믿으려 하지 않았다고 표현해야 옳습니다. 보려고 하지 않았고,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9절에 ‘의지적’인 표현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지켜 행하면 형통의 축복을 누린다는 것이지요. “지켜 행하면 형통하리라”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를 믿지 못하고 믿음 가운데 행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그들에게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믿음이 없었다는 것이죠.
“불쌍하구나!”
하나님께서 너희의 눈앞에서 그렇게 놀라운 일을 행하셨는데도, 믿음의 눈을 들어 보지 못하는 너희의 모습을 보니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는 것이죠.
종종 저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사람을 위해 그런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이 이 사람에게 믿음을 주셔서 열린 귀, 열린 마음, 열린 눈을 갖게 하여 주옵소서!
이런 것을 우리가 “영적 민감성”이라고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요?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에 대하여 우리가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느냐가 믿음의 차원이 아닐까요?
이스라엘의 문제는 육신의 눈과 귀가 아니라, 영적인 눈과 귀가 어두워져 둔감하게 된 것입니다. 한 번 상상해 보세요! 만일 내가 보지 못한다면, 듣지 못한다면 얼마나 불행할까? 아니 얼마나 답답할까?
A. W. 토저는 “우리가 원하는 만큼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더 중요한 질문, 믿음의 본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는 영적인 눈이 뜨이지 않으면, 하나님과 그분의 일을 볼 수 없습니다. 성경 말씀이 이해되지 않고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방향을 잃고 표류하다가 거대한 풍랑을 만나 흔들리며 파선하게 되는 것입니다.
❷ 관련 설교 – 2021 믿음으로 함께 2. 네 믿음이 둔하구나 중
겨울이 지나며 봄기운이 올라오면 노란 개나리가 핍니다. 어느 날 봄비가 오더니 따뜻한 기운에 활짝 피어난 개나리가 만개할 때 우리의 눈을 황홀하게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느끼지 못했는데, 환한 가로등과 함께 피어있는 벚꽃을 보며,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을 보면 우리는 또 한 번 그 아름다움에 놀랍니다.
조금 더 지나 산에 오르며 물을 먹고 푸르게 솟아나온 잎사귀들을 보면 그 싱그러움에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그것도 잠깐, 우거진 숲과 풍성한 열매를 보며 경이로움을 느끼지요. 이제 우리의 기억 속에서 아름답게 물든 나뭇잎과 단풍을 기대하며, 그 앙상함을 뒤엎을 넉넉한 함박눈도 상상하게 됩니다.
이 모든 일이 우리의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기대감이 있습니다. 예측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보아왔건만, 40년 동안 출애굽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시는 손길을 경험했지만, 영적인 둔감함으로 인해 전혀 상상도 기대도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도 볼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바로 그 답답한 마음을 모세가 오늘 본문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요.
신명기 29장 4절
4.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거듭나지 못한 자들, 영적인 눈을 뜨지 못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여전히 비유 속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가진 이들이 이 세상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처럼 영적으로 둔감한 우리는 믿음의 세계를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고통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영적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 답답한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불쌍한’ 일 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육신으로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은 그것으로 그만이지만, 영적으로 어두워지면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듣게 되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게 된다는 데 심각함이 있는 것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 2:14).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영적인 일은 성령으로만 분별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우리 삶을 볼 때, 은혜를 은혜로 깨닫습니다(신 29:5).
❸ 관련 예화 – 토마스 아 켐피스, 『그리스도를 본받아』 중
-변덕스러운 마음과 하나님을 향한 마음
내 아들아, 네 느낌을 믿지 말라. 그것은 금방 다른 것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네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원치 않아도 변하게 마련이다.(욥14:12). 그래서 한때 기뻐했다가 곧 슬퍼하고, 한때 평온했다가 곧 문제에 휩싸이고, 한때 신앙이 좋았다가 곧 세속적이 되고, 한때 부지런했다가 곧 게을러지고, 한때 심각했다가 곧 쾌활하게 된다.
그러나 지혜롭고 영적인 가르침을 잘 받은 사람은 이런 변화무쌍한 현실 위에 굳게 서 있다. 자기가 느끼는 것이나 불안정한 바람이 부는 방향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온 마음이 올바른 최상의 목표를 향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수많은 사건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줄곧 마음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언제나 흔들림 없이 동일한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마음의 눈이 순전하면 할수록(마6:22), 그만큼 더 한결같은 자세로 온갖 폭풍을 헤쳐 나가게 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의 경우 순전한 마음의 눈이 흐릿해지기 쉬운데, 그것은 자기가 만나는 즐거운 일에 재빨리 눈길을 돌리기 때문이다.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데서 완전히 해방된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예전에 유대인들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간 것은 예수님만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사로도 보기 위한 것이었다.(요12:9) 그러므로 네 마음의 눈은 순전해질 필요가 있다. 그래서 한결같고, 올바르며(마6:22), 너에게 닥치는 모든 상황을 뛰어넘어 나를 향하도록 해야 한다.
❹ 관련 예화 – 오스왈드 챔버스, 『오스왈드 챔버스 기독교의 진리』 중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구름을 보면 우연히 생긴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구름을 보면 이것까지도 어떻게 믿음으로 걸어갈 수 있는지를 알려 주는 선생이 됩니다.
성령님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게 해 모순되어 보이는 모든 사건의 배후에 계신 하나님의 생각을 알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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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영에 대하여
영적 주체는 각각 말을 통해 역사합니다.
영적 주체는 하나님의 영이 있고, 사탄의 영이 있고. 인간의 영이 있습니다.
영성은 인간의 영이 사탄의 영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영을 받아 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요6:63) 라고 말씀하십니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토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6:27)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이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 말씀하십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깨달아 말씀으로 행하여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마귀의 영의 말을 먹고 살지 말고, 영생의 양식인 하나님 영의 말씀을 먹고 살라는 것입니다.
2.영적의 눈을 뜨지 못한 자
영의 눈을 뜨지 못한 자 하나님의 백성은 보려고 하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홍해의 기적, 광야에서 샘을 내신 기적, 만나를 주신 기적을 보고도 믿지 못하는 백성을 책망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스스로 인생의 키를 쥐려 했습니다. 자기 지식이나 경험을 가지고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며 판단했습니다. 영적인 눈이 뜨이지 않으면, 하나님과 그 분의 일을 볼 수 없습니다.
3. 영적의 눈을 뜨는 자
복된 신앙은 영적인 눈이 열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인간은 영적 존재로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사는 것입니다.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2:11-12)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영적의 눈을 뜨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의 삶을 사는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복을 누리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의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적인 일은 성령으로만 분별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우리 삶을 볼 때, 우리는 은혜를 은혜로 깨달음을 알게 됩니다. 나의 안에 있는 영과 하나님의 영이 내안에 거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위에 은혜로 살게 하소서.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영적 분별력을 주셔서 영에 속한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세상에 짓눌리거나 휘청거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하신 일, 하시는 일, 하실 일을 제대로 믿고 신뢰함으로 매일 천국을 살고 싶습니다.
영적인 눈을 뜨게 하소서.
신학전문 수준인 것같다.
어렵고 답답하다.
이럴 땐 그냥 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하나님
영적인 눈을 뜬다는 것은
전적으로 히나님을 신뢰한다는 것 같은데
내 고집 내 생각이 우선이라
주께 묻는 건 그 다음이 됩니다.
생각대로 가려고 하다 부딪히기 일쑤입니다
분별이 없어 의심하고 모르니 답답합니다.
'복된 신앙은 영적인 눈이 열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 후회도 답답함됴 덥으시고
영적인 눈과 귀를 뜨게해 주세요.
깨닫지 못한 어리석음으로 인해
시간을 허비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분별의 영을 주옵소서.!
하나님께서는 귀가 안들리시는 건 아니시죠!
하나님 영의 눈을 열어주세요.
하나님도 제가 옆길로 새면
답답하시죠?
분별의영 지혜의 영 지식의 영
몸가짐을 세롭게 하소서.
이전의 나를 바꾸시고
부드러운 위엄도 있어야 되겠으니
주여 보시옵소서!
필요를 채우시는 주님
영적 눈이 열림이 얼마나
소중한지 제가 잘압니다.
뜨게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