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3:46,
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요한복음 19:30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죽음을 “영혼이 떠났다”라고 표현합니다(요 19:30). 하나님의 손을 향해 떠나가셨고,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한 부족은 죽음에 관해 ‘떠났다’ (departed) 대신에 ‘도착했다’(arrived)라는 표현을 쓴다고 합니다. 죽음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인 동시에 새로운 세계에 도착하는 것입니다. 우리말에도 ‘돌아갔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영혼이 하나님의 손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죽음입니다.
감리교를 창시한 요한 웨슬리는 88세를 일기로 하나님께 돌아갔습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 이외에는 아무것도 쓸 것이 없다”(Nothing but that God is with us). 그리고 잠시 후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The best of all, God is with us!)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안녕”(farewell)이란 말을 남기고,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영혼을 맡기고, 하나님이 함께하셨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음미하는 가운데 평안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시편 말씀을 성취하셨습니다.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시 31:5). 이 구절은 유대인 어머니들이 잠들기 전 아이들에게 기도로 가르치는 말씀이라고 합니다. “어두운 밤이 도착하기 전에 제 영혼을 주님의 손에 맡기나이다.” 진실한 신자의 삶과 죽음에는 죄와 죽음의 권세가 더 이상 힘쓰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친히 정복하셨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내 삶을 주께 맡기듯이, 나의 마지막 순간도 주님께 온전히 맡기십시오. 이 땅에서 주님과 함께이듯, 그곳에서도 주님과 함께일 것입니다.
나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입니까?
❶ 언제 어디서나 주님과 함께인 곳이 천국임을 믿습니까?
❷ 나에게 가장 좋은 것, 가장 복된 것은 무엇입니까?
죽음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인 동시에 새로운 세계에 도착하는 것입니다. 우리말에도 ‘돌아갔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영혼이 하나님의 손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죽음입니다.
❶ 관련 자료 –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 없는가? 』 정현채 저 (2021.7.28.)
“인간의 육체는 영원불멸의 자아를 둘러싼 껍질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죽음은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이 있을 뿐이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➋ 관련 자료 – 동아일보 [종교칼럼] 죽음은 끝인가? 새로운 시작인가? (2022.12.27)
출처 : https://news.imaeil.com/page/view/2022122610242150634
1945년 4월 8일 주일 아침. 독일에서 39세의 본회퍼 목사가 히틀러에 대항하다 투옥돼 사형장으로 끌려갈 때였다. 함께 수감되어 있던 영국 군인이 비통한 목소리로 "목사님, 이제 마지막이군요.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말하자, 본회퍼는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평안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아닙니다. 마지막이 아니라 이제 시작입니다.“
➌ 관련 자료 – 『나는 천국을 보았다.』 이븐 알렉산더 저 (2013.4.8.) 출판사 북리뷰
출처 : http://xn--ok0bv9py4iq1g8le3rc.com/read/read_view.php?idx=207
2008년 11월, 하버드 신경외과 의사였던 이븐 알렉산더 박사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매우 드문 종류의 박테리아성 뇌막염에 걸려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인간으로서 사고와 감정을 통제하는 뇌 부위가 완전히 정지된 것이다. 그는 거의 죽은 상태였고 결국 의사들은 치료를 중단하고 생물학적 사망 판정을 내리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7일째 되는 날에, 그는 눈을 떴고 다시 삶으로 돌아왔다.
그가 병에서 회복된 것은 전혀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현대 의학이 판정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것이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다. 하지만 진짜 기적은 그의 체험담의 다른 부분에 있다. 그는 뇌가 완전히 멈춘 순간에 임사체험을 함으로써 의식에 관한 과학적 금기를 깬 사례가 되었다. 임사체험은 뇌가 만들어내는 환각이 아니며, 뇌가 꺼져도 의식이 계속 존재한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다.
뇌사상태에 빠져있는 동안 알렉산더 박사는 이 세계를 넘어선 곳에서 천사 같은 존재를 만나고 초물리적 존재계의 가장 깊은 영역으로 안내되었다. 거기서 그는 우주의 신성한 근원을 만나 대화를 하였다. 그리고 이전에는 과학의 눈으로 볼 수 없었던 보다 높은 차원의 에너지나 사후세계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 과정을 과학적이고 의학적인 탐구와 검증을 통해 생생하게 펼쳐낸다.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통찰, 신과 우주에 대한 종교적 성찰을 더한다.
❹ 관련 자료 – The Mission(더 미션) 정현욱(2019.522) “마르틴 루터의 생애(3)”
출처 : https://www.themiss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713
루터가 43살이 되던 해였습니다. 루터와 카타리나 사이에서 8년 동안 6명의 아이가 출생합니다. 그러나 1527년에 비텐베르크를 덮친 흑사병으로 인해 살아남았지만 그해 낳은 딸 엘리자베스를 8개월 만에 잃고 맙니다. 루터는 슬픔에 압도당하여 자녀를 보내는 슬픔이 이렇게 크다는 것을 전에는 몰랐다고 고백합니다. 1540년 1월 22일, 일곱 번째 아이를 낳았지만 사산하고 맙니다. 카타리나 역시 그로 인해 거의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1542년에는 열세 살이었던 막달레나가 2주 동안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다 주님의 품에 안깁니다. 막달레나를 보낸 후 루터는 요나스에게 이렇게 편지합니다.
“우리의 사랑스러운 딸 막달레나가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나의 아내와 나는 반드시 육신과 세상과 이슬람교와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된 이 놀라운 죽음, 축복스러운 마침에 감사해야 마땅하지만, 자연적 사랑의 힘이 너무 강해서 눈물 없이, 우리의 마음의 고통 없이 실제로 우리의 일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느끼지 않고는 그녀를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어두운 밤이 도착하기 전에 제 영혼을 주님의 손에 맡기나이다.” 진실한 신자의 삶과 죽음에는 죄와 죽음의 권세가 더 이상 힘쓰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친히 정복하셨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내 삶을 주께 맡기듯이, 나의 마지막 순간도 주님께 온전히 맡기십시오. 이 땅에서 주님과 함께이듯, 그곳에서도 주님과 함께일 것입니다.
❶ 관련 자료 – 크리스천 프레스 박시경 박사(그레이스 신학대학원 한국인 디렉터)
1736년 1월 25일(주일), 감리교의 창시자였던 찰스 웨슬리의 선상일기를 소개합니다. 그는 그 당시 신대륙 미국(대영제국의 식민지였음)에 부흥집회를 위해 그의 형인 요한(John)과 함께 범선(돛단배) Simmonds호를 타고 영국을 떠나 미국의 조지아 주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불행히도 그가 탄 배는 심한 풍랑을 만나 파선 일보직전까지 가면서 배 안의 승객 전원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극심한 공포에 빠졌습니다. 웨슬리 형제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거센 풍랑에 마스터(돛대)가 부러지면서 돛이 배의 갑판을 덮어버리자 배는 방향을 잃고 무서운 파도 속에 잠겨갑니다. 마침 그 배에는 몇몇 모라비안 가족들이 타고 있었는데, 무서운 풍랑 속에서도 저들은 놀라우리만치 평온함을 보여줍니다.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는 상황에서 그 배에 탔던 영국인 신자들은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렀지만, 모라비안 형제들은 평온한 상태에서 시편으로 지어진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본 찰스 웨슬리는 묻습니다. “당신네들은 겁나지도 않나요?” “감사하게도, 우리는 겁나지 않아요.”가 모라비안 형제들의 대답이었습니다.
“그러면 당신네 아이들과 아내들도 겁나지 않나요?”라고 웨슬리가 묻자, 아주 온유한 모습으로 모라비안 형제들은 대답합니다. “우리 아이들과 아내들은 죽음을 겁내지 않아요.”
무서운 풍랑 앞에서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없이는 불가능한 이 평온함에 웨슬리 형제는 충격을 받습니다, 자신들의 믿음 없음에 대해서 말입니다. 영국과 미국을 뒤흔드는 이 영적 지도자들은 미국에 도착한 후에 그 모라비안 형제들을 초청하여 깊은 신앙의 교제를 나눕니다.
이 영적 거성인 찰스 웨슬리는 이 사건이 있은 후, 개신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찬송시를 씁니다. 우리가 잘 아는 찬송가 388장, “비바람이 칠 때와 물결일어 날 때에” 입니다. 2절 가사를 보면 웨슬리의 풍랑에 대한 끔찍한 경험과 자신의 믿음 없음에 대한 고백이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나의 영혼 피할 데 예수밖에 없으니, 혼자 있게 마시고 위로하여 주소서.
Other refuge have I none, Hangs my helpless soul on Thee;
Leave, ah! leave me not alone, Still support and comfort me.
구주 의지 하옵고 도와주심 비오니, 할 수 없는 죄인을 주여 보호하소서.
All my trust on Thee is stayed, All my help from Thee I bring;
Cover my defenseless head with the shadow of Thy 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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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죽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이 말은 참으로 기쁜 소식이며 소망과 꿈이며 죽은 것이 아니라 생명이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은 죽었으나 영혼은 떠났다고 말씀하십니다. 죽음은 이 세상을 떠나는 동시에 새로운 세계에 도착하는 것입니다. 즉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 말은 새 세상이 열린 것입니다. 영혼이 하나님의 손으로 돌아가는 것 우리의 영이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그것이 죽음입니다.
2.새로운 시작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 이외에는 아무것도 쓸 것이 없다”(Nothing but that
God is with us)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The best of all, God is with us!)라고 요한 웨슬러는 외쳤습니다. 육신의 죽음이여 안녕(farewell) 평안한 죽음으로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므로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입니다.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실한 신자의 삶과 죽음의 권세가 더 힘쓰지 못합니다. 죽음의 권세는 없어지고 나의 영이 새로운 세상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내 삶을 주께 맡기듯이 즉 주님과 함께 하듯 새로운 세상에서 주님과 함께 할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의 삶은 축복입니다. 새로운 세상에서 주님과 함께 사는 믿음 주옵소서. 감사합니다.
본향으로 돌아가는 순례자의 삶이라는 이땅의 모든 삶에 집착하지 않으려고 매일 의식적으로 생각을 고치는 노력을 합니다.
사실 현실이기 때문에 쉬운 영역은 아니지만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샬롬을 매순간 간구합니다.
육신의 죽음에 대해 천국 소망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