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35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36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37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38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 23:43).
구원은 선물입니다. 모든 권한은 선물을 주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구원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두가 구원받길 간절히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고, 부르셔서 구원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 일을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그 순간까지도 죄인을 부르고 구원을 베푸신 것입니다.
선물 받는 자가 마땅히 보여야 할 반응이 있습니다.
‘믿음의 고백’입니다. 부르심이 먼저이지만,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죄의 경중이나 종류를 심사하지 않으십니다. 비교는 무의미합니다. 같은 상황의 찰나라도 한 강도는 예수님께 응답하여 구원을 받았고, 한 강도는 비방으로 응답을 대신했습니다.
하나님께 구원받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할 죄도 없습니다. 부르심에 믿음으로 응답하면 됩니다. 구원에 지각은 없습니다. 이미 오랜 세월이 지나 늦었더라도 기회가 있을 때 즉시 응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흉악한 강도들 사이에 세워졌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세상 한 가운데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뿐 혹은 알고도 지나쳤을 뿐 하나님은 늘 세상 곳곳에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구원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한 강도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조롱하며 비방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편 강도는 예수님께 겸손히 간청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눅 23:42). 그는 죄 없으신 예수님을 알아보았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믿음으로 주께 나아갔습니다. 구원은 지식이나 선행이나 노력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아이부터 배움이 없는 사람까지도 받을 수 있는 것이 구원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였습니까?
❶ 문밖에 서서 두드리시는 예수님께 마음의 문을 열었습니까?
❷ 회개에도 때가 있음을 깨닫습니까?
구원은 선물입니다. 모든 권한은 선물을 주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❶ 관련 설교 – 2011 가상칠언 십자가 위에서 2,3
구원이 “선물”이라는 사실이 우리들에게 아주 심각한 딜레마가 됩니다. 왜냐하면 선물은 받는 자의 권한이 아니라 주는 자의 권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 선물을 받을 만한 자격이 우리들의 믿음 고백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참 난감했던 일이 미국에서 있었습니다.
교회에 부임한지 얼마 안 되어 교인들이 함께 심방을 가자는 것입니다. 제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인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라 심방을 가긴 가야 하는데 자신들이 그 곳에 가서 할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저에게 참 담대한 마음을 주셨던 것 같습니다. 간암으로 죽어가는 사람에게 모두가 소망이 없다는 사람에게 제게 선포한 말씀이 “당신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생명은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생명을 맡기고 기도하십시오. 예수님을 믿으세요.”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 사람이 그 상황에서 예수를 믿고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참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가 그 기쁨을 오래 누리지 못하고 간 이식 수술을 하다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제가 의식을 잃은 그 분의 가족들에게 산소 호흡기를 그만 떼는 것이 좋겠다고 말을 하면서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하나님! 살려 주셨으면 삶을 누리게 하셔야지, 왜 구원받은 사람의 생명을 그렇게 빨리 거둬가시나요?”
어쩌면 오늘 우리들의 고민이 동일하지 않은가요?
‘믿음의 고백’입니다. 부르심이 먼저이지만,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❷ 관련 설교 – 2011 가상칠언 십자가 위에서 2,3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나에게 오늘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져야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나와 상관없는 누구와 비교되기 시작하면 말씀이 은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꾸 판단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이 은혜와 율법의 차이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이 순간이 어떤 사람에게는 아주 소중한 “카이로스”의 시간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나 평범한 “크로노스”의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얼마 전 크리스천 CEO들이 모이는 MBA과정에서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1년 동안 함께 spiritual leader로 가게 되는 첫 시간에 그런 도전을 했습니다.
이 시간이 여러분들의 평생의 사업에서 “카이로스”의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명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떠나라!”는 것입니다. 과거로부터의 단절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단절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은혜의 시간이라는 것이지요.
제가 함께 모인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6월 25일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물론 대답이 빨리 나왔습니다. 6.25지요?” 그렇습니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에게 6월 25일은 역사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그 날이 특별한 날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결혼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사이에 두고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는 순간에 누군가에게는 크로노스의 사건이고 누군가에게는 카이로스의 사건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뿐 혹은 알고도 지나쳤을 뿐 하나님은 늘 세상 곳곳에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❸ 관련 설교 – 2009 부활절 이후 -만나셨나요
어떤 기업체 사장의 고백입니다.
그는 회사를 경영하면서 만났던 한 종업원, 한 크리스천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되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사업체에서 일하는 크리스천들의 양심적이고 상냥한 모습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신앙에 끌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하루는 갓 개종한 한 크리스천 종업원이 그에게 상담을 요청해 왔습니다.
그때 그는 그 사람이 신앙을 강요하는 열성신자 일까봐 걱정이 되었답니다.
그러나 그 젊은이는 머리를 숙이고 사무실에 들어와 이런 고백을 하더라는 겁니다.
“사장님 몇 분이면 됩니다. 용서를 구하러 왔어요. 저는 여러 해 동안 사장님을 위해 일해 왔습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몇몇 회사의 생산품을 가져다 쓰는 등 다른 사원들이 하는 것처럼 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여분의 보급품을 축냈어요. 전화도 마음대로 사용했구요. 어떨 때 시간을 속여서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몇 개월 전에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연기와 허상이 아니라 실제로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날 위해 역사하신 덕에 제가 그분께 순종하게 되었고 이제 제가 행한 잘못을 사장님과 회사 앞에서 바로잡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제 행동의 대가로 해고하신다면 그대로 순복하겠습니다. 그럴 만도 하죠. 아니면 적절하다고 생각하시는 만큼 감봉하셔도 좋습니다. 하나님과 사장님 앞에서 그저 일을 바로잡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기업체의 사장은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나눠본 대화 중 가장 영적이고 감명 깊은 대화였다고 말입니다.
어린아이부터 배움이 없는 사람까지도 받을 수 있는 것이 구원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❹ 관련 설교 – 2011 가상칠언 십자가 위에서 2,3
여러분, 예수님과 더불어 천국에 최초로 들어간 사람은 베드로나 야고보나 요한과 같은 예수님의 수제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도 아니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아니었습니다. 정반대로 일생 동안 못된 짓만 골라했던 흉악범, 강도 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간 첫 번째 손님이 되었습니다.
그는 믿음 하나로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들어가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공로를 헤아려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100%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일 뿐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주는 도전은 이 믿음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 부흥회를 인도하시러 목사님이 가셨습니다. 때는 몹시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강사 숙소에 할머니 한 분이 오셔서 정성껏 시중을 들어 주셨습니다. 그 할머니는 찬 것을 마시면 감기가 든다면서 콜라까지 보글보글 끌여다 주셨습니다. 이 할머니는 성경을 자주 보고 계셨는데 그런데 이상한 것은 성경을 다 읽지 않고 사람 이름만 읽고 계셨습니다. 목사님께서 이상해서 물었습니다.
"할머니! 왜 사람 이름만 읽으세요?" 하니까 "아이구 목사님 !! 곧 하나님 앞에 갈텐데 성경은 다 읽어서 무엇합니까? 이 사람들이 다 천당에 있을 텐데 이름이나 외워 가야지요!"하며 껄껄 웃었습니다.
이 할머니는 구원에 대한 확신과 소망이 넘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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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3 ;33,43
'구원받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죄인을 부르시는 하나님.
하나님을 무시하고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라도
자신의 죄를, 죄를 모르면 무엇을 잘못하고 살았는지 깨닫기만이라도
했으면 하는 바랍입니다.
나는 몰라도 예수님은 아시니까요.
선하고 힘없는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한 강도보다 더큰 강도.
세상곳곳에서 살피시는 하나님
그 가족 구원을 부탁합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말리니 교회를
다닐수도 없었을 테니까요.
저는 그렇게 알고 있어요.
용서하기로 마음 먹었으니
주님께 용서의 기쁨을 받고 싶어요.
잘하는 일인지 못하는 일인지
주님께서 심판하옵소서.
용서의 기쁨이 있다면
후회도 없게 해주세요.
하나님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구원은 진정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함에 죄에서 구원 받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그분 은혜의 덕분에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 말씀에서 주님께서 성육신 하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성경을 통해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의 육신 즉 죄 있는 육신의 형상으로 말미암아 속량을 받고 구원을 받을 줄 믿습니다.
네가 그를 믿기만 하면 그가 너를 구속하고 네가 믿기만 하면 죄에 속하지 않고 죄에서 벗어 나오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구원을 얻은 것이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칭찬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3:17)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고 부르셔서 구원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 일을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그 순간까지도 죄인을 부르고 구원을 베푸신 것입니다.
한 강도는 예수님께 응답하여 구원을 받았고 한 강도는 비방으로 응답을 대신했습니다. 즉 한 강도는 예수님께 겸손이 간청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23::42-43) 말씀에 자신의 죄를 고백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세상 한가운데서 펼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뿐 혹은 알고도 지나쳤을 뿐 하나님은 늘 세상 곳곳에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 구원 받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하여 믿기만 하면 순종하여 구원 받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하여 행함에 선물로 구원 받고 의롭다고 칭찬 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