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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을 갈고 씨를 뿌리다

4월 3일 용서, 믿음과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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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3장 34절, 로마서 5장 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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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3장 34절
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로마서 5장 8절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용서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쌍방이 동참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죄인들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사랑의 본질입니다. 그러나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와 함께하실 수 없는 분입니다. 내가 여전히 죄와 함께하는 한 하나님의 사랑이 아무리 크다 해도 용서는 완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사랑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롬 5:8). 반성의 기미가 있거나 삶이 변해서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 두셨습니다. 돌아올 것인가는 죄인의 선택입니다(눅 15:20).

사람과 사람 사이의 용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사랑은 상대방을 받아들이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그가 돌아올 길을 열어 두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변화나 반성과 상관없습니다. 끝까지 사랑한다 해도 상대방이 돌아와야 용서가 완결됩니다. 사랑은 죄를 용납하거나 덮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의 테이블에 나아가는 이들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를 정직하게 바라보고 뉘우쳐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님의 뜻을 묻고 순종해야 합니다. 즉 회개하는 것입니다. 온전한 사랑과 온전한 배제(회개)가 만날 때, 비로소 용서가 완결됩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용서’의 상징입니다.

용서의 전 과정을 주께 온전히 양도하십시오.

모든 상황과 주권이 주께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하여 사랑할 수 없고 어리석어 회개할 수 없습니다. 성령께 나의 전 존재를 위임할 때, 사랑하게도 하시고 회개하게도 하십니다. 성령께서 나뿐 아니라 상대방 안에서도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 안에 계신 성령을 신뢰하는 것이며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좋아하지 않지만,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믿음으로 행하는 결단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용서와 사랑을 선포합니까?

❶ 나와 너, 상황을 최선으로 이끄실 주님을 신뢰합니까?

❷ 용서의 전 과정을 주께 위임하며 ‘사랑’하기로 결단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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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전히 죄와 함께하는 한 하나님의 사랑이 아무리 크다 해도 용서는 완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사랑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롬 5:8).  

❶ 관련 설교 – 2017년 설교 8. 참된 용서가 능력이다 

로마서 5장 8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 .’  

 

용서받을 만한 자격이 없을 때, 우리를 용서하셨다는 말입니다. 물론 용서는 인격적이고 상대적이고 관계적이지만, 상대방에게 자격이 생겼을 때 하는 조건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먼저 용서하시고 사랑하시고 보여주셨던 것처럼, 우리도 누군가에게 용서하며 인격적 관계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신촌 장로교회의 조동천 목사가 [목회와 신학]에 기고한 용서에 대한 설교가 있습니다. 아주 인상적인 예화와 구절입니다. 

 

일본의 동경사범학교를 나오신 함석헌 선생님이 모교인 오산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학생들이 문제가 있는 한 교사를 폭행하겠다고 떼를 지어 교무실로 몰려 왔습니다. 이때 다른 교사는 모두 피했는데 함 선생님만 기도하는 맘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함 선생님을 문제의 교사로 착각한 학생들은 사정없이 함 선생님을 구타했습니다. 나중에야 상황을 알게 된 학생들이 용서를 빌며 왜 고개를 숙이고 있었느냐고 여쭈었습니다. 그때 함 선생님의 대답이 큰 감동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내가 눈을 뜨고 맞았다면 내 사랑하는 제자들 중 누가 나를 때렸는지 알 것이 아닌가, 또 자네들도 알 것이고 그러면 내가 어떻게 강단에 서겠으며 또 자네들도 어떻게 나를 보겠는가?” 

 

용서는 우리가 잘못하기 전부터 벌써 진행되었던 사실입니다.  

이것이 놀랍습니다. 우리가 죄지으려는 순간 벌써 주님은 십자가를 지셨던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기 무수한 세월 전에 이미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준비되었고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남을 용서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하는 꼴을 봐서 하면 벌써 용서가 아닙니다. 용서는 철저히 사랑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미, 그가 잘못을 할 경우 용서하겠다는 마음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기꺼이 대신 억울한 일을 당하겠다는 자세가 있는 것이 용서입니다. 

 

 

사랑은 죄를 용납하거나 덮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❷ 관련 설교 – 2017년 설교 8. 참된 용서가 능력이다 

교인들을 보면 참 믿음이 좋아서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잘못한 것을 용서하고 심지어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도 용서하는데, 함께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의 작은 잘못을 용서하기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말 인자하고 좋은 목사님 장로님들이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참 훌륭한데 가장 가까운 사람과 관계가 깨어져 있는 경우들도 보게 됩니다.  

문제가 무엇일까요? 왜 누구에게는 용서가 이루어지고 또 누구에게는 그 용서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일까요?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그러한 용서가 진정한 용서가 아니라 ‘용서하는 척’하며 잊어버리는 편의주의는 아니었을까요? 

그냥 용서해 ‘버리는’ 것이 마음이 편하니 그렇게 작정했던 것은 아닐까요? 또 만날 일도 없고, 함께 할 일도 없으니 말입니다. 

참된 용서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용서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요? 용서하고 나서 관계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용서하고 함께 손잡고 함께 포옹하고, 함께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일일 때 진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좋아하지 않지만,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믿음으로 행하는 결단이기 때문입니다. 

❸ 관련 설교 – 365일 묵상 63. 소모될 수 없는 사랑 

예수님께서는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베드로에게 찾아오셔서 더 큰 사랑으로 만나주시고, 그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고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와 완전하게 연합하심으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이것이 곧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이제 베드로에게도 동일한 사랑의 요청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소비하며 자신에게 맡겨진 양을 먹이라는 말입니다. 소모될 수 없을 만큼 큰 하나님의 사랑과 연합하고 있기에, 우리는 주님의 명령을 따라 맡겨진 양을 먹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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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믿음과 사랑으로

용서란 끝까지 사랑한다 해도 상대방이 돌아와야 용서가 됩니다. 하나님은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 두셨습니다. 돌아올 것인가는 죄인의 선택입니다. 마음 문을 열고 그가 돌아올 길을 열어 두는 것입니다.

용서의 테이블에 나아가는 이들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를 정직하게 바라보고 뉘우쳐야 합니다. 즉 회개해야 합니다. 온전한 사랑과 온전한 배제가 만날 때 비로소 용서가 완결 됩니다. 그래서 용서의 완결은 십자가입니다. 용서는 사랑으로 이루어집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받아들이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님의 뜻을 묻고 순종해야 합니다. 모든 주권은 주께 있습니다. 성령께 나의 전 존재를 위임할 때 사랑하게도 하시고 회개하게 하십니다.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안에 계신 성령을 신뢰하는 것이며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죄인들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입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믿음으로 행하는 결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죄를 용서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용서 받고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인간은 순종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사랑하여 용서함으로 하나님과 화목의 열매를 맺어 천국의 삶이 됩니다.
용서는 믿음과 사랑으로 행함에 합당한 선을 이루어 복 받는 삶이되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2023.04.04
김은실
[사랑은 상대방을 받아들이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그가 돌아올 길을 열어 두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변화나 반성과 상관없습니다. 끝까지 사랑한다 해도 상대방이 돌아와야 용서가 완결됩니다. 사랑은 죄를 용납하거나 덮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의 테이블에 나아가는 이들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를 정직하게 바라보고 뉘우쳐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님의 뜻을 묻고 순종해야 합니다. 즉 회개하는 것입니다. 온전한 사랑과 온전한 배제(회개)가 만날 때, 비로소 용서가 완결됩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용서’의 상징입니다.
용서의 전 과정을 주께 온전히 양도하십시오.
모든 상황과 주권이 주께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하여 사랑할 수 없고 어리석어 회개할 수 없습니다. 성령께 나의 전 존재를 위임할 때, 사랑하게도 하시고 회개하게도 하십니다. 성령께서 나뿐 아니라 상대방 안에서도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 안에 계신 성령을 신뢰하는 것이며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좋아하지 않지만,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믿음으로 행하는 결단이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기적들이 내게 일어나기를 힘써 기도합니다.
저는 스스로 그무엇도 할 수가 없는 악하고 약한 존재임을 아시지요?
오직 성령님이 제 안에서 일해주셔야만 하겠사오니 저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2023.04.03
김동춘
3.용서, 믿음과 사랑으로.
누가복음 23;34,로마서5:8

“내가 눈을 뜨고 맞았다면 내 사랑하는 제자들 중 누가 나를 때렸는지 알 것이 아닌가, 또 자네들도 알 것이고 그러면 내가 어떻게 강단에 서겠으며 또 자네들도 어떻게 나를 보겠는가?”
참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말씀이다.
마음에 와닿는다.

아무도 보지 않고 듣지 않았다면
억울할 때도 있겠지만 이웃이 봤기 때문에 어려운 경우가 있기도 하다.

'용납하고 덥어두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라'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획증하셨느라'

용서를 선포하고 나니
시원한 것도 같고
또 뱀의 근성이 슬그머니
고개를 쳐들 때도 있다.
그럴 땐 얼른 기도를 했다
아~,
하나님께서 상대방 '안!'에서도
일하심을 믿는다!

하나님,
내 억울하고 분함고 또 다른 통한도
주님께 양도합니다.
주님만의 일이시니
믿고 순종하겠 습니다.
말씀으로 싸매시고 단단하게 하소서.
가시를 가진 자, 우애한 자
되지 않게 하시고
참지혜로 십자가 사랑과 용서가
있게 하소서.
주님의 사랑을 내려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2023.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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