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온유한 자는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입니다.
‘온유한’에 쓰인 원어는 본래 속임과 착취를 당해도 속수무책인 무력한 자를 뜻하는 단어입니다(시 9-10편). 그러나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의 편이시며(슥 7:10; 시 68:5; 146:9), 그들을 구원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시 37:11; 사 26:6). 그러므로 온유한 자는 고난과 핍박, 무력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억압과 고난에 대해 폭력과 복수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위임함으로써 평정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볼 때는 참 어리석고 미련한 모습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힘이 있어야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합니다. 사탄은 ‘가만히 있으면 얕잡을 것’이라며 우리를 부추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십자가’입니다(고전 1:18). 하나님은 세상이 가장 무능하고 어리석다고 여기는 방법을 택하셨고, 예수님은 묵묵히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내게 배우라’라고 말씀하십니다(마 11:29). 우리는 ‘쉼을 얻는다’에 방점을 찍기 쉽지만, 예수님은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온유는 <자기 부인>입니다.
온유함은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고난과 억압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유함은 ‘십자가’와 연관됩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나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가나안 땅을 주셨습니다. 그곳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온유한 자들은 이미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통치와 방법에 훈련된 자들을 동역자로 부르셔서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동참하게 하십니다(계 22:5). 땅은 우리가 속한 모든 ‘영역’을 뜻합니다. 온유한 자들은 복된 인생과 가정, 일터, 사역의 현장을 얻게 될 것입니다. 부르신 곳에서 주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갈 것입니다.
나는 온유한 자입니까?
❶ 고난과 억압으로 속수무책일 때 나는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❷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로서 나를 보내신 ‘땅’은 어디입니까?
온유한 자는 고난과 핍박, 무력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억압과 고난에 대해 폭력과 복수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위임함으로써 평정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❶ 『삶으로 증명하라』 중에서 이찬수 저, 규장(2012.8.20.)
오늘날 우리 교회는 붉은 십자가 불빛으로 세상을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광대하심으로 가득 채워야 한다.
완악했던 우리를 온유한 존재로 훈련시키신 그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이 땅에 선포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 손에 훈련된 하나님 사람의 온유함이
세상의 완악함을 이기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교회가 해야 할 일이며, 교회가 회복해야 할 진짜 영향력이다.
우리가 세상을 향한 진짜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온유의 능력을 경험해야 한다.
모세의 온유함이 바로의 완악함을 이긴다는 사실을 우리가 먼저 경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님을 사모해야 한다.
온유는 내 안에서 나오는 힘이 아니라 성령님이 주시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십자가를 더 가까이 붙잡아야 한다.
인내와 온유의 결정체인 십자가 정신이 내 안에 더 깊이 각인될 때
온유의 능력이 살아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힘이 있어야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합니다. 사탄은 ‘가만히 있으면 얕잡을 것’이라며 우리를 부추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십자가>입니다(고전 1:18).
➋ 관련 설교 – 2020. 4. 온유한 삶을 살기로 결심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꾸 힘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힘이 있어야 세상을 바꾸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도는 권력과 힘으로 전파되거나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님께서 친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내게 배우라>라고 말씀하십니다(마 11:29). 우리는 ‘쉼을 얻는다’에 방점을 찍기 쉽지만, 예수님은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➌ 관련 설교 – 2020. 4. 온유한 삶을 살기로 결심하다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 목사님은 『제자입니까』라는 책에서 아주 중요한 말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는데, ‘쉬게 하리라’는 말씀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 이 말씀을 잘 이해하려면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는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우리가 져야하는 십자가와 온유하게 내려놓는 삶에 있습니다.
이 말씀 가운데서 무엇을 유추할 수 있나요?
온유와 겸손은 우리의 삶을 가볍게 하지만, 온유하지 못하고 겸손하지 못한 삶은 우리를 억누르는 짐과 같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자만이 멍에를 메고 주님과 함께 동행 할 수 있습니다.
온유함은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고난과 억압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유함은 <십자가>와 연관됩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나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❹ 관련 설교 – 2007 성령의 열매(변화산 시리즈) 성령의 9가지 열매 5 – 온유
유태인 수용소에서 나치 독일의 잔인한 핍박과 고문을 받으면서 언니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화란의 유명한 그리스도인인 코리텐 붐 여사의 이야기입니다.
그 할머니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 사람을 용서하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분도 처음에는 용서가 쉽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나는 정말 성경 말씀대로 용서하고 싶었다. 그러나 실제로 내 삶 속에 용서가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용서하는 일이 너무나 어렵게 느껴지자 여사는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목사님, 제가 정말 독일 사람들을 마음으로부터 용서하기 원했고 실제로 용서한다고 선언했어요. 그런데도 제 마음에서 그들에 대한 미움이 가시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목사님은 한참을 얘기하다 코리텐 붐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자매님, 지금 교회 종 칠 시간이 됐는데 저를 따라오시겠습니까?
그래서 둘이 교회 종탑으로 올라갔습니다. 목사님은 줄을 잡아당겨서 종을 열 번 치고 줄을 놓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코리 자매님, 제가 이 종을 다 쳤거든요. 그리고 줄을 놓았어요. 그런데도 종이 아직까지 울리고 있지요. 제가 종을 그만치겠다고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종소리는 한동안 계속 울립니다. 그러나 보세요. 지금은 그 소리가 다 그쳤지요? 자매님, 자매님이 용서를 선언했으면 이제는 기다리세요. 주님이 일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자매님은 마침내 자유하게 될 것입니다."
땅은 우리가 속한 모든 <영역>을 뜻합니다. 온유한 자들은 복된 인생과 가정, 일터, 사역의 현장을 얻게 될 것입니다.
❺ 관련 설교 – 2020. 4. 온유한 삶을 살기로 결심하다
히스이 고타로의 『한 줄 행복』에 나오는 이야기를 하나 소개합니다.
“[마음의 산책길]이라는 책에 실린 어느 청년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 청년은 대학을 졸업하고 사무기기회사에 입사했다. 입사하자마자 맞은 첫 토요일, 거래처에 사무기기를 설치하러 갔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기기 설치를 마치고 돌아가려 하는데, 방금 설치한 새 기계와 대조적으로 옆의 오래된 기계에 묻은 때가 신경 쓰였다.
그는 낡고 오래된 기계를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닦아 놓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지저분한 마룻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마루를 반들거리게 닦았더니 이번에는 벽과 창문에 묻은 때가 눈에 들어왔다 결국 유리창까지 깨끗이 닦아놓고 돌아왔다고 한다.
월요일 아침, 그 거래처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사무기기를 설치한 사람이 누구냐고, 그때부터 그를 지목해서 일을 부탁하기 시작했다. 다른 회사에까지 입소문이 났다. 그는 입사한 지 한 달 만에 80명의 영업사원 중 실적 1위가 됐다. 스스로 예상한 범위 안에서만 일을 시도하기 때문에 결과도 딱 예상한 만큼만 돌아오는 것이다.
한 정치가의 이야기다. 그가 선거운동을 하고 있을 때 애인이 다섯 명이나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그는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애인이 다섯 명이나 있습니까?” 하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이렇게 받아쳤다. “그건 와전된 말입니다. 사실은 일곱 명입니다. 그것도 다 연상이에요.”
그리고 덧붙였다.
“모두 나를 의지하고 있는 여성분들입니다. 그 여성분들을 돌보는 것이 나쁘다는 말입니까?” 주변에선 박수갈채가 쏟아졌고 압도적인 표 차로 당선 됐다. 상대방의 상상을 초월하면 역경을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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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함이란 뜻으로는 성격이 유순하고 태도가 겸손하고 마음이 따뜻하며 부드럽고 온화한 성품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기다림과 인내심이 강하고 다른 사람에게 권한을 나누어주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온유한 사람은 예의 바르고 겸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 즉 온유한 사람 두 영이 있는데 모세와 예수님입니다.
온유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만들어 주시는 성품입니다. 영이신 성령을 우리 마음에 모시면 예수님이 우리의 기질을 온유한 사람으로 바꾸어 줍니다.
왜 온유한 사람이라 할까?
모세는 숱한 원망과 불평을 듣고 그것들을 다 감내해 내고 자신의 기질과 생각이 죽어가면서 점점 온유한 성품이 드러납니다.
성경에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 하더라”(민수기12:3) 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대언자로 자아는 죽고 겸손하며 온유한 마음으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말씀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리의 길로 이끌어 내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태복음11:29)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게 하기위해 우리를 온유하게 합니다. 하나님 사람으로 훈련 받고 연단되면서 하나님께 맡겨 드리는 것이 낫다는 것을 깨닫고 그렇게 행동하다보니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 됩니다.
이해관계만 싸우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지고 양분하고 자신을 부정하고 십자가를 질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온유와 겸손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온 몸과 마음과 살과 피로 다 내어 주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셨습니다. 진실로 하나님 나라 땅을 얻기 원한다면 온유한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내 자아를 모두 내려놓고 겸손과 온유한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마침 퇴근길에 약속된 만남의 자리에서 나눠졌던 안건들이 쉽게 따를 수 없는 멍에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쉽지않은 순종-물질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체력적으로도,정서적으로도 어느 한 부분 만만치 않은 멍에들인데 베테랑이신 예수님 옆에 짝으로 붙어 있는 어린 소로 초대된 느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꾼들과의 만남으로 목요찬양집회에 한 시간이나 늦었습니다.
심신이 피곤했지만 교회로 향했습니다.
거룩한 부담감과 눈꼽만한 소망을 품고 설교 막바지에 이르는 예배당에 들어가 앉아 기도했습니다.
맡겨진 학생들, 나무 열매들, 그리고 생각나게 하시는 영역을 위해 중보하다보니 머리 위에 구름이 덮히듯이 하나님의 도우심이 느껴졌습니다.
나의 멍에는 쉽고 가볍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들짐승이던 성품을 길들이시도록 신뢰함으로 순종하면 순한 가축으로 쓰임받으리라는 확신을 주십니다.
그 순종이 온유함이라 하시니 그 땅도 기업으로 받아 누릴 소망까지 생깁니다.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한 모세의 온유함을 묵상할 때 지혜주시기를 원합니다.
<온유함의 핵심=하나님의 다스림을 구하는 것>
아침에 잠깐 하나님의 숨결을 읽었습니다
온유=이삭=속임을 당해도 속수무책인 무력한 자=우물 파느라 몸이 고됨
온유=예수님=마음이 쉼을 얻는다고 하심
결국 온유하면 몸은 고되도 마음이 쉼을 얻는다....라는 의미로 묵상글#1을 썼습니다
그런데 하루 종일
‘이삭처럼 살면 열받아서 홧병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쓴 묵상글이 핀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습니다
온유함의 핵심이 빠졌습니다
온유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무조건 참고 당하는 게 아닌데..계속 생각이 맴돌았습니다
세상적으로 봤을 때는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자이지만
결국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게 온유함의 핵심입니다
-온유함은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고난과 억압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입니다(90쪽)
주님! 때로는 버럭,하고 싶은 상황이 있어도
하나님의 다스림을 구하게 해주세요
세상 사람들은 호구라고 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자라고 해도
잠잠히 하나님의 다스림을 구하는 온유한 자로 살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