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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서 생명으로

2월 8일 하나님으로 숨 고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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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2: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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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24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26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27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안식일은 ‘하나님을 위해’ 구별하는 날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와 목적, 원복을 향해 내 삶을 조정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안식일과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합니다(롬 12:1-2). 이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으며, 복 주시길 원하시며, 주님으로부터 온 모든 것이 옳다는 확신과 믿음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히 11:6).

하나님은 안식일을 통해 ‘살리기’를 원하십니다.

안식일 정신은 금지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안식’의 깊은 뜻을 계명 안에 가두었습니다.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보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이라면, 그 기쁨 안에는 분명 인간을 향한 복이 담겨 있습니다.

안식일은 ‘기억’하여 쉬는 것입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구별하고 의미를 곱씹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6일 동안 우리 삶을 새롭게조하실 것입니다. 빛이 비치고 질서가 생기며 풍요와 화목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그리고 제7일에 모든 것을 중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멈추고 하나님 안에 안식하는 것 자체가 이미 복입니다. 복이 아니라 거룩을 추구하십시오. 그 안에 복이 담겨 있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숨결이 깃든 날입니다.

출애굽기 31장 17절을 새번역으로 읽어 보면, “나 주가 엿새 동안 하늘과 땅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면서 숨을 돌렸기 때문이다”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우리는 안식일에 하나님의 숨을 들이마시게 됩니다. 하나님의 숨이 공급될 때, 우리는 생령으로 살게 됩니다(창 2:7). 인생의 숨을 고르고, 조용히 하나님 안에 거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새롭게 창조하실 것입니다.


안식일에 깃든 하나님의 숨결을 경험합니까?

❶ 세상으로 가빠진 숨을 멈추고, 하나님으로 숨을 고르고 있습니까?

❷ 우리의 영을 새롭게 하시며 가꾸시는 하나님의 창조를 경험합니까?


묵상 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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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 정신은 금지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보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❶ 관련설교 ➀ 2018 다시 세우는-십계명 4 

우리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인데, 그 기쁨이 우리들에게 ‘축복’이냐는 것이죠. 만일, 우리가 구별하여 지키는 그 안식일로 인해 우리가 기쁘지 않고, 우리 인생에 축복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안식일 논쟁에서 분명해 지는 것처럼,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철저하게 구별해서 안식일을 지켰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구별이 ‘하나님의 백성’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해 만드신 안식일이 그것을 지키는 ‘그들’을 위한 것으로 전락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아주 중요한 말씀인데, 안식일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지를 ‘긍정적’으로 생각할 때 ‘지키는 것’이 아닐까요? 

 

 

기억한다는 것은 구별하고 의미를 곱씹는 것입니다. 멈추고 하나님 안에 안식하는 것 자체가 이미 복입니다. 

관련설교 ➁ 2018 다시 세우는-십계명 4 

안식일은 그냥 쉬라는 것이 아니라, 그 날을 기억하고 쉬라는 것입니다. 그 날을 ‘기억’하기 시작할 때, 그 날이 구별되고, 구별되는 순간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 ‘엿새를 열심히 살라’는 것입니다. 

 

엿새를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에게 안식일은 특별한 의미가 없습니다. 365일이 다 하나님이 주신 날이기에 열심히 주어진 일을 하고 살아가는데, 그 날을 지키므로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이 날을 구별하므로 우리가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날을 구별하므로 하나님을 생각하니 주어진 모든 날이 감사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드리는 순간 나머지 6일도 하나님께서 주신 날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희생’이 아니라, ‘축복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 날을 구별하는 순간 우리는 진정한 축복 속에 들어갑니다. 안식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인생의 의미를 재음미하는 것으로, 마치 화가가 자신의 작품을 더 폭넓게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 자신의 화폭을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살펴보는 행동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안식일에 하나님의 숨을 들이마시게 됩니다. 하나님의 숨이 공급될 때, 우리는 생령으로 살게 됩니다(창 2:7). 인생의 숨을 고르고, 조용히 하나님 안에 거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새롭게 창조하실 것입니다. 

관련설교 ➂ 2018 다시 세우는-십계명 4 

창조의 모든 사역이 끝나고, 축복이 이른 것, 즉 창조의 완성은 안식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물질적인 손해를 보더라도, 그 날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것만으로 우리들에게는 의미 있는 신앙입니다. 그것이 결국은 우리로 하여금 건강한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은, 좁은 우리의 세계관을 아주 넓은 세계관으로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경작하는 땅도, 7년째에는 안식하도록 하셨습니다. 당장 눈에는 그 수확이 적으므로 인해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그 땅이 영원히 건강을 유지해야 인간이 사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환경의 문제들은 바로 이 안식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안식일은 여러분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의 숨을 고르고, 안식일에 조용히 하나님을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과 조용한 그러나 치열한 씨름을 경험하십시오. 

 

관련예화 (『예화포커스 4』 한태완, 좋은땅, 20.06.05) 

“주님 안에 안식” 

1차 세계 대전 중이었다. 전방으로 나가야 될 군인들을 위하여 연회가 베풀어졌다. 모임 행사가 끝날 즈음 한 젊은 장교가 그 환대에 대하여 감사의 표시를 하였다. 그의 말에는 활기가 있었다. “우리는 머잖아 프랑스를 건너갑니다. 그리고 죽을 가능성도 물론 뒤따릅니다”라고 말을 맺자, 장내는 잠시 숙연해졌다. 이때 연회 행사에 참석한 가수 중 한 사람이 앞으로 나오더니 군인들을 향하여, 멘델스존의 ‘엘리야’에 나오는 장대한 아리아를 부르기 시작했다. 

 

“오 주님 안에 안식이 있나니, 그 분을 향해 인내하며 기다릴지라. 그분께서는 당신 마음의 소원들을 주시리라. 당신의 길을 그 분께 맡기고 그분을 신뢰하라!” 

 

이는 인생의 위협에 직면한 우리 모두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메시지이다. 우리는 그분이 이 모든 것들을 자기의 손으로 잡고 계시다는 것을 믿고 신뢰할 수 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그분은 우리의 안전이시며, 위로이시고 기쁨이시다. 그리고 그분의 영원하신 팔 안에서 완전한 평화가 있는 것이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시23:2) 

 

“참 안식과 쉼” 

목자는 이른 아침 양을 데리고 먹을 것이 별로 없는 들녘을 지나 상당한 거리를 걸었다. 거친 풀밭을 지나 정오 때쯤이면 푸른 풀밭에 도착하게 된다. 정오 때는 양들이 쉬는 때이다. 오전 내내 걷느라 지친 상태이므로 쉬어야 한다. 이때 목자는 이른 아침 양을 데리고 먹을 것이 별로 없는 들녘을 지나 상당한 거리를 걸었다. 거친 풀밭을 지나 정오 때쯤이면 푸른 풀밭에 도착하게 된다. 정오 때는 양들이 쉬는 때이다. 오전 내내 걷느라 지친 상태이므로 쉬어야 한다. 이때 목자는 양들을 푸른 초장, 연하고 안락한 풀밭에 누임으로 쉼을 보장한다. 쉰 후에 목자는 양을 위해 잔잔하고 맑은 물가로 인도해 간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이렇게 배려한다. 선한 목자 아래서 양들은 쉼과 안식을 누린다. 

 

관련예화 (『안식의 영성』 강준민, 두란노, 18.08.14) 

하나님은 창조의 일을 하신 후에 안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일과 안식의 리듬과 조화를 아름답게 이루신 분입니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의 창조 이야기입니다. 창세기 2장은 하나님이 창조의 일을 마치신 후에 안식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라는 말씀은 하시던 일을 멈추신 것을 의미합니다. 안식은 ‘그침’이며 ‘멈춤’입니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 창조의 일을 하실 때마다 잠시 멈추셨습니다. 잠시 멈추신 후에 창조물을 바라보면서 기뻐하셨습니다. 

창조의 일을 하실 때마다 잠시 멈추어 기뻐하셨던 하나님이 창조의 일을 마치신 후에 하루를 정해 안식하셨습니다.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것입니다. 그날을 안식일로 정하시고, 그날을 복 주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예배하길 원하십니다. 또한 우리도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하게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덧입혀 주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아름다우신 것처럼 우리도 아름다워지길 원하십니다. 

 

우리는 누구나 너무 무거운 짐에 억눌리거나 과로하면 탈진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가끔 큰 일을 감당하는 사역자들 가운데 자신의 한계를 무시한 채 쉬지 않고 무리하게 일하다가 침체를 경험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한계를 만드신 것은 우리를 보호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똑같습니다. 한계를 넘어서는 것은 위험합니다.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때 스스로를 하나님처럼 착각하게 됩니다. 이는 정말 어리석은 것이며, 교만의 극치입니다. 

가장 탁월한 영성은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 즉 한계를 가진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전능해서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 놀라운 영광을 받으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부족함을 느낀다는 사실, 연약하다는 사실 때문에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 한계를 인정함으로 정기적으로 안식하는 중에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자원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위해 천사를 보내셔서 그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엘리야에게 굳센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왜 쓸데없는 말을 하고 있느냐고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낙심과 좌절과 두려움과 피곤을 이해해 주시고 그의 필요를 채워 주심으로 그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은 충분히 쉬게 하심으로 엘리야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정하신 것은 정기적으로 재충전하는 시간을 갖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탈진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고통스런 경험을 통해 재충전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십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를 아프게 하십니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가 충분히 쉴 수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정기적으로 안식을 누리며 재충전하는 시간을 갖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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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례
감사합니다
2023.02.11
최주창
하나님으로 숨 고르기

안식은 포근하고 거룩한 하나님 숨결의 사랑입니다.
안식일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합니다,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 보다 무엇을 “할 것인가” 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이라면, 그 기쁨 안에는 분명 인간을 향한 사랑의 복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며 사랑의 복을 얻지 못합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며 사랑의 복을 받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한다는 것은 거룩한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멈추고 하나님 안에 안식하는 것 자체가 사랑이며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거룩 안에는 복이 담겨 있습니다.

안식일에 하나님의 숨을 들이 마시면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숨이 공급될 때 우리는 생령으로 사랑을 먹고 살게 됩니다. 인생의 숨을 고르고 조용히 하나님 사랑 안에 거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새롭게 사랑으로 창조 하실 것입니다.
거룩한 안식일에 하나님과 함께 사랑의 숨을 들어 마시며 하나님 말씀으로 은혜가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2023.02.09
김은실
내가 살고있는 시대는 피로시대입니다.
바쁘지 않음은 삶을 잘 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으로 들릴만큼 분주하고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야 마치 잘 사는 사람 대접을 합니다.
주일마저도 쉬지 못하면 능력있다고 말하며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만성피로에 쪄든 현대인들이 노예들의 삶과 뭐가 다른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1월에 이어 모세오경을 필사 중에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십계명이 400년의 노예생활을 했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명령임이 내게 주신 명령으로 받는 것보다 더 쉽게 떠오릅니다.
노예는 만성피로에 찌들어 쉼이 없습니다.
주인의 명령대로만 살아야하기에 자기 주체적인 인생의 계획을 못세웁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모세는 그 백성들에게 모세오경을 설교합니다.
천지창조 얘기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숨고르는 삶의 본을 먼저 보이셨음을 말했습니다.
당시 노예 근성의 이스라엘 백성이나 오늘날 현대인들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물질과 출세의 노예가 되어 주일도 안식일도 없이 열심히 일하면서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망각하고 삽니다.

오늘 묵상 도움글에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이 한계를 만드신 것은 우리를 보호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똑같습니다. 한계를 넘어서는 것은 위험합니다.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때 스스로를 하나님처럼 착각하게 됩니다. 이는 정말 어리석은 것이며, 교만의 극치입니다.

가장 탁월한 영성은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 즉 한계를 가진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전능해서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 놀라운 영광을 받으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부족함을 느낀다는 사실, 연약하다는 사실 때문에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 한계를 인정함으로 정기적으로 안식하는 중에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자원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나의 한계를 인정할 때 나를 도우시고 나를 위해 안식일을 명령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보일 것임을 압니다.
안식일에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리듬에 푹 젖어서 만끽함으로 영육의 충만함을 얻어야 나머지 6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 수 있음을 기억하겠습니다.
하나님으로 숨고르는 귀한 삶을 영위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2023.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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