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너는 거짓된 풍설을 퍼뜨리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2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 3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지니라
본래 제9계명은 ‘위증’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재판은 증언에 의존했기 때문에 말에 따라 사람이 죽기도 하고 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위증을 피할 법적 장치로서 2인 이상의 증인이 요구되었습니다. 사형 판결이 내려지면 결정적 영향을 미친 증인이 앞장서서 형을 집행했으며, 만약 위증이 판명되면 위증한 자가 사형을 당하게 되어 있었습니다(신 19:18-19). 사실을 알고도 고의로 말하지 않는 것 역시 죄로 간주했습니다. 그로 인해 누군가 큰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레 5:1).
하나님은 왜 거짓말을 금하셨을까요?
우리의 거짓말이 이웃을 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신19:19, 새번역). 성경에서 거짓말이 용인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아기 모세는 가족의 거짓말 덕분에 목숨을 건졌습니다(출 2장). 사무엘은 사울을 대신할 왕을 세우러 가면서 하나님이 시키신 대로 “제사를 드리러 왔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삼상 16:2). 요나단도 다윗을 살리기 위해 거짓말을 했습니다(삼상 20:27-29). 이 거짓말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 가운데 있고, 생명을 위한 것이며, 사랑이 전제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한편,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이중적인 모습을 책망하셨습니다.
위선도 일종의 거짓말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선량한 척, 종교적인 척하지만, 내면은 사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정의의 기치를 높이 들고 개혁을 부르짖는 사람들 중에 종종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자기 자신과 사람 앞에 정직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것을 꼭 정직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내 만족과 이기심에 기반한 솔직함은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만듭니다. 정직은 남의 허물을 들춰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 허물을 고백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진실을 말하는 것과 생각을 모두 드러내는 것은 다른 차원입니다. 주관적 사실이 꼭 진실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의 입술은 생명을 살리고 있습니까?
❶ 생명을 살리는 말, 사랑의 말을 하고 있습니까?
❷ 진실과 정직의 말이라고 오해하며 사용했던 언어들이 있습니까?
본래 제9계명은 ‘위증’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❶ 관련설교 ➀ 2018 다시 세우는-십계명 9
제9계명의 본래 의도와 정신은 재판 과정에서 위증을 피하기 위한 것입니다. 당시의 재판은 증언에 의존했기 때문에, 말에 따라 사람이 죽기도 하고 살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위증을 피하기 위해 모든 재판에는 2인 이상의 증인이 요구되었습니다.
열왕기상 21장은 ‘위증’으로 인해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북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아합은 별장 궁전의 정원을 확장하기 위해 나봇의 포도원을 탐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왕의 제안을 나봇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 땅은 조상에게서 유산으로 받은 것이요, 삶의 터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이방여인으로 왕비가 되었던 이세벨이 계략을 세우게 됩니다. 그녀는 한통의 밀서를 이스르엘 성읍의 지도자들에게 보냈습니다. 그 내용은 ‘두 명의 거짓 증인’을 매수하여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고 고발하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발을 근거로 나봇을 돌로 쳐서 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세벨의 계략은 구약의 율법에 근거하여 합법성을 가장하였습니다. 왕을 저주하거나 하나님을 저주하면 돌로 쳐서 죽이도록 되어 있었고(레24:15-16), 이런 연유로 인하여 범죄자가 처형되었을 경우에는 모든 재산을 왕실에 귀속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천인공노할 사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이 바로 ‘두 명의 증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거짓말을 금하셨을까요? 우리의 거짓말이 이웃을 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신19:19).
“거짓 증거 하지 말라(레20:16)”는 말 앞에 붙어 있는 전제 조항은 “네 이웃에게 불리한”이라는 조항입니다. 사실 정의와 정직이라는 것이 중요하지만, ‘사랑’과 ‘은혜’가 없는 정의는 위험한 칼과 같습니다.
우리들에게 근본적인 신앙의 자세는, 나에게 해가 된다 할지라도 정직을 말하며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웃을 해하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는 신앙인이 되는 것, 사랑이 그 근원이 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정직하고 진실한 것을 좋아하신다는 것이며, 어떠한 경우에라도 거짓으로 인해 이웃에게 해가 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위선도 일종의 거짓말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선량한 척, 종교적인 척하지만, 내면은 사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자기 자신과 사람 앞에 정직해야 합니다.
❸ 관련설교 ➂ 2018 다시 세우는-십계명 9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위선자’라고,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심지어는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질책하셨습니다. 겉으로는 선량한 척 그리고 종교적인 척 하지만 내면으로는 사악한 사람들을 향하여 말입니다. 이런 경우에 위선은 거짓에 해당합니다.
한홍 목사가 쓴 [칼과 칼집]이라는 책에 보면, ‘위선’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위선은 한자로 ‘거짓 위(僞)’에 ‘착할 선(善)’을 쓴다. 즉 선한 것인 양 위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위선이란 결국 도덕적 결벽성 때문에 생긴 것이다. 미국 서부의 한 대형 교회에서 과거에 치명적인 도덕적 죄를 지은 적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더니, 이들 중 대부분이 평소에 “나는 절대 그런 죄를 짓지 않을 것이다”라고 큰소리치던 도덕적 결벽주의자들이었다는 것이다.
“개혁을 한다. 부정부패를 척결한다. 새 역사를 만든다”고 하면서 정의의 칼을 높이 드는 사람들의 문제는 자기 자신이 가장 먼저 개혁되어야 할 대상임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❹ 관련예화 (『생각이 내가 된다』 이영표, 두란노, 18.05.16)
“거짓말”
토트넘에서 선수 생활을 하던 어느 날, 당시 토트넘의 마틴 욜 감독이 오전 운동을 하기 위해 운동장으로 향하던 나에게 다가와 갑자기 어깨동무를 하며 질문했다.
“영표, 지금 나이가 몇이지?”
순간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 머리는 빠르게 계산을 하고 있었다. 축구에서 선수의 나이는 곧 선수의 가치를 말한다.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선수의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한국은 태어나는 순간 한 살이지만 유럽은 태어나서 생일이 되어야 한 살이 된다. 한국에서는 해가 바뀌면 한 살을 더 먹지만 유럽에서는 해가 바뀌어도 생일이 지나지 않으면 나이를 먹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때는 한국 나이와 유럽 나이가 2살 차이가 나기도 한다.
당시 나의 정확한 나이는 만 29살이었다. 그러나 나는 1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계산을 한 후 마틴 욜 감독에게 28살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이 일은 29살을 28살이라고 말해 버린,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 거짓말 안에는 나 자신을 포장하여 이득을 취하려는 생각과 함께 이득을 위해서라면 남도 속일 수 있다는 무서운 죄의 본성이 숨어 있었다. 그날 나는 오전 내내 훈련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었으며, 사람들 앞에서 가끔 간증도 하던 시기였다.
훈련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만약 나에게 1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면 분명히 나이를 속여 이득을 보려는 생각을 눌렀을 것이다. 유혹을 받았겠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기에 정직하자’라고 다짐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1초는 내가 정말 정직한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날카롭고도 예리한 시간이었다.
“도저히 피해 갈 수 없는 시간, 1초.
그 앞에서 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
❺ 관련예화 (『생각이 내가 된다』 이영표, 두란노, 18.05.16)
“정직”
2017년 미국에서 있었던 LPGA 메이저 대회인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에서 박인비 선수가 우승을 차지해 세계 랭킹 1위였던 18세의 리디아 고를 2위로 밀어 내고 1위 자리에 올랐다. 당시 전 세계 모든 골프 관련 기사가 박인비 선수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54대회 연속 컷 탈락을 당하지 않던 리디아 고의 2라운드 컷 탈락 소식이었다.
리디아 고는 2라운드 13번 홀에서 어드레스 자세에 들어간 직후 공이 스스로 조금 움직였고,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자진 신고해 벌타 하나를 받았다. 결국에는 1타 차이로 컷 탈락이 되고 말았다. 만약 스스로 정직하지 않았다면 ‘55대회 연속’이라는 새로운 기록과 함께 계속해서 경기에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전 시즌 개막전에서도 리디아 고는 똑같은 상황에서 1벌타를 자진 신고했고, 결국 1타 차이로 우승을 놓친 경험이 있었다. ‘정직’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행동으로 보여 준 리디아 고의 모습은 나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세계 랭킹 1위를 지키는 것보다 정직한 2위가 더 소중하다는 리디아 고의 선택은 그녀가 어떤 인격의 소유자인지를 스스로 증명해 주는 확실한 예다.
우리는 때때로 승자에게 쏟아지는 엄청난 환호를 그리워한 나머지 나 자신과 모두를 속이려는 유혹에 빠질 때가 있다. 잘못된 선택은 우리의 인격에 고스란히 녹아 남는다.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는 스스로 결정하지만, 자신이 어떤 인격의 소유자인지는 남들이 평가한다. 그러므로 당신의 인격에 대한 남들의 평가는 곧 당신 자신이 선택한 결과다.
“정직은 어떤 의미에서 선택이다.
그리고 우리의 선택은 곧 우리의 인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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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둑질과 상관없는 시람입니까?
1) 인지하지 못한채 무감각하게 행하던 도둑질은없습니까?
2) 도둑질을 방조하거나 동참할때 어떤빙계들을 댑니까?
인생을 가장 편하게 사는 길은 다수의 무리에 속하거나 큰 무리에 속하는 것입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소수에 속해 있으면 위협을 당하던지 아니면 손해를 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저도 많은 무리에 속해 있는 것이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수의 안전함 가운데 우리는 불합리한 상황을 알면서도 그대로 행하는 경우가 많이 있고,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던 것이고, 누구나 다 그런 방법으로 한다는 말에 우린 쉽게 그 상황에 수긍합니다. 정직하려고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쉬운 일일 수도 있지만 많은 어려움이 뒤따르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 가면서 부딪히는 문제들을 내려 놓고 지혜롭게 살아 갈수 있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여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