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음식은 늘 우리에게 유혹이 됩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제일 처음 유혹받으셨던 부분도 바로 음식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음식은 생존을 위한 아주 기본적인 욕구이므로 가장 큰 유혹이 될 수 있습니다. 탐식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음미하거나 감사할 틈도 없이 너무 빨리 먹어 치우는 속식, 과도한 욕심이나 집착으로 게걸스럽게 먹는 폭식, 까다롭게 먹는 미식, 사치스럽게 먹는 호식 등 음식에 의한 즐거움에 끌려다니는 것이 탐식입니다. 음식은 단순히 생존을 넘어 정치, 경제적 지위를 가늠하게 하는 지표가 되기도 하고, 음식이 차려진 식탁은 각종 교제의 장이 되기도 합니다.
탐식은 본능을 자극하고, 육체의 소욕에 굴복하게 만듭니다(갈 5:17).
사탄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예수님을 육체의 소욕에 굴복하시도록 유혹했습니다. 유혹은 예수님이 40일 금식을 마친 직후, 곧 본능을 죽이고 하나님의 음성에 따라 살기 위해 행하신 경건의 훈련 직후에 찾아왔습니다. 훈련과 유혹은 맞닿아 있습니다. 사탄은 인간의 허점을 공략합니다. 탐식은 인간의 본능을 가장 직접적으로 자극할 뿐만 아니라 육체의 소욕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게 합니다. 아담과 하와나 엘리의 아들들은 모두 자신이 먹어야 할 것 이상을 탐내는 죄에 빠졌습니다(창 3:6; 삼상 2:12-29). 탐식은 결국 영적 타락을 불러옵니다.
탐식은 우리 몸을 더럽힐 수 있습니다(고전 6:12).
우리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므로 거룩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무엇이든 먹을 수 있지만,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성령을 거스르는 탐식은 다른 죄들로 연결됩니다. 단지 ‘음식’의 문제가 아니라 음식으로 인해 뻗치게 되는 욕망이 문제입니다(고전 8장). ‘음식’을 매개로 방탕, 타락, 쾌락 등의 감각이 되살아날 수 있습니다. 술이 문제가 아니라 성전이 망가지는 것이 문제입니다(엡 5:18). 인간은 선악을 분별하여 음식의 정도와 먹는 장소를 선택하고 절제할 만큼 선한 존재가 아닙니다.
나는 음식에 지배당하고 있습니까?
❶ ‘음식’과 관련된 문제들이 나의 영과 육을 압도하고 있습니까?
❷ 내가 절제하거나 끊어야 할 ‘음식 관련 습관/죄’는 무엇입니까?
음식은 늘 우리에게 유혹이 됩니다.
❶ 관련설교 ➀ 2004 성공의 장애, 탐식 중
우리들에게 유혹이 된다는 것은, 늘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예수님께 나와서 “이 돌더러 떡이 되게 하라”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었다면 유혹이 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일을 행하실 수 있는 분이었기에 유혹이 되는 것입니다.
탐식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엄청난 유혹이 되는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너무나 풍족하기 때문입니다. 궁핍하던 때, 먹을 것이 없던 때는 먹는 문제가 생명을 이어가는 필수적인 요소였다면, 이제는 우리에게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유혹이란, 불가능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곳에 있습니다. 우리들이 행할 수 있기에 유혹이 되는 것입니다.
사탄은 인간의 허점을 공략합니다. 탐식은 인간의 본능을 가장 직접적으로 자극할 뿐만 아니라 육체의 소욕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게 합니다.
❷ 관련예화(『탐식』p.17-18, 프랜시 프로즈)
4세기 ‘사막의 교부’라 불리는, 폰투스의 에바그리우스는 황야에서 금욕적 생활을 하며 탐식의 욕망에 저항했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자연을 관찰하면서, 그레고리우스 교황처럼 논리적이거나 체계적이지는 않치만 훨씬 더 서정적이고도 감동적으로, 탐식이라는 욕망을 정의 내렸다. 이는 탐식을 가장 잘 이해한 정의가 아닐까 싶다.
‘탐식은 정욕의 어머니이자 사악한 마음의 자양분으로, 단식을 미루게 하고 고행을 방해하며 도덕심의 적이 된다. 이는 맛깔스러운 양념과 음식을 꿈꾸게 하는 버릇없는 어린아이이며 매어 둘 길 없는 광란이다. 탐식은 건강을 시기하여 내장을 가로막아 신음을 내보내고 거칠 것 없는 분노를 터뜨리며 정욕과 공모하여 지성을 오염시켜 불만의 밤과 암울한 죽음을 선사한다.’
성령을 거스르는 탐식은 다른 죄들로 연결됩니다. 단지 ‘음식’의 문제가 아니라 음식으로 인해 뻗치게 되는 욕망이 문제입니다(고전 8장).
❸ 관련설교 ➁ 2004 성공의 장애, 탐식 중
탐식은 자신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뿐만 아니라 탐식은 다른 사람까지도 죽게 만듭니다.
이보다 더 해로운 죄악이 어디 있겠습니까?
탐식은 자신이 가져야 할 것 이상을 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먹어야 하는 것 이상을 먹는 것은 “죄”입니다.
제가 일본에 선교여행을 다니면서 몇 가지 느끼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일본인들과 일본 문화에 배어 있는 소식과 절제된 생활이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먹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소식하며 매사에 절제하는 모습은 본 받을만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대비되는 것이 로마시대의 탐식의 문화였습니다. 그들의 지나친 탐식문화는 로마가 멸망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로마의 탐식 문화
로마는 인류 역사에 찬란한 문화를 남겼지만 그 뒤 안의 병폐도 컸습니다. 로마의 흥망성쇠를 다룬 역사가들은 로마가 멸망한 여러 가지 이유를 찾았습니다. 그 중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유가 바로 탐식의 문화입니다.
로마인들은 음식을 단순히 생존을 위한 것으로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온갖 진미를 즐겼을 뿐만 아니라 먹고 마시는 일을 위해 시간과 정력을 낭비했습니다. 단지 희귀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음식의 재료를 삼았고, 음식과 관련된 모든 것들, 예컨대 식탁 장식, 옷차림, 음식을 먹는 방법 등 모든 것을 탐닉했습니다. 심지어 계속 음식을 먹기 위해 이전에 먹은 것을 토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빌리티우스 황제는 이런 방법으로 모든 연회에 참석할 수 있었고, 크라우디우스 황제는 토하기 위해 새의 날개 털을 목 속에 집어넣었다고 합니다. 탐식의 문화는 결국 대제국의 몰락을 부추긴 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❹ 관련명언
나는 고기의 불결함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욕망의 불결함이 두렵다.
_ 『고백록』 성아우구스티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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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인 성전은 성령을 모시는 집이다. 성령님은 집이 더럽거나 집이 망가지면 나갑니다.
성령님이 나가시면 죄에 빠져 방황하고 죄에 더 하여 지으니 막장 인생이 되기 쉽습니다.
여기에서 막장이란 세속의 막장이 아니라 하나님 믿음에 대하여 막장을 말합니다.
거룩한 성전이 되어 성령님을 모시고 함께 살아가려면 성전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성스로운
집으로 수리하여 빛이나게 하고 성령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합니다
성전이 평화롭고 화평하여야 성령님의 명령 받아 순종함으로 은혜 받고 지혜로운 삶을 살아
생명의 길로 갑니다.
그리하여 몸이 얼마나 중요한지 떨리고 두려운 생각이 듭니다.
근심 걱정 없이 평안하고 건강한 몸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잘 먹여야 하는데 이것이 문제이다.
음식은 유혹합니다.
미식을 하거나, 폭식을 하거나, 음미하거나, 과도한 욕심이거나 , 호식 등이 있습니다.
생존을 위하여 먹어야 하는데 사치스러운 음식에 의하여 즐거움에 끌려 다녀 몸이 상쳐 밭을가봐
두려운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탐식입니다.
탐식은 인간의 본능을 가장 직접적으로 자극할 뿐만 아니라 육체의 소욕을 가장 적나
라하게 드러나게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먹지 말라는 중앙에 있는 나무옐매를 유혹에 빠져서 열매를 먹고 죄를 지었습니다.
이것이 영적 타락을 불러 옵니다.
그리하여 성전인 몸을 더럽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몸에서 하나님의 성령이 떠난 것입니다.
사람은 선악을 분별하는 음식을 먹어야
성전인 몸이 죄를 짓지 않고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성령에 거스러지는 탐식에 의한 음식을 먹지
말라 거룩한 성전이 되는 유익한 음식을 잘 먹기를 기도합니다
음식의 양과 종류보다 타인과의 비교 의식과 자괴감, 자기 비하, 우울증 등등 무엇보다 하나님의 성전인 나의 몸과 건강을 잃어가는 것 또한 탐식의 죄라는 사실이 꽤 충격이었다.
탐식에 대한 나의 생각이 그도안 얼마나 무지하고 오만한지 알게 되었고, 지난 나의 탐식의 시간을 돌아보며 무엇을 끊어내어야 할지 알게 된 시간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