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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서 생명으로

1월 13일 탐심, 악마적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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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6: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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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탐심의 정체는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생기면,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도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탐심이 있는 사람은 경건의 삶을 살지 못합니다. 경건은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인데, 욕심이 하나님과 그 사람 사이를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자족하는 마음’에는 경건의 유익이 있습니다(딤전 6:6). 그러나 ‘부하려 하는 마음’에는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이 있으며 결국에는 멸망에 이르게 합니다(딤전 6:9).

탐심은 악마적 욕망입니다(Evil Desire, 3:5).

하나님이 주시는 창조적 욕망은 비전으로 발전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죄를 낳고, 사망으로 이어집니다(약 1:15). 탐심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잘못된 욕망입니다(창 3:5-6). 아담과 하와는 탐심으로 선악과를 먹었고, 그로 인해 수치로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낯을 피해 숨었습니다(창 3:10). 그들은 하나님을 ‘돕는 자’가 아닌 ‘대적자’로 인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기지 못합니다(6:24).

하나님과 동행하든지 아니면 대적하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주시면서 그들을 ‘시험’하셨다고 했습니다(출 16:4). 일용할 양식에 대한 감사, 매일의 감사가 있는지 보신 것입니다. 일용한 것에 자족하는 사람은 매일 하나님을 인정하며, 매일 은혜를 경험하며, 매일 감사하게 됩니다. ‘양식’의 근원이신 주님을 잊고, 내가 ‘양식’의 주인이 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 되시도록 하지 못합니다.

탐심은 더 많이 갖길 원하는 저열한 이기심입니다.

탐심은 인격을 앗아가고, 물질의 노예로 만듭니다. 영적으로 타락하여 도덕성을 상실하면 물질(우상) 숭배자가 됩니다. 급기야 구원을 상실하게 됩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 12:15).


나의 생각과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❶ 하나님과 그분의 비전으로 이어지는 창조적 욕망입니까?

❷ 생각하고 바랄수록 죄와 사망으로 이어지는 탐심입니까?


묵상 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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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생기면,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도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탐심이 있는 사람은 경건의 삶을 살지 못합니다.

❶ 관련설교 ➀  2004 성공의 장애, 탐욕 중

탐욕의 정체는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탐욕하는 사람은 절대로 경건한 삶을 살지 못합니다. 경건의 뜻은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인데, 그 욕심이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을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이야기한다면, 탐욕하지 않는 것, 자족하는 마음은 경건하게 만들어 줍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리면 하나님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라고 말을 합니다. “자족”이란 스스로 만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처해 있는 상황을 은혜로 받아들이고 현실에 만족하는 사람은 “경건”의 유익이 있지만, 탐욕하는 자에게는 경건이 걸림돌이요, 삶의 불평이 됩니다. 즉 은혜를 아는 자만이 탐욕을 벗어나 경건한 삶을 살아갑니다.


탐심은 악마적 욕망(Evil Desire, 골3:5)입니다. 탐심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잘못된 욕망입니다(창 3:5-6).

관련설교 ➁  2004 성공의 장애, 탐욕 중

“부하려 하는 마음”은 시험과 올무, 여러 가지 해로움과 정욕에 떨어질 뿐 아니라 결국은 멸망에 빠지게 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영어성경(NIV)에서는 “탐욕”을  “Evil Desire"라고 표현합니다. 악마적인 욕망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3:5) Put to death, therefore, whatever belongs to your earthly nature: sexual immorality, impurity, lust, evil desires and greed, which is idolatry.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자족하지 못하고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것은 잘못된 욕망으로 “탐욕”입니다. 그 탐욕이 마음속에 들어가자 순진하게 보았던 것들이 그냥 지나쳐 지나가지 않습니다. 죄가 눈을 가립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하여 담대해집니다.


탐심은 더 많이 갖길 원하는 저열한 이기심입니다. 탐심은 인격을 앗아가고, 물질의 노예로 만듭니다. 영적으로 타락하여 도덕성을 상실하면 물질(우상) 숭배자가 됩니다. 급기야 구원을 상실하게 됩니다.

관련설교 ➂  2004 성공의 장애, 탐욕 중

누가복음 12장13-21절의 비유가 등장하게 된 이유는 재산분배 문제로 형제가 서로 싸우다가 예수님을 찾아와 해결을 하고자 합니다. 유대관습에는 형은 3분의 2만 상속받게 되어있는데 부모가 갑자기 죽자 형은 혼자 독차지하려고 했기에 동생이 불만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공평한 분배를 말하지 않고 [탐심을 물리치라 오늘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말씀하시면서 분배문제가 아닌 인간의 탐심에 대한 치료의 말씀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 주님은 “형제간의 싸움을 보고 계신 것이 아니라, 그 인간들 속에 들어있는 탐욕의 죄를 보고 계셨습니다.” 바로 탐욕으로 인한 비겁하고도 저열한 이기심 말입니다. 예수님은 조용히 사람들에게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지적해 주셨습니다.


탐심은 인격과 도덕성을 상실케 하고 영적타락을 가져오는 우상숭배의 죄가 됩니다.

성경에 있는 예수님의 비유 말씀 40개 중에 16개는 돈과 소유에 관한 내용입니다. 사람은 돈 때문에 걱정이 많아지고 심령이 악해져서 타락하였으며 이러한 사람은 모두 구원을 상실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결론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는 말씀입니다.


관련기사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한국기독공보 연재기사 20.10.30)


돈과 재물만큼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없으며, 또한 동시에 파멸로 이끄는 것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탐심을 늘 경계해야 한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모든 성공의 기준을 돈과 재물의 많음에 두고 있는 번영신학(-일종의 착취신학)의 현실에서, 탐심에 대해 스스로 절제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바로 이 비유가 이러한 점을 말해 주고 있다.


비유에 등장하는 부자에 관한 것이다(16~21절). 한 부자는 ‘밭’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밭’을 의미하는 헬라어 명사 ‘코라’는 넓은 농지 또는 어떤 지역을 의미하기에(마 8:28), 이 부자는 아주 넓은 토지를 가진 자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그의 "소출이 풍성하다"라고 말하니, 그는 쌓아둘 곳간이 없을 정도로 대풍을 거둔 셈이다. 이러한 그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했기에(21b절), 소출의 풍성함에 대한 어떤 감사의 제물도 하나님께 드리지 않았다.


또한 그는 이웃과의 나눔도 없었다. 그의 관심은 오직 ‘자신’에게만 쏠려 있다. 그래서 17~19절에서 2인칭 소유대명사 ‘내’가 무려 4번이나 사용되어, 그가 아주 자기중심적인 사람임을 나타낸다. 곧 그는 ‘내’ 곡식(17절), ‘내’ 곳간과 ‘내’ 모든 곡식과 물건(18절) 그리고 ‘내’ 영혼(19절)에만 관심을 갖는다. 결국 그는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는 것에만 관심을 둔다(21a절).


이러한 그는 결국 자기 탐닉에 빠진다. 그래서 그는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19절)하는 것에 자신의 모든 재물을 소비한다. 이에 하나님은 그를 ‘어리석은 자’라고 부른다. 이 단어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거나 또는 자신이 곧 멸망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 사람을 가리킨다. 결국 하나님은 탐욕에 도취된 그 부자의 영혼을, 그날 밤에 데려가셨다.


이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보다 탐심을 물리치라고 더 많이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재물(맘몬)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마 6:24)라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또한 사도 바울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딤전 6:10)라고, 심지어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5; 엡 5:5)라고 말한다. 이러한 말씀들을 토대로 "예수님을 나의 구주"라고 고백하면서 형제들 사이에 유산 문제로 다투거나 또는 재산 문제로 교회의 분열을 초래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인지 아니면 맘몬을 섬기는 우상 숭배자인지 스스로 점검하고, 회개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어리석은 부자의 영혼을 데려가시는 것처럼, 오늘 밤 우리의 영혼도… !


류호성 교수/서울장신대  *출처: http://www.pckworld.com/article.php?aid=8687055434


관련예화 (『예화포커스37-절제,욕심』 한태완, 좋은땅, 20.06.05)


알베르 카뮈가 쓴 희곡 「오해」라는 작품이 있다.

유럽 어떤 곳에 모녀가 여인숙을 차리고 살아가고 있었다. 가난에 시달린 두 모녀는 어느 날 부터인가 남모르게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여인숙을 찾아오는 손님 중, 혼자이거나 부유한 인상의 사람만을 골라 독약을 먹이고 보따리를 턴 후 시체는 강물에 던져 버렸다.


어느 날 밤 한 청년이 그 여인숙을 찾아왔다. 두 모녀는 그 청년을 몰래 독약을 먹여 죽였다. 그리고 두 모녀는 보따리 풀어 보았다. 그 속에 신분증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아들이며 오빠인 장이었다. 그는 오랜만에 어머니와 누이동생을 만나 행복하게 해주려고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는 어머니와 누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그 여인숙에 투숙한 것이다.


두 모녀의 절망은 죽음 그것과 같았다. 결국 장의 모친은 아들의 시체를 버린 그 강에 투신자살을 하고 그 딸 마르타도 “범죄란 그것을 위해 비록 천명이 함께 협력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불행할 뿐이다”라고 독백하고 죽음을 택했다.


돈이 불행한 자신들에게 행복과 사랑의 문을 열어 줄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 데서, 끔찍한 범죄를 계속했으며 결국 얻은 것은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과 성공하여 돌아온 아들의 살인과 자신들의 죽음뿐이었다.


성도들은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재물을 자신만을 위해 쌓아 놓는 부자가 아니라, 나눔을 통해 풍성하게 채움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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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창
1. 탐심이란 어떤 마음일까
마음에 탐하여 애착을 갖는 것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져 누리고자 다른 사람의 욕망을 가지려는 욕심이 나 탐하는 그런 마음
그러므로 탄심은 눈이 멀면 악마적인 욕망이 되어서 갖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갖지 못하다 보니 다른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시기하기도 합니다. 여전히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다 보니 다투고 있습니다. 탐심은 악마적인 욕망으로 우리 영혼의 독소이다.
2. 탐심의 정체는 우상 숭배이다.
남의 것을 더 가지려는 지나친 욕망은 물질을 추구하여 그것을 하나님의 위치에 놓이기 때문에
우상숭배가 됩니다.
자족한 마음이 하나님을 생각하는 경건 마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3. 탐심의 악마적인 욕심
하나님과 우리의 구원보다 앞선 육신을 위한 세상과 부에 대한 열망은 더 이상 확실할 수 없는 죽음의 징표입니다.
즉 육신의 즐거움과 번영에 대한 추구가 탐심의 죄악입니다.
그러므로 탐심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잘못된 욕망입니다.
4. 우리는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기지 못합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선택을 하는 것은 행동하는 것이다 즉 우사숭배이냐 하나님을 진실로 믿느냐가 선택의 문제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분별할 수 있는 시선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눈은 말씁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순결을 통하여 하나님의 눈이 되기를 바랍니다.
돈은 탐심에 대한 상징이며 탐심을 이룰 수 있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 고 하나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돈에 시선을 주지 말고 선택한 하나님의 반석에서 샘물이 흐르는 은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2023.01.14
김은실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버리는 것 버리는 것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더 가지지 않는 것 이상하다 동전 한 닢 움켜 잡으면 없어지고 쓰고 빌려주면 풍성해져 오 땅 위에 가득하네 사랑은 참으로 버리는 것 더 가지지 않는 것🎵
어렸을 때 교회에서 신나게 불렀던 복음송이 오늘 묵상하면서 떠올랐습니다.
사실 그 당시에는 가사의 의미도 모르고 열심히 율동하면서 불러댔던 것 같습니다.
막상 떠오르는대로 가사의 내용을 적어놓고 보니 그렇게 심오할 수가 없습니다.
동전 한 개라도 내 것이라고 움켜쥐면 없어지고 빌려주고 나누면 풍성해지는 원리~~
탐욕이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악마적인 욕망이어서 갖고 싶은 것이 생기면 그것만 묵상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우상이 되는 것이라면 사랑은 남을 위해 내 것을 덜어내고 나누고 버리는 것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살아내는 행위가 아닐까!
요즘 창세기를 필사하다보니 아브라함과 이삭이 받은 복이 생각납니다.
조카 롯과 땅을 분배할 때나 네가 밟는 모든 땅을 네게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아브라함이 취했던 반응...
자신이 머무르는 곳에 우물을 파고도 탈취하려는 대적들에게 순순히 내어주기를 반복했던 이삭의 반응...
아브라함과 이삭이 재물 앞에 눈이 멀어 탐욕스러웠다면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지 못하셨을테고 하나님을 모른다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저열한 이기심은 자기 자신도 메마른 인생에서 고립되지만 주변인들과의 관계도 지속될 수 없도록 파괴적인 감정입니다.
그 무엇도 내 삶에 우선순위가 되어 그것으로 우상을 삼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않아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깨닫고 반응하는 매일의 작업이 내 삶에 없다면 무의미하게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세상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죄가 죄인 줄 모른 채 살아갈텐데 세례교인으로 받아야할 교육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며 생각과 마음의 푯대를 하나님의 말씀에 조준할 수 있게 해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2023.01.13
이경희
탐심, 악마적 욕망
탐심의 정체는 우상숭배입니다
탐심은 악마적 욕망입니다
우리는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기지 못합니다
탐심은 더 많이 갖길 원하는 저열한 이기심입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비전으로 이어지는 창조적 욕망의 탐심을 가지더럭 허락하여 주세요
2023.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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