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좋다는 것…”
(고전 15:1-11)
우리는 종종 믿음이 좋다고 말하기 껄끄러운 사람을 보며 불편해지거나, 주변으로부터 믿음과 관련한 편견의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아야 잘하는 것인지, 아니면 세상 사람들과 잘 지내야 잘하는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이런 신앙의 문제는 핵심적 신앙의 고백인 ‘부활’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부활의 신앙’은 우리에게 가장 근본적인 믿음의 의미를 묻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도’ – 경건의 모양과 경건의 능력 사이에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믿음이 좋다”는 것의 표징은 ‘경건’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 경건에 두 가지 종류(‘모양’과 ‘능력’)가 있다고 말합니다(딤후 3:5).
신앙적 의미에서 경건이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 혹은 ‘하나님께 헌신적인’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사도 바울도 디모데에게 가장 관심을 기울였던 것 중 하나가 바로 ‘경건 생활’이었습니다(딤전 4:7).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또는 자신의 의를 드러내기 위함인지 구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다운 경건을 위해서는 바로 십자가의 피와 십자가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고는 이것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의 삶에 크리스천의 영향력이 나타나지 않으며 마음에 평안이 없다면, 그것은 아직 자신이 십자가에 죽지 않고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십자가의 도가 나에게서 일어나지 않는 한 우리는 부활의 삶을 살지 못합니다.
‘부활’ – 전혀 새로운 관계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셨고, 실의에 빠져 옛 생활로 돌아가 있던 제자들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며 친구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모든 것이 끝났고 더 이상 소망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주님이 다시 찾아와 손을 내밀어 주신 것입니다. ‘새로운 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부활의 능력이란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나의 삶에서 일어나는 관계의 변화 말입니다. ‘관계의 변화’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믿음 좋은 척 해도 믿음이 없는 사람임에 분명합니다. 그 삶에 결단코 ‘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관계는 우리의 삶에서 새로운 성품을 만들어 갑니다. 믿음은 나무에 과일이 매일 매일 조금씩 자라나듯이 그 성장에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더 많이 인내하고, 더 많이 기뻐하고, 더 많이 절제하고, 더 많이 친절해야 자라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유무는 우리의 성품을 통해 나타납니다. 믿음은 감정이 아니라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믿음’ –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
믿음이란 성령님과 동행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랑하고 포용하여 주는 것입니다. 결국 참다운 믿음이란 삶을 통하여 증명되는 것입니다. 모든 관계가 회복되고, 함께 손을 잡고, 회복된 사람들이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부활의 모습이요, 부활의 참 기쁨입니다. 이제 우리는 매일 매일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믿음 있는 사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부활의 신앙이란, 단지 ‘믿음을 고백’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부활하신 주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인정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담대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가 완벽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내 뒤에 계신 분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의 신앙을 사는 사람은 ‘나도 실수할 수 있는 사람’임을 알기에 관용할 수 있습니다. 관용하지 않는 사람은 단지 믿음 있는 척 보일 뿐이지 실상은 믿음 있는 사람이 아님을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셨다는 확신을 가진 자만이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가장 크게 배우고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이 중요하다고 느낀 이유는 무엇인가요?
결단해 봅시다.
추천도서
『팀 켈러의 부활을 입다』
팀 켈러 저 (두란노, 2021. 3. 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