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
렘 4:1
한 줄 노트
- 영적전쟁은 하나님 앞에서 홀로 싸우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극한 상황으로 인도하실 때, 우리의 의지를 사용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 것입니다.
묵상질문
오늘도 당신이 맞이하는 영적 전쟁에서 ‘이겨놓고 싸운다’는 믿음이 있습니까?
묵상 레시피
(예레미야 4:1-4)
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 네가 만일 나의 목전에서 가증한 것을 버리고 네가 흔들리지 아니하며
2 진실과 정의와 공의로 여호와의 삶을 두고 맹세하면 나라들이 나로 말미암아 스스로 복을 빌며 나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
3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와 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에 파종하지 말라
4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 하나님은 어디로 돌아오라고 말씀합니까? (1절 상반절)
- 돌아온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1절 하반절-4절)
- 돌아올 때에 어떤 일들이 일어납니까? (2절 하반절)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1절)
하나님은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려는 이스라엘에게 ‘내게로 돌아오라’고 명하신다. 하나님께 돌아온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상을 버리고(7:30,13:27,16:18,32:34), 돌이키기로 마음먹은 것을 견지하는 것이다(3:1-5,10 참조). 진실하고(히, 에메트, 믿을만함), 공평하며(히, 미쉬파트, 하나님이 올바르게 여기시는 것), 정의로워야 한다(히, 츠다카, 공동체 안에서의 신실함). 즉 하나님의 주권에 자신을 맡기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믿을만하며, 올바르고, 신실한 것이다.
나라들이 나로 말미암아 스스로 복을 빌며 나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2절)
이스라엘에게 임한 복을 통해 이방 민족에게 하나님이 전해질 것이다. 이스라엘을 보며 자신들도 하나님을 부르고 복을 빌 것이다다. 천하 만민이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을 통해 복을 얻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떠올린다(창12:3, 22:18, 26:4).
묵은 땅을 갈고,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3,4절)
농사꾼은 오래 묵힌 땅, 가시덤불에 씨를 뿌리지 않는다. 늘 돌아오려는 시늉만 하고 결국 주저앉는 자는 ‘묵은 땅’과 같다. 하나님은 ‘묵은 땅을 갈아’ 그들의 마음 밭,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라고 명령하신다. 새로 기경된 밭에 말씀이 뿌려져야 열매를 맺는다. ‘마음 가죽을 베라’도 같은 맥락이다. ‘할례’로 형식적으로만 하나님께 속한 자가 아니라, 그 마음까지 모두 드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할례 받은 자가 고통에 예민하게 반응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에 몸과 마음으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1. 영적 전쟁의 특징
지난달 묵상에서 영적 싸움이란 ‘하나님과’ 씨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씨름하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영적 전쟁에서 우리가 승리해야 한다는 것과 그 승리의 비결이 무엇인지 배우는 것입니다.
“영적 전쟁의 성패는 외부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의지라는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판가름됩니다.”
영적 전쟁은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자들이 하는 싸움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없을 때에는 이 싸움에서 절대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승리의 가능성은 오로지 하나님께만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승리를 가능케 하는 것은 오로지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챔버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영적 전쟁이 몇 분이 걸릴지 또는 몇 년이 걸릴지는 하나님께 달린 것이 아니라 내게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의지의 전쟁은 하나님 앞에서 나 홀로 치러야 합니다.”
의지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영적 싸움은 ‘홀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신비로운 것이죠.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영적 싸움을 하는 성도를 이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싸우지 않는 자는 누구라도 승리를 쟁취할 수 없습니다.
이 또한 챔버스가 늘 이야기했듯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인간이 하는 일’이 명백하게 구별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푸시지만 절대로 강압적이지 않으십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지만 싸움의 승패는 우리의 의지에 달렸습니다. 중요한 갈림길은 하나님께 속한 전쟁을 할지, 아니면 하나님과 관계없는 전쟁을 할지 우리가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카일 아이들먼의 책 [오늘, 제자로 살기]에 보면, 일상을 통해 좋은 예를 보여줍니다.
얼마 전 온 가족이 함께 히스파니올라 섬으로 한 달간 선교 여행을 갔다가 애틀랜타 공항으로 돌아왔다. 비행기가 착륙하자 각자 짐을 챙겨 비행기를 갈아타는 곳까지 기나긴 행군을 시작했다. 코너를 돌자 약 100미터쯤 되는 복도가 나타났다. … 거기서 아내와 아이들은 모두 무빙워크를 탔다. 하지만 나는 짐을 넓게 메고 있어서 무빙워크를 탈 수 없었다. 상상이 가는가? 아내와 아이들은 무빙워크에서 편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반면 내 몸에서는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나는 가족들과 보조를 맞추려고 애썼다. 그리하여 우리는 무빙워크가 끝나는 지점에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하지만 서로의 컨디션은 너무도 달랐다. 나는 완전히 지치고 짜증난 상태였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얼마든지 더 갈 힘이 남아 있었다. 이것이 자기 힘으로 걷는 사람과 성령의 무빙워크를 타는 사람의 극명한 차이다. 스스로 성령의 역할을 하려고 해봐야 제 풀에 지칠 뿐이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내 힘으로 직접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워 동행하는 것입니다. 내 다리로 걷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무빙워크를 타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2. 싸움의 순서
하나님 앞에서 영적 싸움을 하는 사람을 이길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싸움에서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습니다. 이길 수도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관한 것이요, 질 수도 있다는 것은 우리의 의지에 달린 문제입니다.
챔버스는 오늘 묵상에서 질 수 없는 싸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순서’가 바로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영적 전쟁에서 이기지 못한 이유는 먼저 외부 세계와 싸워 이기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먼저 하나님과 동행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이 싸움을 먼저 치르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이 싸움을 단 한 번에 영원히 해결하십시오.”
이렇게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영적 싸움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영적 싸움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얻어야 합니다. 그 자격이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친밀함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문제를 가지고 홀로 하나님께 나아간 자만이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 속으로 들어갑니다. 중요한 것은 이 친밀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싸우는 전쟁에서 반드시 이긴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은 우리의 영적 싸움이 이미 ‘이겨놓고 싸우는 싸움’이라는 말입니다.
친밀함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챔버스는 계속해서 ‘권리 포기’, ‘의지의 항복’, ‘양도’와 같은 말을 사용했습니다. 언젠가 그런 표현을 썼던 기억이 납니다. ‘의지로 의지를 양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지를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것은 일상 속에서 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끔 우리를 삶의 극한 상황으로 이끄십니다. 그곳은 삶의 가장 큰 분기점이 있는 지점입니다.”
‘분기점’은 우리의 의지가 어떻게 쓰임 받을지 결정되는 지점입니다. 우리는 극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쓸모없는 게으른 자로 살아가든지, 하나님께 쓰임 받으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가 되든지 결정됩니다.
오늘 묵상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문장이 있습니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전체 주제입니다. “최상의 주님께 당신의 최선을 드리십시오!” 이 말은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께 온전히 드림으로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