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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 광야

신 8:2-4

출애굽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가나안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준비된 땅이 아니었고, 그곳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잘 먹고 잘 살기 위함이 아니라 ‘아브라함과의 첫 약속’을 이루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인도하여 내신 것이 아닐까요? 요셉을 알지 못하는 바로가 나타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핍박한 이후로 출애굽할 때까지 긴 시간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기도를 했을까요? 핍박하는 바로가 죽기를 기도했을까요? 이방 땅에서 우상숭배자가 되어버린 그들에게 필요한 기도는 그런 기도가 아니라 회개였습니다. 그러니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찐 광야’에 들어섭니다. 그때 그들의 기도는 광야를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들어주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진짜 광야에서 해야 하는 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만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애굽에서 먹은 고기를 생각하며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민 11:33) 그들이 광야에서 죽은 것은 탐욕 때문이었습니다. 진짜 광야에 들어서면 우리는 신앙을 점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바라는 것이 옳은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무엇인지 점검합니다. 우리는 내 원대로 응답받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뜻대로 인도해 가십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철저하게 내려놓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진짜 광야에 서 있을 때, 우리가 드리는 기도는 방향조차 알 수 없습니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광야에서 믿음으로 발을 내딛는 것입니다.

진짜 광야에서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들

광야에서 우리가 진짜 보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홍해가 갈라진 사건은 단 한 번의 기적이었습니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매일 반복되는 이슬비 같은 은혜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그것을 은혜로 느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깨닫지 못했던 매일의 보호하심을 통해 가나안 땅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인생의 ‘찐 광야’를 만났을 때, 우리는 왜 광야에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훈련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을 기뻐하는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실까?” 우리가 하는 일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될 때, 비로소 ‘찐 광야’를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가장 크게 배우고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이 중요하다고 느낀 이유는 무엇인가요?
결단해 봅시다.


추천도서

『제자입니까』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 저, (두란노서원, 1999.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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