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주보 QT MY 메뉴
  • Home
  • >
  • QT
  • >
  • 하나님이 용서하시는 근거
이전으로
2021년 11월 20일 토요일
다음으로
이전으로
2021년 11월 20일 토요일
다음으로
주님은 나의 최고봉

하나님이 용서하시는 근거

통독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엡 1:7
video poster

한 줄 노트

  • 구속의 은혜가 값지게 느껴질수록 우리는 더욱 거룩한 삶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묵상질문

우리의 어떤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셨을까요?


묵상 레시피

◆에베소서 1:3-7
펼치기/접기

(에베소서 1:3-7)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 우리는 누구를 찬양합니까? (3절)
  • 우리에게 임할 복은 어떤 복입니까? (3절)
  • 복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입니까? (4-6절)
  • 우리는 무엇에 의지하여 이 복을 얻습니까? (7절)

찬송하리로다(3절)
바울은 ‘찬송하라!’로 본문을 시작한다. 유대인들은 찬송의 대상을 하나님으로 국한하지만,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확장한다. 성도들은 무엇을 찬송하는가? 하나님과 아들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구속을 찬송한다. 하나님의 구원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된다.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복을 얻을 수 있다.

신령한 복(3절)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받는 복은 신령한 복이다. ‘신령한(헬, 프뉴마티케)’은 ‘성령’과 동일한 어원을 갖는다. 신령한 복은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새로운 실존을 의미한다(13절, 살전1:5).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다. 예수님은 창조 때에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를 중개하는 창조의 중개자시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 구원의 중보자가 되신다. 유대인들은 자신을 선민으로 구분 지으려 했지만, 선택과 구원 행위의 절대적인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5절).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된다. 왜 선택하셨는가? 거룩하고 흠 없게 하시기 위함이다(4절).

자기의 아들들(5절)
이를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녀’ 되게 하셨다. ‘자녀 됨’이란 법률적 개념으로 ‘양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양자’는 본래 하나님 자녀가 아님을 나타낸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저주시는 ‘은혜’로 자녀가 되었다(6절). ‘은혜’는 그리스도 안에서 보이신 하나님의 구원 행위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죄 용서’로 나타났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구원을 가져오셨으며, 그 구속을 지속시킬 수 있는 원천이 되어 주셨다.


◆ 묵상도움글
펼치기/접기

은혜는 값진 것이다

지난 며칠 동안, 묵상이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용서’에 대한 묵상은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혼란스러웠던 부분은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죄를 용서하신 것이 아니라’는 부분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사 세상의 죄와 악을 없애기 위해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죄를 용서하셨다면 이는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과 원수인 세상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용서하실 수 있겠습니까?


논리적으로 하나님께서 먼저 하신 일은 이 세상의 죄를 없앤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죄를 용서하신 것이 아니라, 공의를 행하시기 위해 당신의 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원수가 되게 하시고 갈보리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죄를 용서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의 죄를 눈감아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실 수 없다는 말이 너무 지나친 말로 들리시나요? 하지만 이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고, 죄의 문제를 해결하셔야 했습니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누군가 이 죄를 ‘대신 담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챔버스는 왜 이 부분을 이렇게 심각하게 다루고 있을까요? 그냥 쉽게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죄의 용서를 가능하게 했다고 말하면 될 일을 말입니다. 챔버스는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의 은혜 가운데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다시 새롭게 세우실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치르신 그 어마어마한 대가로 말미암아 용서가 가능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쉽게 받아들이는 용서는 갈보리의 엄청난 고통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용서가 단순히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 때, 우리의 용서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용서란 사랑이라는 달콤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안고 있는 말이죠.

우리가 그 용서를 귀하게 생각할 때, 우리의 삶이 성화로 나아가지 않겠습니까?


다시 한 번 정리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우리를 용서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용서는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치열한 희생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얼마나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르셨는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1장 7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용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기적의 사건입니다. ‘속죄’ 없이는 용서를 말할 수 없습니다. ‘속죄’ 없이 용서가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모순되는 일입니다. 사랑과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해 ‘십자가의 죽음’이 꼭 필요한 일이었고, 이것은 하나님의 아픔을 동반하는 일이었습니다. 챔버스는 속죄의 중요성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죄사함의 기적과 비교할 때 성화의 체험은 아주 작은 것입니다. 성화는 단지 우리의 죄사함을 우리의 삶 가운데서 놀랍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서 감사의 마음이 일어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사해주셨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화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이 놀라운 속죄의 은총을 잊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성화의 삶을 사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이 속죄의 사건이 어떤 것인지 깨닫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사로잡히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값비싼 하나님의 은혜를 값싸게 만드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이 얼마나 값지고 아픈 것인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값싸게 만든 교회가 얼마나 무기력한가를 보았습니다. 우리가 이 은혜를 값비싸게 여길 때, 치열한 제자로서의 삶을 살지 않겠습니까? 본회퍼는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가 값비싼 이유는 하나님이 치르실 수 있는 가장 귀한 대가를 치르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값비싼 대가는 결코 우리에게 값싼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디트리히 본회퍼의 책 [디트리히 본회퍼 묵상 52]에 나오는 글입니다.

은혜가 값비싼 까닭은 따르기를 촉구하기 때문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를 촉구하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값비싼 까닭은 인간의 생명을 대가로 치르기 때문이요, 인간에게 생명을 선사하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값비싼 까닭은 죄를 나무라고 죄인을 의롭다고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값비싼 까닭은 무엇보다도 은혜가 하나님에게 값비싼 것이기 때문이요, 은혜를 위해 하나님이 아들의 생명을 대가로 치르셨기 때문이요, 또 하나님에게 값비싼 것이 우리에게는 값싼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은혜인 까닭은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귀하게 간직해 두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값비싼 은혜란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픔과 희생을 뼈저리게 느끼지 못하고 ‘사랑’만을 강조하면 싸구려 은혜가 됩니다. 하나님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될 때, 값진 은혜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로딩중...
0:00 0:00
닫기
1.0x
0.5 1.0 1.2 1.5 2.0
닫기

구독설정

구독한 콘텐츠는 MY구독에서 한번에 볼 수 있어요.

구독하기
통독 녹음을 해 보세요.
00 : 00 : 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