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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주님의 고난에 동참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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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벧전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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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자에게 이 세상은 늘 기대와 소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 온전히 자신을 맡기는 사람에게 고난은 하나님을 이해하는 통로가 됩니다.

묵상질문

지금 겪는 고난을 설명할 수 있습니까?중요한 것은 이해와 설명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있느냐 입니다.


묵상 레시피

◆시편 77:1-20 + 베드로전서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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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77:1-20)
1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2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나니 내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3 내가 하나님을 기억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 (셀라)
4 주께서 내가 눈을 붙이지 못하게 하시니 내가 괴로워 말할 수 없나이다
5 내가 옛날 곧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였사오며
6 밤에 부른 노래를 내가 기억하여 내 심령으로, 내가 내 마음으로 간구하기를
7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8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히 끝났는가, 그의 약속하심도 영구히 폐하였는가,
9 하나님이 그가 베푸실 은혜를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가 베푸실 긍휼을 그치셨는가 하였나이다 (셀라)
10 또 내가 말하기를 이는 나의 잘못이라 지존자의 오른손의 해
11 곧 여호와의 일들을 기억하며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하리이다
12 또 주의 모든 일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행사를 낮은 소리로 되뇌이리이다
13 하나님이여 주의 도는 극히 거룩하시오니 하나님과 같이 위대하신 신이 누구오니이까
14 주는 기이한 일을 행하신 하나님이시라 민족들 중에 주의 능력을 알리시고
15 주의 팔로 주의 백성 곧 야곱과 요셉의 자손을 속량하셨나이다 (셀라)
16 하나님이여 물들이 주를 보았나이다 물들이 주를 보고 두려워하며 깊음도 진동하였고
17 구름이 물을 쏟고 궁창이 소리를 내며 주의 화살도 날아갔나이다
18 회오리바람 중에 주의 우렛소리가 있으며 번개가 세계를 비추며 땅이 흔들리고 움직였나이다
19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곧은 길이 큰 물에 있었으나 주의 발자취를 알 수 없었나이다
20 주의 백성을 양 떼 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나이다

(베드로전서 4:13)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 시인은 어떤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까? (2절)
  • 그의 심경은 어떠하며,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습니까? (1-6절)
  • 시인은 어떤 단어들을 떠올리고 있습니까? (7-9절)
  • 시인은 무엇을 기억해 내고 있습니까? (10-12절)
  • 시인은 어떤 하나님을 묵상하고 있습니까? (13-20절)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2절)
시인은 ‘환난 날’, ‘고난의 밤’을 맞았다. 그는 주님을 찾고 하나님께 부르짖지만 불안과 근심으로 심령이 상해 있다(2-3절). 시인은 ‘밤에 부른 노래’를 기억해 본다(6절). ‘은혜(7절), 인자하심(8절), 긍휼(9절)’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시인은 ‘여호와의 일’들,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한다. 기억은 깊은 묵상으로 이어지고(12절) 창조주 하나님, 출애굽 구원의 하나님에까지 다다른다(16-20절). 시인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원을 묵상하며 구원하실 하나님을 확신한다. 하나님은 ‘밤에 노래를 주시는’ 분이다(욥35:10)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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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생의 질문

인생에서 참 해결되지 않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 ‘고난’입니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오늘 묵상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당신이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전혀 의미 없는 많은 경험들을 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은 당신을 주님께 유익하게 만듭니다.”


오늘 묵상을 이해하는데, 정한조 목사의 [빈들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다람쥐는 겨울을 잘 보내기 위해 많은 도토리를 저장해 두었다가 나중에 찾아 먹는데, 안타깝게도 다람쥐는 자기가 만든 먹이 저장고와 그 속에 있는 먹이를 다 찾지 못합니다.

… 도토리로 만든 음식도 먹고 약으로도 사용하지만, 도토리를 심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다람쥐의 먹이가 되기 위해 먹이 저장고에 숨겨진 도토리는 참 처량하게 보입니다. …

하지만 땅에 그냥 떨어진 도토리가 인간이나 짐승의 먹이가 되거나 썩어서 사라질 즈음인 이듬해 봄, 다람쥐가 땅 속에 감추어 놓은 도토리에서 싹이 나기 시작합니다. 도토리와 같은 열매를 맺는 … 나무들이 열매에서 싹을 틔워서 나무가 되어 다시 열매를 맺기까지는 약 15년이 걸립니다. 반면에 그 열매를 땅에 묻고서 기억하지 못하는 다람쥐는 10년 전후를 삽니다. 그러니까 다람쥐가 묻어 땅속에 있는 도토리에서 싹이 나서 나무로 성장하여 도토리를 맺을 때는 그것을 묻은 다람쥐는 이미 세상에 없습니다. 도토리는 한 알이 땅속으로 들어갔지만, 세월이 흘러 건강한 나무가 되었을 때는 그 나무에 수천 개, 수만 개의 도토리가 맺힙니다.


우리는 ‘고난이 유익’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고난이 힘든 이유는 당하는 고난을 유익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죠. 생각해보면 우리 인생에 얼마나 많은 고난이 있었습니까? 게다가 고난이 유익이라면 지금 우리 인생에 얼마나 복된 일들이 많았겠습니까?

문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시간과 기회를 통해 허락하신 것들을 유익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어리석다고 생각하여 외면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과 설명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면 인생이 얼마나 무미건조할까요? 계획대로 되어가는 인생에 과연 어떤 기대감이 있을까요?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합력하여 선을 만들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선하시다고 고백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보았던 어거스틴은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악도 선용하신다’는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다.


2.인생의 해답

고난의 문제에 대한 해답은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시는 동안 당하셨던 고난은 늘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당하셨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고난이 유익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그리스도와 연결된 상태에서 고난을 당해야 합니다. 챔버스는 늘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 비유를 인용하며 ‘관계’를 강조했습니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다루실 때, 주님께 매달려 있는 존재가 된다면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목표는 ‘고난’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라는 인생의 문제 앞에서 그것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고난에 동참하고 그것을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자명합니다.

“그럼에도 교회사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을 회피해 왔습니다. 인간들의 쉬운 지름길로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언제나 고통의 방법으로서 ‘길고 먼’ 길로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길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 말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어려운 길에만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쉬운 길만 찾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뜻이 보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세요.

베드로전서 4장 13절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

고난에 참여함으로 즐거워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좀 더 명확하게 하나님의 길이 보이지 않을까요? ‘옳은 길’이 쉽거나 어렵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은 ‘좁은 길’이었고, 그 길을 통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좁은 길이 쉽지는 않지만 기꺼이 즐겁게 갈 수 있는 길임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는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오아시스가 숨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좁은 길에서 우리는 이러한 질문에 직면하게 됩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입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야망을 제거하셔도 괜찮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결심을 초자연적인 차원으로 승화시키시는 것을 허락하겠습니까?”


고난이라는 인생의 문제 앞에서 모든 것을 이해하거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명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기꺼이 자신을 맡길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이해가 아닌 그분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믿음은 ‘현재의 이해’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 고난을 지난 후 왜 그렇게 인도하셨는지 깨닫고 이렇게 고백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소간 오해 가운데 그 고난을 지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밝은 장소로 나아왔을 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하고 계셨는데, 왜 나는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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