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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순종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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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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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먼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행동은 절대 잘못되지 않습니다.
  •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순종을 통해 누군가에게 흐르는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묵상질문

당신의 순종을 가로막는 ‘자기 사랑’은 무엇입니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순종의 장애물입니다.


묵상 레시피

◆요한계시록 3:14-20 + 요한복음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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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3:14-20)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복음 14:15)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 라오디게아 교회가 받은 책망은 무엇입니까? (15-16절)
  •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스스로를 어떻게 여겼습니까? (17절 상반절)
  • 영적인 눈으로 볼 때 교인들의 형편은 어떠합니까? (17절 하반절)
  • 라오디게아 교회가 받은 권면은 무엇입니까? (18-20절)
  •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복은 무엇입니까? (21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15절)
차가움과 뜨거움은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차가움’은 반대나 적대시를 의미하며 ‘뜨거움’은 지지와 우호적인 태도를 의미한다. 영적인 지지와 뜨거움이 없다면 차라리 반대, 적대시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미지근함을 차가움보다도 심각한, ‘교회가 빠질 수 있는 최악의 상태’로 보았다. 한편, 라오디게아 지역의 물을 비유한 것으로도 보인다. 히에라폴리스는 뜨거운 약수 광천들로 유명했고, 골로새 지역은 맑고 차가운 물이 흘렀다. 라오디게아는 8km 떨어진 남쪽으로부터 뜨거운 광천 물을 끌어다 썼는데 수질도 좋지 않았고 라오디게아에 도착할 즈음에는 미지근한 상태가 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용도가 명확한 찬물이나 뜨거운 물을 선호했고 미지근한 물에 대해서는 불평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 편, 구약은 ‘덥고 뜨거운 것’을 자제력 없는 사람으로, ‘차갑고 냉정한 것’을 신중한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나는 부자라,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17절)
라오디게아는 직물과 안약, 은행 거래 중심지로 유명했다. 그러나 본문은 라오디게아 지역의 특수 산업, 상품들과 교회의 영적인 빈곤 상태를 일대일로 대조하여 이미지화 한다. 그들은 금융 산업으로 부유하나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불로 연단한 금 즉, 영적 연단이다. 그들은 직물 산업으로 부유하나 영적으로 벌거벗었으므로 흰 옷 즉, ‘성화, 의, 무죄, 순결, 승리’라는 옷을 사 입어야 한다. 그들은 안약을 팔아 부유해졌으나 실상 영적으로 눈먼 자임을 깨달아야 한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20절)
예수님은 ‘회개’를 기다리신다(19절). 자발적인 반응과 순종을 기다리신다. ‘문을 두드리는 것’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1) 예수님의 기다림, 회개에는 때가 있다. ‘두드림’은 ‘더 연기할 수 없는 긴박한 시기에 이르렀다는 경고’로 이해할 수 있다. 2) 종말론적 해석이다.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에게는 ‘그리스도가 문밖에까지 가까이 오셨다’로 읽혔다. 문을 두드리며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은 ‘인격적인 응답을 요구하는 그리스도의 명령이다.’ 예수님은 결코 문을 부수고 들어가지 않으신다. 열릴 때까지 밖에서 두드리신다. 문을 여는 자는 예수님과 ‘함께 먹는다.’ 이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의미하며 하나님 나라 잔치의 대 만찬에 참예함을 가리킨다(마8:11,22:1-14,25:1-13,26:29,눅12:35,14:15, 계19:9).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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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자도에 대한 올바른 해석

주님이 절대로 우리에게 순종을 강요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계속되는 챔버스의 주장입니다.

“주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주 강하게 말씀하시지만 절대로 강제로 시키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주님과 하나가 된 마음 가운데 주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의 도에 대해 말씀 하실 때 ‘만일’이라는 말을 사용하셨습니다. 원하지 않으면 따라올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주님을 따르기 원하는 사람은 자신을 포기해야 합니다. 자신의 권리를 주님께 양도해야합니다. 누가복음 9장 23절에 있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라는 말씀의 의미를 챔버스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이는 영원한 신분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 속에서 주님께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는 비결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 번의 결단으로 제자의 신분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매순간마다 삶에서 올바른 결단과 끊임없는 순종을 통해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4장 26절의 말씀도 바로 이런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챔버스는 이 말씀을 하신 주님의 의도를 고려하지 않은 채 마음대로 해석하지 말라고 강하게 말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만일 우리가 예수님에 대한 깊은 사랑과 지식을 전제하지 않고 가족을 미워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까요? 이 말씀을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관계에 큰 재앙이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도는 주님과 더 큰 친밀함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진정한 의도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족이나 다른 사람을 미워하라고 말하지 않으십니다. 단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경쟁 관계에 있는 것들을 미워하라고 경고하십니다. ([주님은 나의 최고봉 스터디 가이드] 중에서)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그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사랑의 대상에 대하여 그 어떤 것도 주님과 경쟁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주님의 사랑이 다음 사랑을 아름답게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어거스틴이 했던 유명한 말이 생각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무엇을 해도 좋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행동은 그 어떤 것도 잘못되지 않습니다.”

존 비비어의 [무엇이 선인가?]에 보면 어거스틴과 오스왈드 챔버스의 글을 인용하는데, 오늘 말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문장입니다.

하나님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가장 위대한 로맨스다. 그분을 찾는 것은 가장 위대한 모험이며, 그분을 발견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위대한 성취다. -어거스틴

영적인 지식을 얻기 위한 황금률은 지성이 아니라 순종이다. -오스왈드 챔버스


2. 명확한 기준

두 번째 단락에서는 첫 번째 주제인 ‘제자도’에 대하여 부연설명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제자의 도에 대하여 강하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규율을 주신 것이 아니라 주님의 기준을 명확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 기준이 무엇인가요? 바로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입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주저하지 않고 행할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적으로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적으로 주님의 말씀을 행하려 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패륜아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주님께서 하신 말씀에 조금이라도 주저하고 있다면, 이는 우리가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요, 주님의 경쟁 대상이 오늘 우리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경쟁 대상은 다른 것이 아닌 ‘자기 사랑’입니다. 챔버스는 주님이 우리에게 강압적인 순종을 요구하지 않으신다고 계속해서 말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순종하도록 돕지 않으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주님께 순종할 때, 나에게 주어진 영적 사명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순종하지 못하는 많은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순종할 때 그 모든 것을 알게 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나의 순종을 통해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복을 받고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면 하나님의 구속은 나를 통해 다른 사람의 삶에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순종의 행위 뒤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실체’(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나오는 글이 참 좋습니다.

삶의 방향을 예수님께 맞추면, 어떤 원칙이나 다른 명목으로 헌신하지 않고 오직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흘러넘치는 예수님의 사랑에 사로잡혀서 예수 그리스도만을 사랑하게 된다.

내가 보는 것은 오직 예수님, 예수님만 영원히, 모든 것 중에 예수님만 보네.

하나님께서는 내가 대답할 기회를 주셨다네.

나는 영원한 선택을 하였네. 나의 주 그리스도와 함께 걷기로.

내가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한, 그 무엇도 내 영혼을 주님으로부터 떼어낼 수 없다네.

나는 외로운 길을 택하였지만 그 길이 거칠고 험난하더라도

무시 받고 버려진다 할지라도 주님, 나는 주님과만 인생을 함께 하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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