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
마 17:20
한 줄 노트
-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축복을 누리는데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 믿음으로 걷는 것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통해 그분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묵상질문
당신의 믿음을 점검하십시오. 당신은 받은 축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까, 아니면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더 생각하고 신뢰합니까?
묵상 레시피
(누가복음 23:46, 마태복음 27:46)
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마태복음 17:20)
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 예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며, 어떤 일을 겪고 계십니까?
-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마27:46, 눅23:46)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그는 십자가를 지실 이유가 없다(고후5:21, 히4:15,7:26,9:28, 벧전2:22, 요일3:5). 그러나 하나님은 십자가 대속을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고,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셨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극도의 고통을 당하신다. 육체적인 고난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군인들과 구경꾼들의 조롱, 행악자의 비웃음까지 감내하신다(34-39절).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과 같은 철저한 고독과 단절을 경험하신다(마27:46).
그럼에도 예수님은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신다(눅23:46). ‘부탁하나이다(헬, 파라티데미)’는 파라+티데미의 결합형으로 ‘옆에+놓다’의 의미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 곁에 있기를 원하신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사역, 마지막 말씀을 마치며 예수님은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 신앙’을 보이신다. 예수님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립’ 속에 하나님을 찾고 신뢰했다. 고통 중에 평화와 구원을 누리셨으며 또한 구원을 이루셨다.
1. 믿음으로 살기
오늘로 10월 묵상이 끝납니다. 10개월간 계속된 챔버스의 묵상이 이제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힐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는 묵상이 우리의 신앙을 흔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믿음을 다시 보게 했고,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이기적인 소원을 아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깊이 아는 곳으로 나아가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오늘 그 모든 깨달음에 정점을 찍는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했던 믿음, 즉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상을 주신다는 생각’을 바꾸어 놓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에 의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우리의 믿음을 통해 일하실 수 있는 기회를 드리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믿음이 어릴 때는 보상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믿음이 자라게 되면, 우리의 소원이 아닌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데 우리가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축복만을 누리는 삶을 살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우리를 흔들어서 믿음의 삶을 살도록 인도해 가십니다.
오히려 믿음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거두어 가시기도 합니다. 강준민 목사의 [믿음장에서 만난 그리스도]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날부터 아브라함에게 이상한 문제가 생긴 것을 발견하셨습니다. 그의 눈길이 하나님보다는 이삭에게 머물고 있었습니다. 이삭 때문에 염려하고, 이삭에게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선물을 주신 분보다 선물에 집착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삭이 어느 날부터 아브라함의 우상이 된 것입니다. 우상이란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막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우리의 관심을 빼앗고 있는 것이면 우상이 됩니다.
아브라함은 축복을 주신 분보다 축복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을 복되게 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오히려 파멸로 몰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실 때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시험을 통해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하시고, 우리를 진정으로 부요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보다 받은 축복이 앞설 때, 더 이상 축복이 아니라 우상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바른 관계를 맺기 원하시기에 축복에 머무르게 하지 않으시고 시험으로 이끄십니다.
2. 믿음의 구별
오늘 묵상 글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믿음을 구별하는 방법’에 관한 것입니다.
챔버스는 “본질상 믿음은 시험을 거쳐야 합니다.” 라고 말합니다. 이 시험의 시간을 통해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게 되고 신뢰하게 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기적의 경험도 귀하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립된 시간을 지나며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시간을 가지게 되고 믿음이 자라게 됩니다.
모든 어려움과 시험의 시간이 믿음과 관계된 것은 아닙니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주의 형상을 본받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거듭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시험’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인도하신다. 우리는 거듭남과 동시에 성결하게 되었지만 시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거듭난 후에 시험을 당하게 된다. 우리는 아직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유혹을 받지 않을 만큼 완전히 자유하게 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주님의 ‘형제’가 되면 우리는 죄의 속박으로부터 자유하게 된다. 그러나 사탄의 모든 간교한 유혹들은 그때부터 역사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온전히 성숙한 성도가 되길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시험들을 제거하지 않으신다.
삶에는 일상적인 시련과 믿음의 시련이 있습니다. 일상적인 시련은 힘들고 괴롭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과 일치합니다. 예를 들어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보면, “…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는 힘들지만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성품과 모순되는 불의하고 악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죽이시더라도 여전히 나는 주를 의지하리라’(욥 13:15) 이것이 성경 전반에 걸쳐서 말하는 가장 고상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믿음의 시련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참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적 가치와 상식들을 벗어나는 일입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의 이성이 아닌 믿음이 필요한 순간을 맞이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는 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을 통해 인격적으로 하나님과 교제의 시간을 가질 때, 진정한 신뢰가 형성됩니다. 그리고 욥이 고통 가운데 고백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나를 죽이시더라도 여전히 나는 주를 의지하리라’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오로지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죽음의 풀무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불구덩이에 던져지는 순간에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신뢰할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고백은 우리가 어떠한 순간을 맞이하더라도 주님과의 동행을 가능케 합니다. 이러한 믿음의 고백은 풀무불의 시험을 당하는 장소에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험을 만나지 않는다면 우리가 진정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응답이 없어 다시 요청하오니 묵상 본문을 올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도 응답이 없지만 다시 올려질때까지 참고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