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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기도는 사역이고 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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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요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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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기도는 더 위대한 사역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그 자체로 ‘더 위대한 사역’입니다.

묵상질문

스릴을 느끼는 일을 위해 기도합니까, 아니면 기도할 때 역사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스릴을 느낍니까?


묵상 레시피

◆요한복음 14: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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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15-17)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 예수님께서 수난을 예고하며 약속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16절)
  • 이를 통해 우리가 누리게 된 것은 무엇입니까? (17절)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16절)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앞 둔 예수님은 거처를 준비하시며(14:23), 자기 이름으로 무엇이든 구하면 행하리라는 약속(14절)으로 제자들을 위로하셨다. 그러나 가장 큰 위로와 도움은 ‘보혜사’를 보내주신다는 약속이다. ‘다른(헬, 알론)’은 성자, 성령이 종류에서나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님 역시 ‘보혜사(헬, 팔라클레토스)’이시기 때문에 쓰인 표현이다. 전혀 다른 이질성을 나타낼 때는 ‘알론’이 아닌 ‘헤테로스’를 사용한다. ‘성령의 오심은 예수의 오심과 같고, 예수가 친히 위로자였던 것과 같이 또 한 분의 위로자이다. 보혜사는 예수와 같다.’

그는 진리의 영이라(17절)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다. ‘진리(헬, 알레데이아스)’에 쓰인 헬라어는 히브리어 ‘에메트’를 헬라어로 옮길 때 사용하는 단어다. ‘에메트’는 ‘불면성, 확고부동함, 확실성’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알레데이아스’는 ‘진리’와 더불어 ‘신실성’으로도 읽는다. 보혜사 성령님은 예수님이 떠나가신 후에 오실 것이며, 제자들과 함께 머물며 그들을 가르치고 대변하신다. 계속하여 사역하게 하신다(요14:1-7,26, 15:26-27, 16:7,11-14). 성령으로 인해 제자들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예수님의 말씀을 밝히 알게 될 것이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진리 가운데 행하게 되고,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으며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갈5:16-26). 성령은 또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셔서 기도할 바를 알게 하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신다(롬8:26).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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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해야 하는 이유

오늘 묵상은 어제 주제인 ‘기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목은 다르지만 어제와 같은 주제로 오늘 말씀을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바로 기도해야 하는 이유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은 복음을 듣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 심지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지만 영적으로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찾아가는 것입니다. 이 일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오늘 묵상의 첫 문장이 아주 중요합니다. 원문 제목 “Greater works”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문장입니다.

“기도는 더 위대한 사역들을 위해 우리를 준비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 자체가 ‘더 위대한 사역’입니다.”


이 글 역시 [주님은 나의 최고봉]에 수시로 등장합니다.

우리는 자꾸 기도를 사역을 위한 준비쯤으로 생각하며 기도의 능력을 평가절하 합니다. 하지만 기도 자체가 사역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미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기도할 때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구속의 기적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드린 ‘기도의 수고’로 맺은 열매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인한 구속의 역사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를 통해 우리 안에서 구속의 열매가 계속 유지 된다는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기도]에 나오는 글입니다.

절대로 우리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어떤 대가를 치르셨는가에 초점을 맞추라.

기도도 마찬가지이다. 기도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열정과 정성을 쏟는지에 초점을 맞추지 말라. 대신 우리가 기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것을 지불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으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고통의 몸부림을 치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그들의 눈을 가리는 베일을 거두시고 그들로 하여금 주님께서 겪으시는 고통이 무엇인지를 보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주님이 누구신가를 생각해보자.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주님께서는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어떤 고난을 지나셨는가를 기도로 깨어 기억하기 원하시는 것이다.


챔버스는 기도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합니다.

“기도는 전투입니다.”

전투는 우리가 선택한 장소에서 우리가 원하는 방법대로 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있는 그 곳이 전투의 자리이기에 바로 그곳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자신이 쓸모없다고 생각하며 기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인도하시는 곳에서도 여전히 쓸모없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어디에 두시든지, 어떤 상황에서라도 언제나 주님께 끊임없이 호소하며 기도하십시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일, 더 위대한 일을 위해 준비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챔버스가 오늘 묵상에서 표현하는 것 중에 아주 흥미로운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흥분되지 않으면 기도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는 영적 이기심의 가장 강한 표현입니다.”


여기에서 ‘흥분’은 원문의 ‘thrills’이라는 단어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면서 흥분이나 스릴을 느끼는 때가 아니면 잘 기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 혹은 우리의 흥미를 자극하는 것이 없으면 기도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챔버스는 이것을 ‘영적 이기심’이라고 말합니다. ‘이기심’이 무엇인가요? 관심이 온전히 자신에게만 집중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이 아니라 자신의 관심에 따라 하는 기도는 전적으로 이기심에서 나옵니다.


기도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도의 사람 E. M. 바운즈는 [기도의 능력]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날 교회에 필요한 것은 더 나은 기계를 더 많이 도입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조직을 더 많이 구성하는 것도, 새로운 방법을 더 많이 강구하는 것도 아니다. 기도의 사람, 강력한 기도의 사람이 필요하다. 성령께서는 방법을 통해 일하시지 않고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성령은 기계에 임하시는 게 아니라 사람에게 임하신다. 계획에 기름을 부으시는 게 아니라 사람에게, 곧 사람의 기도에 기름을 부으신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지시를 행하는 것을 사역이라고 생각하는데, 기도는 이러한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위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일꾼이 일을 하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일꾼이 주인의 생각을 구현해 내는 것은 아주 스릴 있는 일이죠. 성도들이 주님의 생각을 구현해 낸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것이 얼마나 흥분되는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흥분되는 일, 즉 주님이 원하시는 결과를 가능하게 하는 일이 바로 기도하는 성도들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기도가 위대한 것은, 그저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기도했을 뿐인데 기도하는 자들을 통해 놀라운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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