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막 9:22
한 줄 노트
- 정상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낮은 곳에서는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진정한 가치를 하나님께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묵상질문
당신에게 영적 변화산은 어디였습니까? 그리고 낮은 계곡은 어디입니까? 지금 그곳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증명하고 경험해야 합니다.
묵상 레시피
(마가복음 15:21-32)
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22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23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24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25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26 그 위에 있는 죄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27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28 (없음)
2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30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3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32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마가복음 9:22)
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 예수님이 끌려가신 곳은 어디입니까?(22절)
- 십자가 주변에는 어떤 인물들이 있었습니까? (24-32절)
- 그들은 어떤 말, 어떤 행동들을 했습니까?
- 그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했습니까? (25절)
골고다라 하는 곳(22절)
‘골고다’는 아람어(골골타)와 히브리어(굴골타)를 헬라어로 음역한 것이다. 두개골, 해골이란 뜻으로 라틴어로는 ‘칼바리아’, 우리가 부르는 ‘갈보리’다. 예수님은 희롱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려 끌려 나가셨다(20절). 성문 밖으로 끌려 나가는 것은 율법을 위반한 자들이 진 밖에 끌려 나간 것을 연상케 한다(레4:14,16:27, 민25:35-36, 행7:58, 히13:12). 예수님은 성 밖으로, 백성에게서 ‘축출’ 되었다.
‘왕’이신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로부터 조롱당하셨다(26절). 죄 없으신 예수님은 강도들과 같은 취급을 받으며 나란히 못 박히셨으며 강도들마저 예수를 욕했다(27,32절). ‘세상’을 사랑하신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십자가에 못 박힌 독생자는 ‘지나가는 자들’ 모두의 멸시를 받으셨다(29절).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구원’에 관한 훈시를 들으셨다(31절).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25절)
십자가는 극형이었다. 십자가의 고통은 육체적인 것 뿐 아니라 욕과 저주, 수치를 동반했다. 그런데 마가는 십자가를 한 줄로 일축한다. 그는 십자가의 영적인 의미가 육신적 고통과 고난에 가리지 않도록 신중했다. 예수님은 ‘인간의 반역문제(죄)’를 다루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여 십자가를 지셨다. 그분의 순종은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불순종의 패턴을 뒤집어 놓았다 (롬5:12-21).’ 변화산에서 골고다로 내려오신 예수님의 모습은 이후 ‘그리스도인이 당할 미움 받음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막13:13).
계곡에 머물게 하시는 이유는
오늘 묵상에서는 어제의 ‘변화산 체험’과 대비되는 ‘계곡의 체험’을 통해 ‘겸손의 영역’에 대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원문에서는 ‘계곡’이라는 단어를 ‘humiliation’(굴욕)이라고 쓰고 있는데, ‘인생에서 아주 험하고 낮은 곳을 지나가는 때’로 해석하면 좋을 듯합니다. 변화산은 ‘높은 곳’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마주 대하였던 장소입니다. 어쩌면 이곳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시간과 장소가 아닐까요? 실제로 우리 인생은 끊임없는 문제들을 마주하는 곳이니 말입니다. 우리들이 이런 영광스런 순간에만 머무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그 산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계곡은 어떤 곳일까요?
“우리는 정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낮은 이 세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가치를 진정으로 드러낼 수 있고 우리의 충성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정상에서 우리는 누구나 알아주는 영웅적인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이 땅위에서 사셨던 겸손과 섬김의 삶을 살지는 못할 것입니다. 주님을 닮아 주님의 인격을 따라 살 수 있는 곳은 정상이 아닌 계곡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주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주님처럼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베드로 역시 변화산에서 영적 체험을 하고 나서 그곳에 머물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계곡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제자들은 계곡으로 내려와서야 비로소 왜 주님이 자신들을 변화산으로 데려가셨는지 깨닫게 됩니다. 아주 중요한 교훈입니다.
갓피플TV에서 서종현 선교사가 ‘세상 속에서 사는 신앙인’에 대한 청년들의 질문에 대해 ‘우리가 빛이라고 생각한다면 세상으로 나아가세요’라는 주제로 답변한 내용이 참 좋아서 일부를 소개합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성경공부도 많이 하고, 성도들의 교제를 가지기도 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우리를 부르신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 개신교에서는 세상을 배척하거나 가르쳐야 하는 곳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세상에 대해서 다른 소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세상은 ‘예수님이 계시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둠 속에서 예수를 알게 되었어요. 이제 양지에 가게 됐지만 하나님은 거기에 머무르길 원하지 않으셨어요. 빛이 되었으면 그 빛을 가지고 다시 어둠 속으로 가라고 하셨어요. 그리스도인이 있어야 할 곳은 세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해볼게요. 밀폐된 공간을 칸막이로 중간을 막고 한쪽엔 불을 켜고, 다른 쪽엔 불을 켜지 않았어요. 한쪽은 밝고 다른 쪽은 어둡습니다. 이제 칸막이를 뺍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어둠이 빛을 잡아먹고 다 어두워질까요? 아니면 이 빛이 가서 밝아질까요?
당연히 밝아집니다. 우리가 빛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두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빛의 의미입니다.
우리 안의 영적인 중심에서부터 세상을 악하거나 더러운 것으로 인정하기 보다는 예수가 계시는 곳이라고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볼 때 두려워하거나 적으로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계신 곳이라고 보는 것이죠.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내가 사랑하는 예수가 사랑하는 곳’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시험을 통해 증명되는 곳은 계곡입니다.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변화산에서 내려왔을 때, 아이의 귀신들림으로 인해 힘겨워하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믿고 따랐지만 주님처럼 믿음으로 행하지는 못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이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하시면서 말이죠. 이 문제를 맞닥뜨리기 전까지 제자들은 자신들의 믿음이 얼마나 부족한지 몰랐습니다. 주님과 함께하면서도 주님의 능력을 의심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산 정상에서 그렇게 자랑스러워했던 주님의 제자들이 계곡으로 내려와 자신들의 실체를 보았습니다. 자신들의 믿음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를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아시나요? 우리가 인생에서 좌절을 맛보아야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을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때로 주님은 우리를 그런 좌절의 계곡으로 인도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 문제 가운데서 우리의 믿음을 회복시키실 뿐 아니라, 강하게 만드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 가시니 말입니다.
우리는 계곡에서 주님을 만나게 되고, 진정한 주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인생의 문제가 전혀 없는 곳에서는 우리의 믿음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비천한 계곡에서 우리는 아주 진지하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하나님과 변화산 정상에 있었던 마지막 때에 당신은 하늘의 모든 능력과 이 땅의 모든 권세가 예수님께 속해 있다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비천한 계곡에서 의심하는 자가 된 것은 아닙니까?”
주님은 우리를 계곡으로 이끄시는 분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하용조 목사님의 책 [순전한 복음]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가톨릭 사제이자 작가인 헨리 나우웬은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는 삶의 방식을 두 가지로 구분해 설명합니다. 하나는 위로 계속해서 올라가려는 상향성의 삶, 영어로는 upward mobility(상승 이동)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내려가는 하향성의 삶, downward mobility라고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이 세상의 지배적인 모습은 상향성입니다. 모두가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사다리를 타고 끊임없이 올라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인생이란 성공이 아니면 실패입니다. 처절한 투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 세상의 인생관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정반대의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향성의 삶을 사셨습니다. 내려가는 삶을 사셨습니다. 낮아지는 삶을 사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