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믿음이 둔하구나”
신 29:4
불쌍하다는 것
우리들의 일상가운데 갑자기 잘 보이던 눈과 잘 들리던 귀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상상만해도 불쌍히 여김을 받게 되지 않을까요?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점에서 참 불쌍한 상황가운데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 땅에서 친히 인도해주시는 동안 눈앞에서 그렇게 놀라운 일을 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의 뜻을 볼 수 있는 눈도, 들을 수 있는 귀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오늘 날을 살아가는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런 상태에 빠져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죠. 육신으로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은 그것으로 그만이지만, 영적으로 어두워지면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듣게 되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게 된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습니다.
미련하다는 것
우리가 흔히 하는 착각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경험하면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전에서 놀라우신 하나님의 이적과 기사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믿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멋진 그림작품을 감상하면서 감탄하지만 화가의 존재는 부인하는 것과 같은 것이죠. 민수기를 묵상하다 보면 이 같은 일이 일어났었습니다. 민수기 22:2~3 말씀을 보면, 당시 예언자였던 발람을 불러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시키지만 오히려 하나님은 발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축복하게 하십니다. 이방의 예언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을 축복하실 것이며 어떻게 약속을 이룰 것인지 분명히 말씀하시고 난 후 바로 놀라운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것이 곧 민25:1~3 에 기록된 ‘바알브올의 음행’ 사건입니다. 기가막힌 일입니다.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난 뒤 곧 이어 축복에서 가장 먼 ‘음행의 삶’을 선택한 것입니다.
불쌍하고 미련한 자에서 믿는 자로 살아가기
마음의 완고함으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이적 앞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이런 미련한 시대가운데, 대체 우리는 어떻게 믿음이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은 아이러니 하게도 포기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포기하는 것입니까? 우리의 경험과 지식입니다. 흥미롭게도 실상 우리의 믿음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우리의 경험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경험과 지식으로 인생의 키를 쥔 채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여전히 우리의 지식과 한계를 넘어선 믿음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불평과 불안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치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따라서, 이것을 벗어버리고 인생의 키를 하나님께 맡겨야만 이런 미련함에서 벗어나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한 주간 이 말씀을 붙들고 인생의 키를 하나님께 맡기심으로 믿음의 삶을 살아가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가장 크게 배우고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이 중요하다고 느낀 이유는 무엇인가요?
결단해 봅시다.
추천도서
『다 알았다고 생각한 이후 내가 배운 것들』
스티브 브라운 저, 김주성 역 (아가페출판사, 2008.05.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