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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초자연적인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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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마 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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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 분노의 흔적을 지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묵상질문

지금 순종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주저하지 말고 ‘go’하시기 바랍니다.


묵상 레시피

◆학개 2:1-9 + 마태복음 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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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개 2:1-9)
1 일곱째 달 곧 그 달 이십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라
3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
4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5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7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8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마태복음 5:41)
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 백성들에게 낙심으로 다가온 일은 무엇입니까? (3절)
  • 하나님께서 지도자들에게 주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4절)
  • 하나님께서 주신 확실한 약속은 무엇입니까? (6-9절)
  • 그들이 끝까지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힘은 무엇입니까? (5절)

일곱째 달 곧 그 달 이십일일에(1절)
이 날은 7일 동안 거행되는 초막절(장막절) 축제의 마지막 날이었다. 초막절은 여름 추수를 축하하는 절기였으며(레23:34)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한 절기이기도 하다(왕상 8:1-3,65-66). 그러나 학개 당시의 초막절 상황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가뭄으로 인해 작황이 좋지 않았고 새 성전도 이전에 비해 초라해 보였다.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3절)
이스라엘에는 연장자의 말을 귀 담아 듣는 풍습이 있었다.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노인들 중에는 이전 성전을 눈으로 목격한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새 성전이 ‘이전 영광’보다 못하며 ‘보잘 것 없다고’ 비판했다(슥4:10). 그들이 조성한 여론은 공동체 전체에 냉랭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4절)
이 말씀은 다윗이 솔로몬에게 성전건축을 준비하도록 강권했던 말과 동일하다(대상28:20). 학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백성들을 북돋운다. 절망으로 인해 자칫 수동적일 수 있는 백성들에게 꿋꿋이 하나님의 일을 계속하도록 이끈다. ‘인간의 의지력으로서의 ‘루아흐(학1:14)’는 기가 꺾여 버리면 소멸될 수 있다. 그러나 야웨의 영(루아흐)은 생동감을 수여하는 강력한 현존이요, 기를 살리는 전권을 지녔다(5절).’ 하나님의 영은 광야의 구름 기둥처럼 인도하시며(출33:9), 동행하시며(사63:7-14), 버팀목이 되신다(슥4:6).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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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Just go!’

오늘 묵상 제목에는 어제와 동일하게 ‘go’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습니다. 원문의 뜻을 살렸더라면 더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는 사역의 준비를 위한 ‘go’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즉각적인 순종’이 사역의 시작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은 “The ‘go’ of relationship”이라는 제목으로, ‘바른 관계를 위해 가라’로 번역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인 산상수훈은 따르기 쉽지 않은 말씀입니다. 챔버스는 이러한 가르침은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셔야 따를 수 있는 것이지, 우리의 본성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챔버스의 표현을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이 압제와 불의를 당해도 그들 마음속에는 조그마한 분노를 품은 흔적도 없어야 한다고 요구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사역자들에게 요구하시는 그 부담은 그 어떤 열정으로도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과의 인격적 관계입니다. 챔버스는 이를 끊임없이 강조합니다. 주님과의 어긋난 관계 속에서는 그 어떤 열정도 잘못될 수밖에 없습니다. 몇 번 언급했던 문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인간이 할 수 없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나님이 대신해 주지 않으십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는데, 자연적 본성을 가진 사람이 과연 ‘십 리’를 기꺼이 가겠습니까? 억지로 가자고 하는 것이, 우리를 압제하는 자일 수도 있고 우리를 학대하며 무리한 것을 요구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터무니없는 부탁을 들었을 때, 분노가 당연하게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그 부당한 요구에 호의를 더해 베풀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일은 사람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산상수훈’ 말씀을 들을 때 너무 이상적이라 따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자연적 본성으로 그 말씀을 대한다면 그 말이 옳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성향을 바꾸셔서 그분의 마음이 우리 안에 들어온다면, 그것은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우리가 실천해야 하는 내용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은 우리의 능력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우리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함이 분명합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

‘택하심’은 전적으로 강권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은혜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단지 그 놀라운 역사가 우리 가운데 역사하고 있음을 알 뿐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과 연관 지어 핵심적인 부분을 다루어 보겠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택하심에 불순종할 수는 있지만 우리 스스로 제자로 나설 수는 없습니다.”


바른 관계를 위해 ‘go’하는 것이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택하셔서 제자로 부르십니다. 이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전적인 부르심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이 부르심에 대하여 주님은 전적으로 ‘자발적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강압적으로 이끌어 가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니 주님의 부르심에 대해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그저 ‘just go’ 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르심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에 해당하며, 우리의 능력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가진 역량에 근거해 제자로 부르시지 않습니다. 오로지 주님의 은혜와 부르심에 대한 순종으로만 가능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부탁하지 않으십니다. 오로지 명령하실 뿐이고, 우리는 순종의 여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부르심에는 필연적으로 ‘십자가’가 따라옵니다. 오 리를 가자는 요구에 십 리를 가는 것은 분명히 무거운 십자가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십자가를 지기 위해 ‘go’ 할 때, 주님은 십자가를 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 놀라운 관계 속으로 들어가기 원한다면 ‘just go’ 하십시오!

카일 아이들먼 목사님의 책 [팬인가 제자인가]에 보면 바로 이러한 삶을 살았던 한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윌리엄 보든은 오늘날로 따지면 수십억 달러 가치에 달하는 낙농 회사의 상속자로 태어났다. 그는 예일 대학교 프린스턴 대학원에서 학위를 취득했다. 윌리엄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그의 부모는 그에게 세계 여행을 권했다. 그리하여 유럽과 아시아와 중동을 여행하던 중 복음이 닿지 않는 곳으로 찾아가라는 부르심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위한 선교에 삶을 바치겠다는 편지를 부모에게 보냈다. 그러고 나서 자신의 성경책에 문장 하나를 썼다.

“남김없이.”(No Reserves)

윌리엄은 예수님을 따르려면 온전한 헌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아버지의 강권으로 예일 대학에 들어간 첫해에 그는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기로 결심했고 한 친구와 함께 아침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모임을 시작했다. 윌리엄이 4학년이 되자 그런 모임이 1,000개에 달했다. 졸업 후 그는 성경책의 뒷면에 다시 한 문장을 썼다.

“후퇴 없이.”(No Retreats)

그는 세계 선교로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중국에 복음을 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중국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아랍어를 배우고 이슬람 지역 선교를 준비하기 위해 먼저 이집트로 건너갔다. 그런데 그만 그곳에서 척수막염에 걸리고 말았다. 그리고 한 달 뒤 스물다섯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카이로에 묻혔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그의 성경책 속에서 세 개의 마지막으로 하나의 문장이 발견되었다.

“후회 없이.”(No Regrets)

그는 영원토록 ‘그리스도의 제자’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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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호
예수님 말씀하소서 순종하겠습니다
2021.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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