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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위기가 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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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요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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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예배자의 삶을 사는 사람은 위기 중에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며, 위기 중에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개인적 삶이 바로 신앙의 모습입니다.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때가 되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묵상질문

미래의 성품을 만들기 위해 지금 어떤 개인적 예배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묵상 레시피

◆요한복음 1:4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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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3-51)
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만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43-45절)
  • 예수님에 대한 나다나엘의 첫 평가는 어떠했습니까? (46절)
  • 예수님을 만난 나다나엘의 평가는 어떻게 바뀝니까? (49절)
  •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때문입니다. 어떤 말씀입니까? (47-48절)
  • 예수님과 함께 할 나다나엘이 경험할 일은 무엇입니까? (50-51절)

나를 따르라(43절)
‘따르라(헬, 아콜루데이)’는 현재 명령형으로 ‘계속해서 나를 따르라’는 명령이다. 단순히 뒤를 좇으라는 의미를 넘어 지적, 도덕적, 종교적 추종을 나타낸다. 즉, 참 제자가 되라는 요청이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46절)
나다나엘의 말은 정통 유대인들의 생각을 대변한다. 예수님 당시 나사렛은 정치, 종교적 중심과는 거리가 멀었다. 누구도 나사렛에서 주요한 인물이 날 것이라 예상치 못했다(마13:58, 막6:6, 눅4:28). 나다나엘도 ‘나사렛’ 예수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47절)
그럼에도 나다나엘은 영적이고 내면적인 진실함이 있었다. 그는 빌립의 ‘와 보라’는 말에 예수님을 만나러 나온다. 듣는 것과 실제 ‘보는’것의 차이는 크다. 예수님은 그에게서 참 이스라엘 사람다움을 발견하셨다. ‘간사한 것(헬, 돌로스)’은 미끼, 올무, 속임, 간교함, 거짓 등으로 번역된다. ‘없도다(헬, 우크 에스틴, 현재 시제)’는 문법 상, 온전한 마음을 지속적으로 유지했음을 나타낸다. 그는 무화과나무(헬, 쉬케) 아래 있는 자였다(48절). 이스라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나무는 잎이 무성하고 그늘이 드리워져 경건한 유대인들이 율법을 배우거나 기도, 명상을 하는 장소로 이용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향한 진심, 경건의 훈련을 지속해 온 나다나엘을 이미 살펴 아신 것이다.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50절)
예수님을 ‘랍비’로 부른 나다나엘은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한다(49절). 하나님의 아들 앞에는 정관사가 붙는데, 이는 예수님과 하나님의 특별한 관계를 강조하는 것이다. 나다나엘은 앞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과 함께 하며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볼 것이다. 하늘과 땅이 하나 되며,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통해 그가 해오던 경건훈련의 깊이와 넓이를 뛰어넘는 하나님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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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배의 중요성

오늘 묵상 원문 제목이 독특합니다. ‘선교사를 위한 군수품’(Missionary munitions)

오늘 묵상은 세계 1차 대전이 6개월 이상 지속되던 때에 챔버스가 성경훈련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강의했던 내용입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터에 나갔고, 성경훈련대학의 학생들 중에서 14명이 선교사로 나가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전쟁의 와중에 군수품을 생산하는 공장이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선교사로 나가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 역시 그 중요한 군수품을 준비하듯이 위기를 대비해야 합니다.


챔버스는 오늘 묵상에서 예배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위기의 순간들이 있습니다. 종종 우리는 이런 위기 가운데 아무 문제가 없으리라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위기가 찾아왔을 때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드러납니다. 평소에 하나님 보시기에 제대로 살지 못했다면 위기의 순간에 부적격자임이 드러날 것입니다. 위기와 예배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챔버스의 말입니다.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예배하는 관계가 위기를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1장 48절은 주님께서 나다나엘을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나다나엘이 놀랐던 것은 주님께서 평소 그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모습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은 무화과나무 아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준비했다고 합니다. 평소 이와 같은 나다나엘의 모습을 주님이 보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상이 불가능한 상황이 찾아옵니다. 위기의 순간이죠. 우리 신앙에 적용하면 평범한 일상처럼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평소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예배를 통해 지속하지 못했던 사람이라면, 위기 가운데 하나님께서 쓰실 수 없을 것입니다.


린다 딜로우는 [일상의 예배]라는 책에서 ‘예배하는 삶’을 이렇게 말합니다.

예배하는 삶을 살 때, 내가 하는 모든 말이 예배요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예배가 된다. 하나님의 시간표 앞에 무릎 꿇을 때마다 나는 예배를 드린다. 고통 중에서 예배드릴 때마다 나는 내 아버지를 높인다. 이런 일들을 할 때, 내 삶을 달리 보기 시작한다. 내 행동 하나하나를 하나님께 영광 돌릴 기회로 보기 때문에 내 삶은 더욱 고귀한 목적을 갖게 된다. 내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예배 행위이기에 내 삶은 아름다워진다.


다시 한 번 반복합니다.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예배하는 관계가 위기를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중요한 것은 ‘위기의 순간’이 아니라, 평소에 어떻게 살아 왔는지 입니다.

“다른 사람은 모르고 하나님만 아시는 보이지 않은 삶에서 당신은 완벽하게 적격자로 살아왔다면, 어려운 상황이 올 때 하나님께서 당신을 신뢰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준비된 삶

오늘 묵상의 요지는 준비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챔버스는 ‘군수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인생에 위기가 찾아왔을 때, 미리 준비된 사람은 마치 군수품을 준비하고 전쟁을 맞이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챔버스는 이 준비의 핵심에 ‘개인적 예배의 삶’이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종종 지금은 기도할 시간, 성경을 읽을 시간, 제대로 봉사할 시간이 없지만 때가 되면 잘 할 것이라고 말하며 미루곤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핑계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평범한 날들 속에서 예배하는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면, 실제로 주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당신은 전혀 쓸모 없는 자일 뿐만 아니라 당신과 관련된 자들에게 커다란 방해거리 밖에 안 될 것입니다.”


챔버스의 비유가 적절합니다. 군수품이 하나도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전쟁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방해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쓸모없는 인생만큼 비극적인 것은 없습니다.

김장환 목사님의 묵상 중 “반석 위의 믿음”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우리를 붙들어 주는 것은 그 중심이 어디에 연결되어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인도의 마하발리푸람에는 ‘버터볼’이라는 바위가 있습니다. 울퉁불퉁한 분지 위에 커다랗고 동그란 바위가 우뚝 서 있는데, 누가 봐도 곧 쓰러질 것 같은 풍경이지만 오랜 세월을 그 자리에서 지키고 서 있습니다. 한 때 이벤트의 일환으로 코끼리 7마리로 이 바위를 끌어보았지만 그래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아프리카에는 ‘코피’라고 불리는 언덕이 있습니다. 이 언덕에는 사람 몸통만한 바위들이 서로 탑을 쌓은 모양을 하고 있는데, 10개도 넘게 쌓여 있지만 아무리 강한 바람이 불어와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영국의 노스요크셔에는 ‘중심을 잡고 있는 바위’라는 이름을 가진 바위가 있습니다. 위에 있는 집채만 한 바위를 땅과 연결하고 있는 것은 송곳같이 작고 날카로운 부분입니다. 처음에는 밑에도 집채만 한 바위였지만 바람과 물에 침식이 돼서 중심부의 아주 약한 부분만 남았고, 아주 작은 부위지만 뿌리째 바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몇 백 년이 지나도 쓰러지지 않고 있습니다.

튼튼한 반석은 아주 작은 부분만 연결되어 있어도 바위를 떨어트리지 않습니다. 반석위에 서 있는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이라는 진리의 반석에 나의 믿음을 아주 적은 부분이라도 제대로 세우십시오. 반드시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합니다. 주님! 반석위에 지은 집 같은 든든한 믿음을 주소서. 매일의 경건생활을 통해, 예배를 통해 반석위의 믿음을 쌓으십시오.


성품은 한순간에 만들어지거나, 미래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지금 나의 모습입니다. 성품이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고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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