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고후 10:5
한 줄 노트
-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역은 하나님과 일치된 관계로부터 오는 결과입니다.
묵상질문
주님과 일치된 삶을 살기 위해 어떤 훈련을 하고 있습니까?
묵상 레시피
(로마서12: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고린도후서 10:5)
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 바울이 성도들에게 권면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2절)
- 이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목표로 하는 것입니까? (1절 중,하반절)
- 우리는 무엇을 기반으로 이를 이룰 수 있습니까? (1절 상반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2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시대가 왔다. 바울은 이전 방식, ‘현 시대’가 요구하는 방식에 얽매이지 말라고 권면한다. 세상이 결정하게 하지 말고 성령께 주도권을 내어드리는 ‘오는 시대’의 방식을 권면한다. 성도는 예수로 시작된 새 창조의 방식대로 살아간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이전의 사고방식과 태도로는 새로운 시대를 살 수 없다.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1절)
이 모든 새로움(Newness)은 신앙에 기초 한다. 바울이 롬1-11장에서 피력한 십자가 대속과 부활, 세례, 성령의 내주, 하나님의 자비로만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만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릴 수 있다. ‘몸(헬, 소마)’은 단순히 몸 뿐 아니라 ‘인간’이라는 포괄적 의미, 전인적인 의미를 지닌다. 마음과 몸은 분리될 수 없다. 성령을 통해 새 마음으로 변화된 이는 그의 몸과 삶의 방식 역시 변화된다.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1절)
‘영적(헬, 로기코)’이라는 말은 ‘온당한, 마땅한’이란 의미와 영적인 것과 대비되는 것으로서 ‘합리적, 이성적, 지성적’ 이라는 뜻이 있다. 전자로 해석할 경우 1절은 1) ‘자비를 입은 너희가 너희 몸을 드리는 것은 당연하다(마땅히 드려야 할 예배이다)’로 읽힌다. 후자의 경우 2) ‘자비를 입은 너희가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영적인 예배/공적인 예배>뿐 아니라 <일상의 예배/몸으로 드리는 예배/삶의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로 읽힌다. 당시에 ‘몸’을 경시했던 헬라적 배경의 독자들은 바울의 권면에 당황했을 것이다. 그들은 영이 육체에 갇혀있으며 그로부터 탈출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예배는 영적, 추상적, 신비적, 내적인 면 뿐 아니라 실제 ‘몸’으로 수행하는 구체적인 봉사와 헌신, 실생활 속의 전부를 포함한다. 하나님과 일치된 관계로부터 나오는 새로운 삶은 영혼몸 전체, 모든 영역에서 일어난다.
훈련이 필요하다
3일 전 묵상을 시작하며 두 개씩 짝을 이룬 3개의 미니 시리즈를 나누게 될 것이라고 했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오늘 묵상은 어제와 짝을 이루는 두 번째 미니 시리즈에 해당합니다. 번역본의 제목은 다르지만, 원문 제목은 어제와 동일하게 “Do it yourself”입니다. “당신이 스스로 하십시오”라는 제목입니다.
어제와 동일한 오늘의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이 ‘훈련’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0장 5절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성도들이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부분입니다. 그리스도께 온전히 순종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것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이것을 챔버스는 ‘성도의 훈련’이라고 합니다. 오늘 묵상은 특히 사역자들에게 신랄하게 묻습니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즉흥적으로 주님의 일을 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한결같은 기준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모든 사역이 아버지의 뜻과 일치한지 생각하며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훈련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19절
“…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
챔버스는 지금 교회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돌아보라고 말합니다.
“지금 모든 사역들이 그리스도께 사로잡혀 그분께 순종되도록 훈련하기보다는 생생한 종교적 체험을 위해 즉흥적으로 만들어져서 곧바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종교적 체험을 하는 것과 주님께 순종하는 것은 다릅니다. 예를 들어서 나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것과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런데 종교적 체험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그저 ‘아는 것’에 머무릅니다.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더 알기 위해 훈련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올바른 사역이란 어떤 것일까요? 챔버스는 무엇보다도 ‘실용성’을 강조해서 주님께 순복하려는 신자들을 비난하지 말라고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세상에서 얼마나 실용성이 있을까요? 순종의 훈련이 되지 않은 사역은 ‘인간 냄새’가 납니다.
“참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발생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성도들이 모든 사역을 주님께로 항복시키기보다 전혀 훈련되지 않은 인간의 냄새 나는 속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한다는 사실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기독교의 진리]에 보면 ‘올바른 사역’을 ‘올바른 관계’에서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면서 하나님을 위해 열심을 내는 것은 그분을 비방하는 것과 같습니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은 홀로 있을 때에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사람입니다. 당신의 삶은 어떻습니까? 또한 당신의 소망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고상해 보이는 다른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과 이 세상을 위해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원한다면,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인내하십시오. 늘 평안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흔들림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예수 그리스도와 올바른 관계를 맺으십시오. 그러면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매순간 주님께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의역) “올바른 사역은 언제나 하나님께 순종하는 곳에 있습니다.”
올바른 사역을 위해서는 하나님을 잘 알고 그분께 순종하며 열심을 내야 합니다. 순종을 위해서는 올바른 관계를 통해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훈련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사역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가지셨던 생각들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예수님은 이 세상에 대하여 무엇이라 말씀하셨나요? 예수님은 죄와 사탄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셨나요? 이 모든 것을 철저하게 배울 때, 우리의 사역이 즉흥적이거나 인간적인 경향에 빠지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1-2절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오스왈드 챔버스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에서 ‘훈련된 삶’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훈련된 삶이란 세 가지를 의미한다.
즉, 주께서 생명을 주신 최상의 목표를 나의 목표로 삼는 것,
대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리신 삶의 규칙을 지키는 것,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과 주의 말씀에 완벽하게 충성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에 대해 반항하는 일이 없어야 하고 모든 충동과 감정은 철저하게 다스려져야 한다. 우리의 모든 생각과 깨달음이 하나님과 주의 말씀에 어울리는가를 철저하게 점검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것들을 당장 버려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