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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주님께 부어드릴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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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길어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드리며


삼하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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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축복을 자신의 욕구를 위해 사용한다면, 그 축복이 우리를 부패하게 만들 것입니다.
  • 축복이 내 안에 머물러 탐욕이 되게 하든지, 흘러넘쳐 하나님의 도구가 되게 하든지,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묵상질문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축복을 묵상합시다. 그 축복은 지금 어디에 머무르고 있습니까?


묵상 레시피

◆창세기 33:1-11+ 사무엘하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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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3:1-11)
1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2 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3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5 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들과 자식들을 보고 묻되 너와 함께 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
6 그 때에 여종들이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7 레아도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그 후에 요셉이 라헬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니
8 에서가 또 이르되 내가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이르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9 에서가 이르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10 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11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사무엘하 23:16)
16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진영을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

  • 야곱은 가족들을 정렬시키고 어디에 서 있습니까? (3절)
  • 에서가 올 때 야곱은 어떤 행동을 보이고 있습니까? (4절)
  • 야곱은 대가족과 물질의 축복에 대해 무엇을 고백합니까? (5,11절)
  • 야곱은 자신이 받은 축복을 어디에 사용하고 있습니까? (8-10절)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3절)
브니엘의 체험을 했지만 야곱이 완벽하게 변한 것은 아니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며 자신이 사랑하는 순서대로 가족들을 정렬한다. 그럼에도 야곱은 이제 대열 가장 앞에서 7번 땅에 굽히는 자세로 형 에서를 맞이한다. 이는 아랫사람이 군주에게 하던 예우였다. 고향을 떠날 때의 약삭빠름, 패기만만함, 야망가의 모습이 아니라 겸손함, 화해를 위한 노력, 문제에서 도망치지 않으려는 모습이 보인다. 야곱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로 상황을 직면하고 있다.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5절)
야곱은 셈이 빠른 사람으로 선점하는 인생, 축복을 욕망하는 인생을 살았다. 그는 이제 가족과 소유를 자수성가로 이해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다. 야곱은 에서의 장자권, ‘축복’을 가로챘던 일을 떠올릴까봐 ‘축복’이란 말 대신 ‘은혜’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인정한다. 형의 축복까지 가로챈 삶은 풍요했지만 단절과 두려움, 공포를 야기했다. 야곱은 ‘형’인 에서의 지위를 인정하고(10절), 용서를 구하며, 화해하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온 축복을 사용하고 있다(11절). 이로써 관계와 축복에 관한 하나님의 순리를 회복하고 있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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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받은 축복을 다시 주님께

‘베들레헴’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전 묵상에서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이 거하실 수 있다면 ‘우리도 베들레헴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 묵상에서는 우리 안에 ‘베들레헴의 우물’이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먼저 챔버스의 이야기를 보겠습니다.

“당신의 영혼이 위험할 정도로 당신의 만족만을 위해 그것을 취한다면 당신은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부을 수 없습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늘 본문 말씀을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무엘하 23장은 죽음을 앞둔 다윗이 지나온 날을 회고하는 장면입니다. 그의 삶에 잊을 수 없는 감격적인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베들레헴은 블레셋의 소유였습니다. 열악한 싸움의 환경 가운데서 부하들이 몰래 적진인 베들레헴에 들어가 우물의 물을 떠서 다윗에게 가져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 물을 보고 기뻐하기보다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부하들의 목숨을 건 충성, 축복의 물을 하나님께 부어 드렸습니다. 이 광경을 챔버스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축복으로 당신의 욕구를 채우려 한다면 오히려 그 축복은 당신을 부패하게 할 것입니다. 당신은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께 희생제물로 부어드려야 합니다.”


부하들이 생명을 걸고 가져온 물을 부어 버린 다윗의 이러한 행동은 상식적이지 않은 일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하나님의 축복, 즉 베들레헴 우물의 물이 부어질 때 하나님은 다윗을 놀랍게 사용하셨습니다. 이 또한 ‘거룩한 낭비’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부하들이 목숨을 걸고 구해온 물을 자신을 위해 먹지 않고 여호와께 부어 드렸습니다. 부하들의 희생을 자신의 만족을 채우는데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 드렸을 때, 다윗이 부하들의 수고를 착취하는 이기적인 왕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부하들을 사랑하는 왕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다윗을 사용하시는 이유입니다.


2. 받은 축복이 탐욕이 되지 않도록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챔버스는 의외로 ‘마음의 결심’이라는 간단명료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때로 사람들은 우리의 결심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향유 옥합을 깨뜨려 주님의 머리에 부을 때,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왜 낭비하는가’라고 수근 거렸던 것처럼 말입니다. 옥합을 깨뜨리는 것이 주님을 사랑해서 한 행동이었다면, 다윗이 생명과도 같은 베들레헴의 우물물을 여호와의 전에 부어드린 것 역시 하나님을 향한 신앙 고백이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부하들이 떠온 생명과도 같은 물을 받고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는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크고 가치가 있다” 바로 그 순간 우리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이는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에 그것을 주님께 부어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이 귀한 것들이 그 주변을 생수의 강으로 넘치게 합니다.”

황형택 목사가 쓴 [언제나 희망은 남아 있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축복이 흘러넘치게 한다는 의미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이야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해비타트 운동’은 전 세계 무주택자들에게 거처를 마련해 주려는 취지로 시작됐다. 창립자는 밀러드 풀러(Millard Fuller)로 법률가이자 사업가로 성공한 백만장자다. 그러나 그는 돈만 추구하다가 가정적인 위기는 물론 영적인 위기를 맞으면서 돈이나 지위가 인생에 성공을 가져다주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와 그의 부인은 부유한 삶이 오히려 하나님과 멀어지는 원인이 된다고 판단하고, ‘우리의 가진 모든 것을 나눠 주자!’ 라고 결단했다. 이렇게 해서 해비타트가 탄생했으며 그들은 지금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이 운동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우선 정말 어려운 가정들을 찾아서 그들과 함께 집을 짓는 것이다. 거저 받는 것이 아니라 직접 건축 자재를 실어 나르고 일하며 값진 땀을 한 동이씩 쏟아 낸 후에야 비로소 자기 집을 갖게 된다. 그렇게 해서 집이 완공되면 입주 가족은 건축비를 상환해야 한다. 집값은 저소득층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또한 모든 입주자는 이후 해비타트의 동역자로 일해야 한다. 입주자들도 받은 만큼 주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처럼 나눠 주는 복된 인생이 해비타트의 진정한 목표다. 내 집을 마련하고 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내가 남을 위해 집을 짓는 수고를 하는 것, 그래서 나누는 삶을 끊임없이 실천해 가는 것이다.


오늘 챔버스의 글을 묵상하며 가슴 뛰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내 안에 머무르게 한다면 탐욕이 되고 때로 그 축복이 나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험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 반면 주님께서 부어주시는 사랑을 아낌없이 내어 놓고 흐르게 할 때 하나님께서 그 축복을 멋지게 사용하시리라는 사실입니다.

축복을 나 혼자 소유하는 것이 왜 다른 사람을 위험하게 할까요? 다윗이 베들레헴에서 떠온 물을 자신의 만족을 채우기 위해 벌컥벌컥 마셨더라면, 그의 부하들은 또 다시 목숨을 걸고 물을 가지러 가지 않았을까요?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축복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배웠습니다.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의역) “만일 당신이 받은 축복을 움켜쥐기만 하고 주님께 그 축복을 부어드리지 못한다면, 당신과 가까운 다른 사람들도 그러한 기회를 배우지 못하게 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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