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요 11:40
한 줄 노트
- 상식적인 믿음으로 주님을 신뢰할 수 없는 순간이 오면 그 믿음의 진가가 판가름 납니다.
- 믿음이란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며, 주께서 우리를 내버려두시지 않으시리라는 확신입니다.
묵상질문
지금 당신에게 온 믿음의 시련은 ‘시험’(temptation)입니까, ‘시험’(test)입니까?
묵상 레시피
(마태복음 11:2-6)
2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6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요한복음 11:40)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 세례요한은 어떤 상황 가운데 처했습니까? (2절)
- 세례요한은 예수님께 무엇을 질문합니까? (3절)
-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4-6절)
- 당신의 신앙을 흔드는 ‘거치는 돌’은 무엇입니까?
요한이 옥에서, 하신 일을 듣고(2절)
요한은 감옥에 갇혔으며(4:12) 처형된다(14:1). 세례요한은 회개에 관한 강력한 메시지들을 선포해 왔다. 요한은 심판자로서의 ‘메시아’를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눅3:16-17). 요한은 진정한 메시아라면 자신을 가둔 이들을 심판하고 옥에서 풀어줄 것이라고 믿었다. 요한은 예수의 소식을 귀 기울여 ‘들었다(헬, 아쿠사스).’ 이 단어는 들은 바에 따라 다음 행동이 바뀔 수 있음을 포함한다.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까’라는 물음에는 예수님에 대한 요한의 흔들림이 드러난다.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6절)
예수님은 이사야 61:1-2절을 인용하시며 자신이 메시아임을 인정하신다(누가복음에는 이사야서를 인용한 후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4:21).’고 말씀한다). 예수님으로 인해 메시아 시대가 시작되었다. 마침내 하나님 나라가 드러났다. 이제 핵심은 선지자들의 예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들이 예언한 메시아가 예수의 ‘나’와 결합되었다. ‘실족하다(셀, 스칸달리스데’는 ‘길 가운데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을 놓다’라는 뜻이 있다. 어떤 장애물로 인해 예수님이 메시아 되심을 의심하고 불신하는 것을 뜻한다. 요한에게는 자신만의 메시아 상이 예수님에 대한 장애물이었다. 이사야는 누군가에게는 메시아가 ‘거치는 돌’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사8:13,14).
1. 믿음의 시련
오늘 챔버스는 ‘상식’과 ‘믿음’의 개념을 비교하며 진짜 믿음이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 상식과 믿음은 엄연하게 다릅니다. 상식은 자연적인 것이요, 믿음은 초자연적인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주님을 의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상식과 믿음이 충돌하는 상황들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인간의 상식으로 볼 때 이미 죽어 냄새가 나는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주님은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이렇게 다시 묻습니다.
“상식적인 판단이 ‘거짓말이 아닐까?’라고 외칠 때에도 용감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고 나아갈 수 있습니까?”
챔버스가 자주 언급하는 ‘변화산의 체험’이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하며 영적으로 깊은 체험을 하는 순간에 믿음을 고백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필요한 순간은 악령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고 있을 때입니다. 우리에게 도전이 되는 것은 스스로 믿음에 바로 서 있다고 생각할 때, 믿음을 흔들어 놓는 현실과 맞닥뜨리는 상황이죠. 요한복음 11장이 바로 그렇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오라비인 나사로가 아팠을 때, 주님이 오셔서 고쳐주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라비가 죽자 그들의 믿음 체계가 흔들립니다. 사실 믿음이 흔들리는 이유는 자신의 믿음의 체계 위에서 하나님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믿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우리의 생각과 상식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믿음인 것이죠. 이럴 때 믿음의 시련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선택이 주어집니다. 믿음의 시련을 통과하겠는가? 아니면, 믿음의 체계가 무너져 내린 상황에서 뒤로 물러나겠는가?
2. 믿음의 시험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끊임없이 믿음의 시련이 찾아옵니다. 상식으로 인해 우리의 믿음은 늘 시험을 받습니다. 시험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우리를 넘어뜨리는 유혹으로서의 ‘시험’(temptation)이 있고, 우리를 성장시키는 ‘시험’(test)이 있습니다. 유혹은 물리쳐야 하지만 시험은 꼭 이겨서 통과해야 합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를 보다가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습니다. ‘흑연’이 고온과 고압을 만나면 다이아몬드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이아몬드는 탄소 원자의 결합으로만 이루어진 물질입니다. 마찬가지로 탄소 원자로만 이루어진 물질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흑연입니다. 이상하게도 다이아몬드는 최고로 비싼 보석이지만, 흑연은 값싼 연필심으로 사용되죠. 분명히 같은 탄소 원자로 이루어진 물질인데,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걸까요? 두 물질의 화학 결합과 결정 구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같은 원소로 이루어진 물질인데, 혹시 흑연을 다이아몬드로 변화시킬 수는 없을까?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분명 이런 생각을 했겠죠. 그리고 실제로 이런 시도를 한 사람도 있습니다. 놀랍게도 1955년, GE연구소에서 1,700도씨 온도와 75,000 기압의 조건에서 처음으로 다이아몬드를 합성했습니다. 이후 기술은 더욱 발전해 지금은 좀 더 낮은 온도, 낮은 압력에서 다이아몬드를 합성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합성된 다이아몬드는 보석으로서의 가치는 없으나 공업용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챔버스의 오늘 묵상 글이 이와 딱 들어맞습니다.
“믿음은 시련을 거쳐야만 합니다. 그 이유는, 믿음은 오직 시험을 지나야만 인격적으로 소유한 믿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흑연과 다이아몬드는 탄소 원자의 결합으로 본질이 동일합니다. 그러나 책정되는 가치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무엇이 그러한 차이를 만들어냈을까요? 그 차이는 고온과 고압을 통과했느냐에 있습니다. 이것을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면, 고온과 고압은 우리 안에 심겨진 믿음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드는 “시련”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물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믿음의 시험은 무엇인가?”
이 시험을 통과하면 우리의 믿음이 증명되지만, 통과하지 못하면 가지고 있던 믿음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믿음의 시험에서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요?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마 11: 6)’ 믿음에서 마지막까지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에 대한 확신입니다. 끝까지 견고하게 주님을 믿으십시오. 당신이 만나는 모든 역경은 당신의 믿음을 자라나게 할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생의 모든 여정에서, 믿음은 계속 시험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험의 가장 큰 고비는 ‘죽음’입니다. 달려갈 길을 다간 후에, 마지막 죽음 앞에서 버림받지 않도록 단단하게 주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4장 7-8절 말씀은 사도 바울이 죽음을 앞두고 한 고백입니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이 말씀에 사도 바울의 진심이 담겨 있습니다. 그가 죽음을 앞에 두고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예비된 면류관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의 삶을 따라오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믿음의 싸움에서 지켜주실 주님을 의지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