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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불안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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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요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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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진정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있다면 인생의 파도 앞에서 평강과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 주님을 바라보면 제어할 수 없는 문제로 인해 당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께서 다루어 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묵상질문

불안함을 느낀다면, 불안의 이유와 내용을 적어봅시다. 그리고 그것이 주님보다 더 큰 것인지 생각해봅시다.


묵상 레시피

◆시편 55:1-23+ 요한복음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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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55:1-23)
1 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할 때에 숨지 마소서
2 내게 굽히사 응답하소서 내가 근심으로 편하지 못하여 탄식하오니
3 이는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 때문이라 그들이 죄악을 내게 더하며 노하여 나를 핍박하나이다
4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이르렀도다
5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공포가 나를 덮었도다
6 나는 말하기를 만일 내게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7 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머무르리로다 (셀라)
8 내가 나의 피난처로 속히 가서 폭풍과 광풍을 피하리라 하였도다
9 내가 성내에서 강포와 분쟁을 보았사오니 주여 그들을 멸하소서 그들의 혀를 잘라 버리소서
10 그들이 주야로 성벽 위에 두루 다니니 성 중에는 죄악과 재난이 있으며
11 악독이 그 중에 있고 압박과 속임수가 그 거리를 떠나지 아니하도다
12 나를 책망하는 자는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진대 내가 참았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일진대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
13 그는 곧 너로다 나의 동료, 나의 친구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
14 우리가 같이 재미있게 의논하며 무리와 함께 하여 하나님의 집 안에서 다녔도다
15 사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임하여 산 채로 스올에 내려갈지어다 이는 악독이 그들의 거처에 있고 그들 가운데에 있음이로다
16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17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18 나를 대적하는 자 많더니 나를 치는 전쟁에서 그가 내 생명을 구원하사 평안하게 하셨도다
19 옛부터 계시는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들을 낮추시리이다 (셀라) 그들은 변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함이니이다
20 그는 손을 들어 자기와 화목한 자를 치고 그의 언약을 배반하였도다
21 그의 입은 우유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그의 마음은 전쟁이요 그의 말은 기름보다 유하나 실상은 뽑힌 칼이로다
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23 하나님이여 주께서 그들로 파멸의 웅덩이에 빠지게 하시리이다 피를 흘리게 하며 속이는 자들은 그들의 날의 반도 살지 못할 것이나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요한복음 14:27)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 시인은 어떤 일을 당했으며 심정이 어떻습니까? (2-5,9-11,20-21절)
  • 시인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대상은 누구입니까? (12-14절)
  • 시인은 폭풍과 광풍중에 무엇을 바라고 있습니까? (6-8절)
  • 시인이 의지하고 바라볼 것은 오직 무엇입니까? (15-18,22-23절)

내 마음이,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이르렀도다(4절)
시인은 대적으로 인해 매우 큰 번민에 휩싸였다. 고통과 괴로움 중에 있다. 그는 풍랑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 조용한 피난처를 갈망한다. ‘비둘기’는 접근 불가능한 벼랑 틈에 둥지를 치는 ‘양 비둘기’로 보인다. 시인은 멀고 안전한 곳을 원한다. 어지러운 상황에 함께 휩쓸리지 않고자 비둘기의 무흠(無欠)을 소망한다(마10:16). 인간에 대한 염증은 아무도 없는 ‘광야’를 바라게 한다(7절).

폭풍과 광풍을 피하리라(8절)
시인이 겪는 혼돈의 상황은 공동체(성내에서, 9-10절) 안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공동체 안에는 상도도 없고(강포와 분쟁), 악으로 연합한 무리들이 있었다(그들의 혀를 잘라 버리소서). 새번역 성경은 9절 하반절을 ‘그들의 언어가 혼잡하게 되도록 하여 주십시오.’로 번역했다. 바벨탑을 쌓던 ‘반역적 연합’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은 늘 악행의 대상을 찾아 몰려다닌다(10-11절). 도성의 분위기는 ‘악독, 압박, 속임수’ 등으로 매우 어둡고 침울하다. 대적들은 매우 가까웠던 자들이었다(13절). 그것이 시인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 본문은 이러한 상황의 유일한 대안은 주님을 의지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합2:4).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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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안하신가요?

오늘 묵상은 아주 흥미로운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무지로 인해 마음이 평안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알지 못합니다. 이런 무지와 무감각 속에서 마음이 잠시 평안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삶을 요동치게 하는 사건을 만났을 때 이런 평안은 곧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이때 우리 주님께서 평안하라고 말씀하시면 평안해 질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주님의 말씀을 받은 적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14장 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이 말씀이 삶에서 현실화되는 것을 경험했느냐는 것입니다.


마음이 극히 불안하고 고통스러운가요? 분명 믿음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인생의 파도 앞에서 평강과 기쁨과 위로를 찾을 수가 없나요? 그렇다면 진정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억지로 주님께 향하게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언제든지 주님께 마음을 돌릴 자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지 못한 사람은 결코 주님만 바라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담합니다.

“만일 어떤 이유이든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당신은 불안에 빠지든지 아니면 거짓된 안정감을 취하게 됩니다.”


얼마 전 ‘무명의 그리스도인’으로 알려진 작가가 쓴 [무릎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책을 보았는데, 이런 내용이 있더군요.

“실패의 비밀은 우리가 하나님보다 사람들을 본다는 데 있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하나님을 보았을 때, 로마 가톨릭은 두려워 떨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하나님을 보았을 때, 대각성이 일어났습니다. 존 웨슬리가 하나님을 보았을 때, 세계가 한 사람의 교구가 되었습니다. 휫필드가 하나님을 보았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조지 뮬러가 하나님을 보았을 때, 수천 명의 고아들이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히 13:8)”


오늘 챔버스는 염려와 불안의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평안과 기쁨, 위로를 누리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침은 신앙의 선배들을 통해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2. 주님만 바라보기

오늘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당신을 압박하는 문제들 가운데서 지금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평안을 얻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안에 평안이 임하는 축복을 경험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삶의 파도 앞에서 ‘염려함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주님을 밀어내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챔버스는 오늘 조금 무서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밀쳐낼 때, 그에 합당한 결과를 얻으리라는 사실입니다. 불안에 빠지는 이유는 주님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답은 친밀한 관계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볼 때, 삶의 파도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주님은 풍랑을 잔잔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니 말입니다. 주님을 바라보면, 제어할 수 없는 문제 때문에 당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그 문제들을 다루실 것이니 말입니다.


오래 전 요한복음 16장 33절 말씀으로 설교했던 내용이 생각이 났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두 명의 화가가 있었다. 두 사람은 ‘마음의 평화’ 라는 제목으로 각각 그림을 그렸다.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깊은 산골짜기에서 은빛을 발하며 잔잔하게 뻗어 있는 맑은 호수가 마음의 평안을 상징한다고 그렸다. 다른 한 사람은 이것과 대조되는 엉뚱한 그림을 그렸다. 그것은 물보라를 일으키며 천둥 같은 소리와 함께 절벽 아래로 쏟아지는 폭포였다. 그 폭포 옆에 자작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 자작나무 위에 둥우리를 틀고 로빈새 한 마리가 물보라에 흠뻑 젖은 채 조금도 동요됨이 없이 앉아 있었다. 그 화가는 이 새의 모습이 바로 마음의 평안을 나타낸 것이라고 그렸던 것이다.


성경적으로 볼 때 후자의 평안이 참된 평안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골짜기에 자리 잡은 잔잔한 호수 같은 그런 평안이 아니다. 그것은 바람이 없기 때문에 조용한 것뿐이고, 비가 쏟아지지 않기 때문에 맑게 보일 뿐이다. 바람이 불면 물결이 일고, 비가 쏟아지면 흙탕물이 될 수 있다. 위험한 요소가 얼마든지 있지만 환경 때문에 잠깐 동안 고요한 것뿐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폭포와 같이 요란한 소리를 내는 분위기 속에서도 유지할 수 있는 그런 평안이다.


“지금 고통스러울 정도로 불안합니까?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허락된 풍랑과 바람으로 마음이 혼란 가운데 있습니까? 당신의 믿음의 반석들을 다 들춰보았지만 여전히 평강과 기쁨과 위로가 없습니까? 마음이 허망합니까? 그렇다면 주 예수님의 평강을 바라보고 그것을 받으십시오.”


우리의 유일한 관심은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 앞에 놓인 파도는 무엇인가요? 어떤 고통과 이별, 슬픔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주님을 바라보면 이런 음성을 듣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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