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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자아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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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로 오라


마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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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엄밀한 의미에서 ‘자아의식’은 ‘예수님 의식’과 대척점에 있습니다.

묵상질문

나를 주님과 멀어지게 하는 ‘자아의식’은 무엇인가요? 문제를 알면 답도 알 수 있습니다.


묵상 레시피

◆창세기 3:1-13+ 마태복음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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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1-13)
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마태복음 11:28)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뱀이 여자에게 한 질문은 무엇입니까? (3:1절)
  • 질문에 대한 여자의 답변은 무엇입니까? (2-3절)
  • 뱀은 무엇이라 유혹했고, 사람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4-6절)
  • 그 결과 아담과 하와에게 어떤 변화가 생깁니까? (7절)
  • 아담과 하와, 하나님, 뱀의 관계는 각각 어떻게 되었습니까? (9-13절)

뱀이, 물어 이르되, 참으로, 하시더냐(1절)
뱀은 들짐승 중 가장 간교했다. ‘간교(히, 아룸)’는 ‘슬기롭다’는 뜻과 동시에 ‘간사하다 , 교묘하다’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있다. 비슷한 발음의 ‘벌거벗음(히, 아루밈)’과 언어유희(word-play)로 쓰였다. 유혹은 ‘정교한’ 모습으로 ‘무방비’ 상태의 인간에게 다가온다. 피조물의 간사와 슬기로움은 창조주 하나님 앞에 그 어리석음이 낱낱이 드러나게 된다(고전1:25).

뱀은 ‘참으로’라는 말로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을 갖도록 질문하고 있다. 여자는 하나님이 말씀 하신 것에 ‘임의로’ 즉 마음껏 먹으라는 말은 제하고, ‘만지지도 말라’는 부정적인 말을 덧붙인다(창2:16-17절 비교). 사람의 대답에는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이미 하나님 말씀에 대한 자의적 해석이 들어가 있다.

너희 눈이 밝아져, 선악을 알 줄(5절)
뱀은 ‘반드시 죽으리라(2:17)’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유혹한다(4절). 뱀의 유혹은 모든 세대의 인간에게 유혹적이다(5절). ‘눈(히, 아인)’은 신체 일부일 뿐 아니라 마음의 감정을 표출하는 창구(신15:9, 잠6:17, 시18:28, 아4:8), 지력을 나타낸다(창29:17). ‘선악(히, 토브, 라)’을 알게 된다는 것은 선악의 속성을 깊이 알고 선악에 익숙하게 된다는 의미다. 스스로의 사고력과 판단력, 훨씬 더 유능한 모습, 더욱 우월한 무엇,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것. 뱀이 유혹하자 하나님이 금하신 것이 먹기에도, 보기에도 좋아 보인다(요일2:16). ‘뱀’은 불가능 한 것을 가능하다고 속이고 있다(요8:44). 사람의 눈이 밝아졌을 때 제일 처음 알게 된 것은 ‘수치심’이다. 그들은 자신의 ‘벌거벗음’을 가릴 무언가를 찾았다(7절).

낯을 피하여, 숨은지라(8절)
‘낯(히, 파님)’은 ‘얼굴’뿐 아니라 ‘인격, 존재’를 뜻한다(출33:14,삼하17:11, 애4:16). 인간은 하나님의 존재를 피하고 관계에서 단절된다. 하나님께 핑계 대며 숨는다(10절). 이는 모든 관계의 단절과 책임 회피로 이어진다. 인간이 생명과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단절되자 ‘나, 너, 우리’ 모두를 잃게 된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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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의식 vs. 예수님 의식

흔히 ‘자아의식’(self-consciousness)이라는 말은 긍정적인 의미로 쓰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오늘 묵상에서는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파괴하는, 부정적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챔버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께 나아가 ‘자아의식’이 아닌 ‘예수님 의식’을 갖게 해달라고 간구한다면, 주님께서는 그 기도를 응답하셔서 우리로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을 배우게 하실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자아의식’은 ‘예수님 의식’과 대척점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아의식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예수 안에서 온전한 삶을 살 때는 ‘자아의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삶을 지배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상적인 신앙을 뒤흔드는 것이 있습니다. 챔버스는 이것을 ‘외부로부터 오는 공격’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흔들리면 옛 사람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8월 15일 말씀을 통해 ‘거듭남의 증표’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거듭남의 증표 중 하나는 ‘하나님 나라를 보는 것’, 즉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입니다. 아주 흥미로운 신앙적 관점입니다. 우리의 완전함을 흔드는 것은 ‘자아의식’입니다. 우리의 죄 된 본성이 고개를 들면, 하나님의 낯을 피해 숨게 됩니다. 창세기에서 처음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의 낯을 피해 숨었습니다. 죄의 본성은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합니다. ‘자아의식’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여 삶으로부터 평안을 앗아갑니다. 이 문제의 유일한 해답이 오늘 본문에 있습니다. ‘내게로 오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루 속히 관계를 정립하는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욥기]에서 토마스 에드워드 브라운(Thomas Edward Brown)의 시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과 연관해 묵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당신이 빈 조개껍데기처럼 자신을 비울 수 있다면

주님은 당신을 대양 가운데서 찾아내어

“이것은 죽지 않았다”라고 외치실 것이다

그러고는 비어 있는 당신 안에 그분 자신을 채우실 것이다

하지만 당신 자신으로만 가득 차서 악한 행동을 한다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이것은 속이 꽉 차 있구나 그냥 내어 버려라

너무 작은데 꽉 차 있으니 나를 위한 여지가 없다“


문제의 해답은 우리 속을 주님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어렵고 힘들 때 ‘정신 차려!’라고 말하지만, 신앙인은 위기의 순간에 ‘주님을 바라봐!’라고 말해야 합니다.


제가 군목으로 사역을 할 때의 일입니다. 군대에서 목사가 하는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정신적으로 힘겨워하는 병사를 돌보는 일입니다. 당시 ‘인격 지도’라는 이름으로 부대를 찾아다니면서 강의를 하고, 소위 ‘관심사병’들을 상담했습니다. 종종 자살이나 탈영을 시도한 병사, 군에서 사고를 일으킨 병사를 만나 이야기하다보니, 이들의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제정신’으로 군 생활을 해서 힘들다는 것입니다. 입대할 때부터 ‘군인 정신’을 가져야 각오를 다지고 적응할 텐데, 입대 전 삶의 방식을 버리지 못하니 힘든 것입니다. 제가 종종 했던 말이 있습니다. “군인 정신은 제정신이 아닙니다!” 이 말이 오늘 묵상과 잘 맞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자아의식’을 가지고 신앙생활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주님과의 새로운 관계 속에서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챔버스는 주님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것이 ‘외부로부터 오는 공격’이라고 했습니다. 외부의 공격은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찾아옵니다. 문제는 이런 공격으로부터 어떻게 자신을 보호하느냐는 것이죠. 챔버스의 권면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당신의 삶을 분리시키려는 것이 있다면, 절대로 방치해두지 마십시오. 곁길로 빠지는 것을 조심하고 친구 및 환경의 영향이 당신의 삶을 분열하는 것을 주의 하십시오. 주님과의 하나됨을 파괴하여 당신을 분리된 자아로 보게 하려는 것들을 주의하십시오. 영적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됨을 유지하는 최선의 방법은 주님께 나아오는 것입니다. ‘내게로 오라!’ 주님의 가장 위대하면서도 간단한 명령입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에 보면 이 풍성한 진리를 깨달은 고백이 있습니다.

나는 내 자신을 사랑하는 잘못된 길로 갔다가 그만 길을 잃어버렸었는데, 진심으로 오직 주님만을 구하고 사랑함으로써, 내 자신과 주님을 둘 다 찾았고, 그 사랑으로 인해서 내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더욱더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인자하시고 긍휼에 풍성하신 주께서 아무 공로도 없고 자격도 없는 나를 분에 넘치게 대해 주시고, 내가 소망하거나 구한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베풀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챔버스는 어떤 형태로든 자기를 의식하는 것이 우리를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며, 이를 극복하려면 주님께 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토마스 아 켐피스는 자기를 사랑하는 길로 갔다가 길을 잃었지만 주님만을 사랑함으로써 다시 자신과 주님을 모두 찾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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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나눔
박영호
군인정신은 제정신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자아정신으로 신앙생활하면 안된다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자아는 멀까요?

알게하소서
2021.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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