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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향한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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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마 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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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풍랑이 이는 바다 한가운데 서야 누구를 신뢰하는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묵상질문

인생의 풍랑 가운데 있습니까? 우리의 모습을 주님이 기뻐하신다고 말할 수 있나요? 문제는 풍랑이 아니라 신뢰 여부입니다.


묵상 레시피

◆마태복음 8: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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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8:23-27)
23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24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25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27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 오늘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24절)
  • 예수님은 무엇하고 계셨습니까? (24절)
  • 제자들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25절)
  • 예수님의 말씀과 행하심을 묵상해 보십시오. (26절)
  • 제자들의 물음과 그에 대한 답을 묵상해 보십시오. (27절)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23절)
한글 성경에 나타나지 않지만, 원문에는 예수님을 가리키는 ‘그가(헬, 아우토)’가 2번이나 사용되었다. 본문 바로 전에는 예수님을 따르려 했으나 결국 포기한 한 서기관의 이야기가 나온다. 제자들은 서기관이 포기한 바로 그 ‘예수님’을 따라 배에 올랐다. 그럼에도 제자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여전히 모르고 있다(27절).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24절)
‘놀(헬, 세이모스)’은 바다의 큰 물결을 가리킨다. 엄청난 파도, 거대한 폭풍(8:24), 폭력이 오가는 소란, 동요, 지진(24:7) 등에 사용되는 단어다. 제자들이 풍랑을 만났다는 것은 실제 바다에서 일어난 사건인 동시에 교회와 성도가 당할 수 있는 큰 환란과 고난을 의미하기도 한다. 제자들과 달리 예수님은 주무신다. 아버지께서 그 안에, 그가 아버지 안에 있기 때문이다(요 10:38). 어떤 재난과 죽음, 두려움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는 위협이 되지 않는다.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25절)
여기에 쓰인 ‘구원’ 역시 중의적인 의미가 있다. 1) 자연적인 재난으로부터의 구원 2) 환란과 고난을 맞은 성도들의 영적인 위험, 영원한 죽음의 위협으로부터의 구원(롬5:9, 엡2:8). ‘죽겠나이다’에도 2가지 의미가 있다. 1) 재난을 당해 외형적으로 파괴되는 것 2) 육적 죽음과 더불어 영적인 죽음(고전1:19). 제자들은 실제적인 문제로 인해 예수님을 부른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적인 측면으로 상황을 확대시키신다. 인간적인 방법을 쫓기보다 기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태도로 드리는 기도인지 살펴야 한다.

믿음이 작은 자들아(26절)
마가복음에는 동일한 사안에 대해 ‘우포’라는 헬라어가 쓰였다. ‘아직도 아니’라는 형용 부사이다. 제자들은 많은 기적들을 목격하고 가르침을 받았다. 예수님을 따르는데 나름의 결단을 하고 배에 올랐다. 그럼에도 그들은 아직도 예수님의 능력과 인격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바람과 바다(27절), 자연 현상까지도 지배하시는 분, 천지를 창조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다. 예수님이 함께 하실 때 환란과 고난의 현장일지라도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가 임하게 된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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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랑 가운데 안식 누리기

두려움과 안식은 반대 개념입니다. 우리가 두려움 가운데 있을 때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안식과 평안 가운데서는 ‘무엇’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풍랑 가운데 두려움에 떠는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질책하시는 장면입니다. 이 질책을 통해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주의 자녀들이 주님을 향한 확신으로 가득 차기를 바라시며, 어떠한 위기에서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시기에 조금도 변함없이 믿을 만한 자녀들이 되어줄 것을 기대하십니다.”


제자들이 풍랑 가운데 두려워 떨고 있었던 이유는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주님을 풍랑보다 더 크신 분이라고 생각했다면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의 문제는 주님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만 신뢰한 것입니다. 풍랑이 이는 배 안에 주님이 타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풍랑 가운데 잠을 청하신 예수님을 깨우며 호들갑을 떨고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자신을 파괴하려는 풍랑이 보이자 주님을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제자들을 보시며 주님은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책망하고 계십니다.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질책하시는 예수님에게서 무엇을 느낄 수 있나요? 제자들의 모습을 보며 실망하시는 예수님? 아마 질책하시는 예수님을 보며 제자들이 더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말씀을 듣고 기적을 보아도 또 실패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김길 목사님의 책 [사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려운 일을 겪으면 판단이 정확하지 못하여 두려움에 붙잡혀서 하나님의 인격을 향한 신뢰가 무너지는 경우가 있다. 어떤 집사님이 목사님을 따라 함께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청년부 부장이었던 집사님은 청년들을 데리고 바닷가로 수련회를 갔다가 신실한 형제가 파도에 휩쓸려 소천 하는 일을 당했다. 어떤 자매를 구하다가 생긴 일 같다고 했다. 그 일로 청년의 아버지였던 장로님은 목사님과 함께 개척을 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겪는 것이라고 원망을 하였고, 모든 교회 직분자들이 큰 실망 가운데 낙담하였다. 결국 목사님은 교회를 떠났고, 집사님 자신도 교회를 옮겼다고 말하면서 운다. 지금 그 목사님에게 후원을 하고 있는데 자기도 어려워지는 것이 아닌지 두렵다는 것이다.


나는 조용히 집사님에게 말했다. “집사님, 교회를 개척한다고 하나님께서 신실한 청년을 죽게 하십니까? 하나님이 정말 그런 분이십니까? 제 생각에 그 청년은 순교한 것입니다. 연약한 자매를 돕다가 천국에 먼저 간 의로운 사람입니다.” 집사님의 얼굴이 밝아진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격을 향한 굳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심지어 내가 잘못했어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기다리시기 때문에 지금 돌아가면 가망이 있다고 하나님의 인격을 굳게 믿는 것이다. …

하나님의 인격을 향한 안정감 있는 신뢰가 하나님의 뜻을 인격적으로 분별할 수 있게 한다.


반대로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언제 주님께 실망이 아닌 기쁨을 안겨드릴 수 있을까요? 주님과 함께 있으며 온전히 주님을 신뢰할 때입니다. 사실 현재의 두려움과 미래의 불확실성 모두 주님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찾아옵니다. 오늘 풍랑이 이는 바다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일까요?

“인생에는 폭풍도 없고 위기도 없이 그저 인간의 최선을 다하기만 하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기가 오면 우리가 누구를 신뢰하는지를 당장 드러냅니다.”


오늘 묵상의 원문 제목은 ‘안식의 신학’(The theology of rest)입니다. 우리가 풍랑 가운데서 주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다면 우리 인생의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날 때, 주님을 향한 신뢰를 잃지 않을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챔버스는 이러한 안식의 신학을 ‘성화’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며 ‘성화’되는 것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성화는 하나님 안에서 안식할 수 있도록 역사하는 것이며, 이는 하나님과 하나됨을 의미합니다.”


부연 설명한다면 이런 것이죠. 제자들은 배 안에 주님과 함께 있었지만, 주님과 온전히 하나 되지 못했습니다. 주님 안에 거하지 못한 채 단지 옆에 계시는 분으로만 생각하니 두려움이 찾아온 것입니다. 두려워 떠는 제자들을 보시며 주님은 못마땅해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기쁨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놀라운 진리를 하나 발견합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안식을 누릴 때, 주님이 우리를 가장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주의 형상을 본받아]에서 그리스도인의 성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 121:1-2)

시편 121편은 위를 바라보는 기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위를 바라본다는 것은 산이 아닌 산을 지으신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뜻이다. 사람을 붙들어 주는 가장 강한 힘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바라볼 때 온다. 만일 하나님이 아닌 별을 계속 쫓아간다면 조만간 넘어지게 될 것이다. 이제 초보적인 영적 체험에서 걸어 나와 하나님을 바라보라.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시 16:8) 하나님을 항상 바라보며 우리 앞에 모시려면 우리는 힘써 영적 싸움을 치러야 한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을 의지하는 법을 배운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산과 같은 위기의 상황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바라봅니다. 챔버스는 초보의 영적 체험에서 나와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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