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했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했더라
눅 18:31,34
한 줄 노트
- 하나님의 부르심이 당황스럽게 느껴진다면 지금 하는 일과 하나님이 방향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 단순함은 무지가 아닌 신뢰가 주는 선물입니다.
묵상질문
믿음의 연조가 늘어가면서 점점 단순해지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나요? 그렇다면 점점 더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묵상 레시피
(에베소서 3:1-9)
1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2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3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4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5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7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누가복음 18:31,34)
3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34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 바울이 알게 된 ‘감추어진 비밀’은 무엇입니까? (6절)
- 바울은 이 비밀을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3-5절)
- 바울은 어떻게 부름받게 되었습니까? (7절)
- 바울은 무엇을 위해 부름 받았습니까? (8-9절)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1절)
바울은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로마 황제로 인해 갇힌 신세였다. 그러나 바울은 인간사에 있는 하나님의 계획, 목적, 주권을 믿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인해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갇힌 것이라고 표현한다.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3절)
‘비밀(헬, 미스테리온)’은 누군가로부터 ‘전수받은’ 진리를 가리킨다. 당시 이교(신비) 종교들에는 입문자에게만 전수되는 가르침이 있었다. 그러나 기독교의 ‘비밀’은 일부 사람들, 영적 엘리트만을 위한 제한적, 비공개 가르침이 아니다. 그 비밀은 감추어져 있었으나(5,9절) 하나님께서 드러내셨고 이제 전체 교회에 속한 것이 되었다. 이 비밀은 ‘그리스도의 비밀(4절)’ 즉, 원천과 내용이 ‘그리스도’이다.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은혜의 선물을 따라(7절)
바울은 하나님의 특권적 은혜로 부름 받았다. 그는 영웅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력한 주권(능력의 역사)에 의해 부름 받았다. 바울은 조건으로 치면 선발될 수 없었노라 고백한다(8절, 골1:25, 딤전1:13). 그는 두 가지 은혜를 입었다. 감추어졌던 ‘비밀’을 알게 된 것과 그 비밀을 전하게 될 일꾼으로 부름 받은 것이다.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8절)
바울은 첫째로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전하기 위해 부름 받았다. ‘측량할 수 없는(헬, 아넥시크니아스토스)’은 ‘탐지해 내서는 안 되는’이란 뜻을 지녔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창조 섭리, 경이, 하나님 계획의 깊은 신비에 사용된 단어다(욥5:9, 롬11:33). 그리스도 안에 담긴 하나님의 뜻과 계획, 섭리는 너무나 광대하며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함이라(9절)
바울은 둘째로 ‘비밀의 경륜’을 드러내기 위해 부름 받았다. 9절에 담긴 복음전파의 뉘앙스는 ‘유앙겔리조(복된 소식을 전하다)’가 아니라 ‘포티조(밝히다)’이다. 복음이 선포될 때 복음을 듣는 자의 ‘상태’가 바뀌는 것이다. 무지와 어둠의 주관자, 암흑에 붙들린바 되었던 자들이 (바울이 그러했듯) 하나님의 밝힘(enlightenment)에 의해 눈을 뜨게 된다. 그리스도가 선포될 때 유대인과 이방인은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사회 구성원인 한 몸, 교회를 이룬다. 하나님은 이 비밀의 경륜을 ‘모두에게’ 밝히도록 하셨다(개역개정에는 ‘모든 사람all men’이 번역에서 빠져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유대인, 이방인 둘 다로 이루신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사회 구성원인 교회를 통해 이 세상 만물을 재창조 하실 것이다.
1. 당황스러운 이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참 당황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때,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일하실 때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그렇습니다.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그런 고난을 당하도록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셔서 자신의 죽음을 보고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당신을 부르실 때 마음이 깨어지는 것을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하나님의 관점이 아닌 세상적 관점에서 볼 때 완전한 실패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실패로 보이는 것도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가장 놀라운 승리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목적은 결코 사람의 목적과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챔버스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당황스러운 이유가 ‘바다의 부름’과 같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이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바다가 우리를 부르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바다 안에 있어야, 바다의 언어를 알고 바다의 성품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마치 바다의 부름과 같다면, 우리 역시 하나님 안에 있어야 그 부르심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 안에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목적의 선하심과 완전하심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J. I. 패커는 [제임스 패커의 하나님의 인도]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임무를 맡기시기 위해 오랜 기간에 걸쳐 우리를 준비시키신다. 우리는 대개 사역의 윤곽이 확연히 드러나기 전까지는 하나님이 우리를 준비시키셨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준비시키시는 동안 발생하는 중요한 사건들은 오히려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들곤 한다. . .아무 의미도, 목적도 없어 보이는 불행한 사건들이 축복을 베풀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으로 드러나는 순간,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찾아온다. 그런 사건들이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사실을 확신하는 데는 믿음이 필요하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1장 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품에 들어갑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신뢰하게 됩니다.
2. 자격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목적을 향해 함께할 ‘동료’를 만드시기 위해 우리를 부르십니다. 여기서 ‘동료’(comradeship)라는 단어에 주목해 보겠습니다. ‘동료’라고 번역된 ‘comrade’라는 영어 단어는 공산주의에서 ‘동무’를 부르는 호칭입니다. 공산주의의 태동 배경이 무엇인가요? 계급을 타파하고 평등한 관계를 누리자는 것이죠. 이것을 적용해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철저한 우정과 동료의 관계로 부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어떻게 동료 관계가 가능할까요? 우리는 하나님처럼 능력도 없고, 하나님의 계획도 다 이해하지 못하는데 말입니다. 하나님과 동료 관계가 되는데 중요한 것은 능력이 아닌 ‘믿음’입니다. 챔버스의 글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 동료로서의 자격 시험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하나님이 알고 계신다는 믿음입니다. 이 세상에는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일들이 완전한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서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주의 경륜 가운데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 계십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두 개의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경륜’(decree)이고, 다른 하나는 ‘목적’(purpose)입니다. 경륜은 판사가 판결한 결정문을 의미합니다. 최종 판결한 결정문은 권위에 의해 주어졌고 변경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이 하나님의 ‘경륜’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우리의 이해가 아니라, 그 일을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모든 것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을 완전히 믿고 신뢰할 때, 우리는 기꺼이 하나님의 목적에 동참하는 동료가 됩니다.
오늘 묵상에서 챔버스는 아주 중요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단순함’입니다. 이 단순함은 하나님과의 교제와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 분의 ‘성품’을 알게 되면, 자꾸 그분의 목적이 무엇인지 묻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그분의 목적이 선하심을 믿기 때문에 더욱 단순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질문이 많을 때 ‘의심이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우리를 복잡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믿음’을 단순하고 무식하다고 치부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부요함을 인정하기 때문에 단순해집니다. 깊은 지식과 깊은 믿음 가운데서, 우리는 단순해집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재주가 아닌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온전히 믿는 자들입니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특징인 단순함과 여유로움을 파괴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