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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강권하시는 하나님

통독표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눅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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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그리스도인의 삶에 ‘우리의 야망’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온전히 사로잡혀야 합니다.
  •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어느새 우리 눈에 그 뜻이 모호해지기 시작합니다.

묵상질문

처음 당신이 품었던 그 놀라운 비전이 지금도 하나님의 뜻과 일치한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묵상 레시피

◆누가복음 18: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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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8:31-34)
3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32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33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34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 예수님은 열두제자에게 무엇을 예고하십니까? (32-33절)
  • 이 일은 어디에 기록된 것입니까? (31절)
  • 십자가와 죽음에 대한 제자들의 생각은 어떠합니까? (34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31절)
구약의 예언과 성취에 관한 언급은 보통 누가보다는 마태복음에 많이 쓰인다. 누가가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은 매우 의도적이라는 뜻이다. 누가는 앞으로 일어날 ‘수난’들의 세상 권력에 의한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이미 예고된 바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속사가 그분의 일정과 통제 하에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시22편 참고). 수난과 죽음의 예고는 더욱 구체화되어 간다(눅9:22-27,43-45 참고). 시간이 임박해진 것이다.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32절)
누가는 마태, 마가와 달리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언급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바로 이방인들에게 넘겨질 것이라고 말한다(마20:19, 막10:33). 누가복음에는 유대 산헤드린 공회에 의한 예수님의 사형 판결 장면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누가가 유대인들의 책임을 면해주려는 것인가? 누가복음은 이방인을 주 대상으로 쓰인 복음서다. 누가는 예수님의 죽음에 이방인들도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자 했다. 때문에 유대인 부분을 누락하고 이방인을 바로 언급함으로 해당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말씀이 감취었으므로(34절)
‘감취었다(헬, 엔 케크륌메논)’는 문장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해된 적이 없다는 말이다. 그들은 ‘그 말씀’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고, ‘그 말씀’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인지하지 못했다. 이후 초대교회가 전파한 복음에서 십자가와 죽음, 부활은 가장 먼저이고, 제일 중요한 부분이었다(고전15:3,4). 제자들은 십자가와 수난으로 인해 절망했을지 모르지만, 십자가와 수난이 빠진 복음이야말로 가장 왜곡되고 절망적인 것이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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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버지의 뜻대로

오늘 묵상은 1917년 3월 18일 자이툰 부대에서 저녁 예배 시 ‘강권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챔버스가 한 설교를 편집한 것입니다. 이 묵상을 통해 우리는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그분을 따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요한복음 5장 30절 말씀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

예수님의 공생애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늘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다고 말씀합니다. 예루살렘은 십자가를 지기 위해 결심하고 올라가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누가복음 9장 51절은 예루살렘에 올라가기 위해 예수님께서 굳게 결심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위해 결심하는 그 순간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굳게 결심하셨습니다.

챔버스는 오늘 묵상에서 우리가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야망은 우리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은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챔버스가 사역하던 당시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리스도를 위한 결단’이나 ‘그리스도인이 되겠다는 결심’등이 유행합니다. 주의하지 않으면 이러한 결단을 들을 때 ‘참 귀하다’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무엇을 주의해야 하나요? 이러한 ‘결심’ 안에 우리의 야망이 숨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오늘 묵상에서 쉽게 이해하기 어렵지만 아주 중요한 문장이 하나 등장합니다. 진정으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란,

“우리가 의식적으로 하나님의 목적에 붙들리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의식 없이 하나님의 목적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의식한다는 것은 생각할 게 많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데 고려할 사항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직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집중하거나 헌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아무런 의식 없이”는 우리의 의지를 배제하고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거룩한 목적에 사로잡힌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표현인데, 가슴에 손을 얹고 양심적으로 지금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과 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진단해 보아야 합니다. 진정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의 권리를 포기하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의 야망을 감추고서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거창한 목표를 내걸고 있는가?

요한복음 15장 16절에서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다면,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2. 아버지의 뜻이 보이지 않을 때

이제 또 다른 문제가 다가옵니다. 처음에 아버지의 뜻대로 시작한 일을 끝까지 지속하지 못하는 것이죠. 사실 시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 그리고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것은 ‘지속성’입니다. 우리가 실패하는 이유에 대해 챔버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근시안적이라서 하나님의 목적이 원래의 목표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구분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일과 하나님이 강권하시는 일이 과연 일치하느냐 입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않으려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처음 부르심을 받고 그 일을 할 때에, 그러한 확신으로 시작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확신으로 시작한 우리가 길을 잃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강권하심과 뜻은 처음에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강권하시고 앞으로도 인도하실 하나님께 집중하지 않는다면, 슬그머니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의 방향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우리 교회 묵상 팀과 함께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나눌 때, 한 집사님이 이런 글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문제요, 고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뜻’에 관해 우리는 하나님과 ‘동상이몽’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부딪치는 크고 작은 일에 대해 늘 하나님의 뜻을 묻고 구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분별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큰 그림을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근시안적이고 단편적인, 아주 작은 일에 매달리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하나님은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말씀을 하시는데, 우리의 관심은 늘 지엽적인 것에 머물고 있지는 않은지. 당장 내가 구하고 원하는 것에 매여 1+1=2처럼 정답을 구하는 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묻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그려놓은 청사진에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수정하시면, 당황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주님과의 관계에 어려운 시간들을 지납니다. 한 발자국 앞 밖에 볼 수 없기에, 우리의 전 인생을 놓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하는, 참 연약한 인생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지원 집사)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보이지 않을 때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강권과 비교하면 바닥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말의 뜻을 잘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일에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인도하실 하나님의 뜻을 향해 우리의 눈을 들고 마음을 열고 살아가야 합니다.

챔버스는 오늘 묵상에서 누가복음 18장 31절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향하셨던 것을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제자들에게 그러했듯이, 우리도 그렇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금까지 한 일보다 훨씬 더 크고 깊은 길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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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호
주님 저는 하나님을 향한 비젼이 무엇일까요? 주님 알게하소서 재현이를 독립시켜야 할까요?
2021.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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