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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충성을 향한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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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수 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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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우리의 의지가 흔들릴 때, 처음 은혜를 경험했던 때를 기억한다면 좋은 격려가 될 것입니다.
  • 인생에서 무언가 중요한 결정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그 문제가 ‘하나님과 나’ 사이의 문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묵상질문

중요한 ‘의지적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 누구와 의논합니까? 우리가 의논하는 대상이 누구인지가 우리의 신앙 상태를 말해줍니다.


묵상 레시피

◆갈라디아서 1:11-24+ 여호수아 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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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1:11-24)
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13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18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19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20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
21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22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는 알지 못하고
23 다만 우리를 박해하던 자가 전에 멸하려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24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여호수아 24:15)
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 바울의 복음은 누구로부터 받은 것입니까? (11-12절)
  • 바울은 이방선교를 위한 부르심에 어떻게 결단했습니까? (15-17절)
  • 만일 가족과 주변인들에게 조언을 받았다면 어땠을까요? (13-14절)
  • 하나님 앞에 바울이 홀로 결단할 수 있던 경험은 무엇입니까? (15-16절)
  • 바울은 아라비아와 다메섹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요? (17절, 갈2:1)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12절)
바울의 적대자들은 바울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의 복음이 원 사도들의 복음과 다른 것처럼 공격했다.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의 기원을 명확히 밝힌다. 바울은 사람으로부터 혹은 교육기관이나 과정을 통해 복음을 습득한 것이 아니다. 그는 다메섹 사건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으며 경험했다.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13절)
바울의 가족과 지인들 대부분은 바울이 ‘사울’이었을 때의 신앙과 신념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바울은 직접 예수님을 경험했지만 그들은 바울의 경험과 새로운 삶, 소명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바울은 ‘혈육’과 의논하지 않는다. 예루살렘에 올라가 사도들을 만나 자신의 사도권을 공고히 하거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려는 인간적인 시도도 뒤로한다. 그는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아라비아와 다메섹으로 돌아간다. 십 수 년 간(갈2:1) 하나님의 시간표와 훈련에 온전히 순종한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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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때를 기억하기

오늘 묵상에서 챔버스는 6월 6일에 다루었던 ‘의지’의 문제를 다시 언급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그 의지에 의해 우리는 결단하고 행동합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본문 여호수아 24장 15절은 아주 적절합니다. 이제 세상을 떠날 날을 앞에 둔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불러놓고 의지를 촉구하는 장면입니다.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의지에 따라 결정하고, 의지에 따라 행동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자신들이 책임지고 받을 것입니다. 오늘 묵상을 이런 첫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의지는 사람의 전 인격적인 행위입니다.”


챔버스가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있고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베푸시지만, 구원의 은혜를 사는 것은 우리 의지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셨지만, 거룩하게 만드시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순종의 의지를 가지고 살아갈 때 삶이 거룩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리의 비전을 주실 때 문제는 ‘그분이 무엇을 하실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입니다.”


우리의 의지로 무엇을 할까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믿으시나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의지를 통해 그 계획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챔버스는 아주 중요한 방법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그때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처음으로 만지셨던 때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구원의 은혜를 깨달았던 때, 우리가 처음으로 주님을 보았던 때, 진리를 깨달았던 때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모습은 어땠나요? 그 순간 우리는 참 쉽게 주님 앞에 권리를 양도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을 다시 소환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것을 제안하실 때, 그 순간을 떠올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의지가 새롭게 작동할 것입니다.


2. 의지적 선택

오늘 본문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는 말에 대해 그렇게 쉽게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인생이 걸린 문제이니 마음과 뜻을 다해 결정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결정하기 전까지는 어떤 것도 이루어지지 않은 ‘유보 혹은 정지’ 상태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뭔가를 결정하게 하실 때는 혈육과 의논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결정은 오로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주변 사람들과 성도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시기가 오면, 다른 사람들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거나 이 일에 그다지 상관없다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무언가 결정해야할 때가 온다면,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일이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다른 사람들은 우리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우리가 믿는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하든지 오로지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챔버스의 묵상 글을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주님께 고백하십시오. ‘제가 충성하겠습니다.’ 주 예수님께 충성을 선택하는 즉시 당신은 자신을 부인하게 될 것입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상의하지 말고 단지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십시오. ‘저는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제 뜻을 다해 충성하겠습니다.’ 동시에 그렇게 주께 충성하는 사람들을 귀히 여기십시오.”


일본 목회 경험이 있는 오대식 목사님의 설교 예화를 여러분에게 들려드립니다. ‘의지의 결단’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일본에서 목회하실 때 한 교회에서 설교를 하였는데, 예배 중에 남성 중창단의 특별 찬송 순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찬양하러 나온 세 명의 남자들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야쿠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큰 체구에다가 걸어 나오는 자세나, 팔과 목에 있는 문신들이 보기에도 위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찬양을 부르기 시작하자 너무나 아름다운 그들의 목소리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찬양을 부른 후에 그 중의 한 사람이 짧은 간증을 했습니다.

 “우리에게 세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다 야쿠자였다는 사실입니다. 또 하나는 아내가 다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하면서 세 사람이 다 왼손을 앞으로 펼쳤는데 모두들 깜짝 놀랐습니다.

모두 새끼손가락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줄 그 자리에 있는 일본 사람들은 너무나 잘 알기에 모두들 숙연해졌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의 은혜를 알고 나니 더 이상 야쿠자 생활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자신들이 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쿠자 두목에게 찾아가서 조직을 떠나겠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두목이 농담으로 받고 믿어주지 않다가 결국 진심임을 알고 모든 조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 사실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앞에 있는 탁자에 칼을 꽂더랍니다. 그들은 그 칼로 자신들의 손가락을 자르고서야 조직에서 나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한 후에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기 위하여 무엇을 잘라내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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