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주보 QT MY 메뉴

타협하면 안 되나요?

행7:51-60

‘왜’ 그들은 스데반을 죽였을까요?   

정답은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들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행7:54). 그들은 마음의 찔림을 감추기 위한 과도한 반응을 했습니다. 부끄러움과 죄를 가리기 위한 인류의 보편적인 반응 중 하나가 ‘폭력’입니다. 그런가 하면, 군중심리를 이용해 집단화해서 죄의 책임을 분산시키려는 시도도 있습니다. 스데반을 죽인 그들은 누구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주장을 굽히지도 않았습니다. 즉, 성령을 거스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조상 때부터 하나님께서 보낸 선지자들을 박해하였으며. 오시기로 예언했던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잡아 죽이는 무서운 범죄를 저질렀습니다.(행7:52) 그들은 스데반의 말씀을 들을 때, 자신들의 마음의 찔림인 죄를 감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분노하였던 것입니다. 

스데반은 ‘꼭’ 그렇게 말씀을 전해야만 했을까요? 

이 질문의 답도 말씀에 있습니다. 성경은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행7:55) 라고 말합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성령의 다스림’ 가운데 살아갑니다. 성령의 다스림 가운데 있다는 명확한 증거 중 하나는 하늘을 우러러(행7:55) 보게 되는, 즉 ‘하늘을 바라보는 인생’ 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한 스데반에게는 하늘을 바라보는 의지적 행동이 뒤따랐던 것입니다. 스데반은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발견한 진정한 가치는 돌에 맞아 죽어가는 순간의 수치와 아픔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신 주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스데반은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주님을 바라봄으로 예수님이 살아왔던 동일한 방식으로 박해를 받고 순교의 자리까지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만일’ 스데반이 죽지 않았더라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스데반이 순교하는 장면을 보면서 성령께서 스데반을 순교의 자리에 이끌어 가신 이유가 무엇인지 알게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가 원하거나 기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는 교회를 사명 공동체로 만드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직접 개압하신 사건입니다.(행1:8,행8:1) 순교를 통해 하나님의 일인 복음전파의 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만일, 스데반이 죽지 않았다면, 복음의 역사가 더디어졌을 수도 있었고, 사도 바울이 등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데반의 죽음은 이방인을 위한 선교의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진 것입니다. 바울에게 스데반의 모습은 끝까지 믿음을 배신하지 않고 영혼을 하나님께 의탁하며 자신을 돌로 치는 무리들을 용서하는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 모습은 예수님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께 쉽게 거꾸러질 수 있게 했습니다. 곧,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복음전파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가장 크게 배우고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이 중요하다고 느낀 이유는 무엇인가요?


추천도서

『타협 없는 복음』
스티븐 로슨 저 (생명의 말씀사, 2018.03.30.)

닫기

구독설정

구독한 콘텐츠는 MY구독에서 한번에 볼 수 있어요.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