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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나의 의지와 하나님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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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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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우리의 의지와 하나님의 뜻이 일치하기 위해서는 성령님께 ‘순종’ 해야 합니다. 내 고집으로 성령님을 거스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묵상질문

당신의 양심은 선합니까? 당신의 의지는 늘 하나님을 향하고 있습니까? 내가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묵상 레시피

◆야고보서 1:13-18 + 빌립보서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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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1:13-18)
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빌립보서 2:12)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 야고보서는 사람이 받는 시험이 어디로부터 온다고 말합니까? (13-14절)
  • 미혹되고 죄를 짓고 사망에 이르는 과정은 무엇에 비유되고 있습니까? (15절)
  • 16절의 ‘형제들아 속지 말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13절)
  •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로부터 무엇이 옵니까? (17절)
  • 하나님은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아 무엇이 되게 하셨습니까? (18절)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14절)
인간은 ‘자기(헬,이디아스)’ ‘욕심(헬,에피투미아)’에 의해 시험을 받는다. ‘이디아스’는 인간의 본연성, 인간 본성을 나타낸다. ‘욕심’은 인격적 존재로 표현되고 인간을 미혹하고 유혹하는 하나의 세력이지만 인간의 자아와는 구별되는 존재다. 인간의 본성과 욕심은 별개의 존재인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디아스)은 가치중립적인 것이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15절)
욕심 자체로는 사망에 이르지 않는다. 욕심이 사람 안에 잉태되었을 때, 즉 잉태된 욕심이 죄가 되고 사망에 이르는 것이다. 사람이 유혹에 동의할 때 욕심이 잉태된다. 죄를 ‘낳다(헬, 아포쿠에이)’에 사용된 단어는 여성이 출산할 때 쓰인다. 욕심을 ‘잉태’하고 죄를 ‘낳고’ 그 죄가 장성하여 사망에 이르는 과정은 결코 우연히,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험과 죄의 근원, 책임이 하나님께 있다는 생각은 마귀의 속임이다(16절). 그 모든 책임은 유혹당하고 미혹당한 인간 자신에게 있다.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17절)
하나님의 속성은 빛, 선, 온전함이다. 그분은 변함도(헬, 파랄라게) 없고, 움직이는 그림자도(헬, 트로페스 아포스키아스마) 없다. 각 표현에 쓰인 헬라어들은 천체 운행과 관련된 용어다. 하나님은 그 천체들을 창조하신 분, 불변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창조된 천체들처럼 변화하거나 교체되지 않는다. 하나님께 시험과 죄로 인한 책임을 묻는 사람들에게 야고보서는 하나님이 어둠, 악, 불완전함, 변덕스러움, 변화들과는 전혀 관계없는 신뢰할 분임을 강조한다.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18절)
첫 열매는 구약의 제사용어로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 그분께 바쳐져야 한다(출23:16,19,34:16, 민18:18, 레27:26, 신14:26). 하나님이 ‘말씀’으로(예수의 이름으로) 성도들을 새롭게 창조한(세례를 행한) 이유는 모든 피조물의 첫 열매가 되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욕심, 죄, 사망의 자녀가 아니라 욕망에게 기회를 주지 않도록, 하나님에 대한 믿음,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신 것이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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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의 작동

오늘 묵상에서 챔버스는 아주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뜻은 하나님과 일치합니다. 그러나 당신의 육신 속에는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어떤 성향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몇 가지 개념을 설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 ‘양심’에 대한 것입니다. 양심은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결단을 할 수 있도록 ‘의지’를 일으킵니다. 여기서 문제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의 의지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만을 바라볼 때, 의지와 양심은 항상 하나님의 뜻과 일치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의지’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의지’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실 때부터 인간에게 있었던 아주 본질적인 요소입니다. 그러나 ‘죄’는 사람들 속에 찾아온 아주 나쁜 성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지는 죄보다 훨씬 본질적입니다. 그러므로 왜곡된 의지는 죄의 성향으로 나타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큰 선물 중에 하나인 ‘의지’를 우리가 축복으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의지를 잘못 사용하여 죄가 들어올 뿐 아니라, 심지어 그 의지를 주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C. 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자유 의지’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은 왜 사람들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을까요? 악을 가능케 하는 것도 자유 의지지만, 사랑이나 선이나 기쁨에 가치를 부여하는 유일한 것 또한 자유 의지이기 때문입니다. 자동기계―기계적으로 움직이는 피조물들―의 세계는 창조할 가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고등한 피조물들에게 주고자 하시는 행복은 사랑과 즐거움의 절정에서 자유로우면서도 자발적으로 하나님과 연합하며 이웃과 연합하는 데서 생겨나는 행복으로서, 거기에 비하면 지상에서 남녀가 나누는 가장 황홀한 사랑조차 물 탄 우유처럼 싱거울 것입니다. 바로 이런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인간은 자유로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한 의지를 가지면 죄의 문제를 이길 수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 안에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의지가 힘을 가집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 말씀을 보세요.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우리 안에서 선한 의지가 작동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으니,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어 가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 스스로 구원을 이루라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완성하신 완전한 구속 위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강한 믿음을 바탕으로 주께서 이루신 일을 우리의 삶 속에서 이루어가라는 말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의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것입니다. 의지가 하나님께 향하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우리의 자연스러운 선택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합니다. 자연스럽게 호흡하는 것처럼 하나님과 연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선한 의지를 방해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고집’입니다.

“고집은 우리 속에 뭉쳐 있는 장애물로서 ‘깨달음’을 거부하는 어리석은 성향입니다. 이를 제거하는 방법은 오직 다이너마이트로 터뜨리는 것, 곧 성령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고집’은 우리의 왜곡된 의지 입니다. 때로 우리는 이 잘못된 의지를 ‘신념’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기도 합니다. 프리드리히 니체도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신념을 가진 사람이 가장 무섭다. 신념을 가진 사람은 진실을 알 생각이 없다. 강한 신념이야말로 거짓보다 더 위험한 진리의 적이다. 신념은 나를 가두는 감옥이다.”


결국 선한 의지는 우리의 고집과 싸우게 되어 있습니다. 챔버스는 성령님께 순종하는 것이 이 싸움에서 승리하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순종할 때, 우리는 마치 다이너마이트로 터뜨리는 것과 같은 능력을 경험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런 소원이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갈 수 있을까? 우리 속에 스며드는 ‘죄’라는 놈은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의지를 방해하고 우리를 고집스럽게 만드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죄를 이기는 방법은 성령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할 때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과 하나 되어 자연스럽게 호흡합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고백할 것입니다.


존 웨슬리 목사님이 “우리 자신의 구원을 성취함에 있어서”라는 설교에서 ‘의지의 사용’에 대해 말하는데, 오늘 묵상에 도움이 될 듯합니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합시다. 다소 뜻은 다르지만 우리들의 은혜로우신 주님과 함께 말합시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서 지금도 일하고 계심을 생각하고 선을 행하다가 결코 낙심하지 맙시다. 여러분보다 앞서 행하시고 여러분과 동행하시며 뒤따르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인하여 “믿음의 역사와 소망의 인내와 사랑의 수고”를 계속합시다. “주의 일을 함에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풍성하도록”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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