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주보 QT MY 메뉴
  • Home
  • >
  • QT
  • >
  • 하나님을 최고로!
이전으로
2021년 05월 31일 월요일
다음으로
이전으로
2021년 05월 31일 월요일
다음으로
주님은 나의 최고봉

하나님을 최고로!

통독표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요 2:24-25
video poster

한 줄 노트

  • 하나님을 최고로 신뢰하면 사람들에게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 하나님의 필요를 최우선에 두는 사람이 바로 ‘제자’입니다.
  • 하나님이 우리를 믿어주셨으니 우리는 그 믿음에 배신하지 않도록 살아야 합니다.

묵상질문

당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필요가 보입니까? 그 필요를 채우는 사람이 되십시오.


묵상 레시피

◆사무엘상 16:1-7 + 요한복음 2:24-25
펼치기/접기

(사무엘상 16:1-7)
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
2 사무엘이 이르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3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네게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
4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이르되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5 이르되 평강을 위함이니라 내가 여호와께 제사하러 왔으니 스스로 성결하게 하고 와서 나와 함께 제사하자 하고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성결하게 하고 제사에 청하니라
6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요한복음 2:24-25)
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

  • 사울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어떠했습니까? (1절)
  • 사울에 대한 사무엘의 감정은 어떠했습니까? (1절)
  •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무엇을 명령하셨습니까? (1,3절)
  • 이 명령을 들은 사무엘의 마음은 어떠했습니까? (2절)
  • 엘리압을 본 사무엘의 감정은 어떠했습니까? (6절)
  • 하나님의 뜻은 어떠했습니까? (7절)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1절)
원문에는 “‘내가’ 사울을 버렸는데 ‘너는’ 슬퍼하느냐”는 인칭 대명사의 대구로 하나님의 뜻과 사무엘의 행동이 반대임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슬퍼한다(히, 미트아벨)’는 단어는 에스라가 포로로 잡혀간 자들의 죄를 슬퍼할 때 쓰였다(스 10:6). 이는 ‘죽은 자를 애도’하는 깊은 슬픔을 나타내는데 사울과 이스라엘의 운명에 대해 심히 괴로워 한 사무엘의 탄식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감정을 중단하고 하나님의 일을 행하라고 명하신다.

한 왕을 보았느니라(1절)
‘보다((히, 라이티)’는 바라보는 동작 뿐 아니라 선택, 준비에 이르는 종합적인 의미를 지닌다. 하나님은 이미 선택하고 준비 하셨다. 한글 성경에는 ‘나를 위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리’가 생략되어 있다. 하나님은 ‘그들을’ 위하여 사울을 왕으로 세우셨지만(8:22), 이제 ‘나를 위하여’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다.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7절)
‘중심(히, 레바브)’은 육체적인 것과 구별된 인간의 내부, 비물질적 요소 모두를 가리키는 단어다. 즉, 사람의 전인격을 나타낸다. 마음은 인간을 대표하며 또한 인간 행위의 원천이기도 하다. 사람은 드러난 것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이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전인격적 측면을 감찰하신다.


◆ 묵상도움글
펼치기/접기

1. 하나님을 최고로 신뢰하라!

오늘 묵상은 챔버스의 생각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그는 평소에도 최고의 하나님께 자신의 최선을 드리기로 결심했습니다. 다른 묵상과 달리 오늘은 명확하게 세 개의 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을 최고로 신뢰해야 할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 악 감정을 품거나 그들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 때문에 절망할 일도 없습니다.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오직 당신과 타인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신뢰하지 마십시오.”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사람을 신뢰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믿었던 사람에게 느끼는 실망감, 그러한 감정은 자연스럽게 우리를 ‘악한 감정’으로 인도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하나님만을 신뢰할 때는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타인에게도 있음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 그러했듯이 타인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니, 그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옳은 것’을 요구할 필요도 없어집니다. 신기하게도 하나님을 최고로 신뢰하는 것이 인간관계를 푸는 열쇠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면 사람에게 실망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2. 하나님의 필요를 최우선에 두라!

히브리서 10장 9절을 보면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순종은 전적으로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도 무언가 할 일을 찾아야 한다면, 그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고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배우고 훈련받는 주된 목적도 하나님의 필요를 채우기 위함입니다. 일단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필요가 채워지면 주께서는 주의 필요가 채워질 다른 곳으로 우리의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필요를 최우선에 둘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훈련받고 성장합니다. 하나님의 필요를 자각하고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은 자연스럽게 제자의 삶을 삽니다.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 목사님은 [제자입니까]에서 제자의 삶이 필요한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왜 우리의 계획은 번번이 실패하고 마는가? 그것은 어린아이들에게 그 일을 맡기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에게 의존해서는 일을 이룰 수 없다. 그들은 맡은 일을 꼭 이뤄 낼 것인 양 “제가 하지요, 적절히 조치하겠습니다. 책임지고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중간에서 흐지부지하고 만다. …

바울은 말하기를, 궁극적인 목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이라고 했다. 성부께서는 모든 사람이 예수님만큼 자라기를 원하신다. 목사들이 먼저 성숙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양들에게 동일한 성장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필요를 아는 것이야말로 순종하며 살기를 꿈꾸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필요를 아는 사람만이 그분의 필요를 따라서 인도하심을 경험하며 다음 단계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필요를 아는 자들은 끝까지 하나님께 붙들린바 될 테니 말입니다.


3. 하나님의 믿음을 먼저 보라!

세 번째 주제에서 명확한 개념을 잡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God’s trust(하나님의 믿음)”이 정확히 무슨 의미일까요?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의미로 말하는 ‘Trust God’과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믿어주신다는 사실을 최우선에 두라는 말입니다. 챔버스는 “하나님의 믿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개인적인 삶이 하나의 ‘베들레헴’이 되기를 기대하십니다.”


베들레헴은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입니다. 우리 자신이 ‘베들레헴’이 된다는 말은 아기 예수께서 우리 안에서 태어나고 자라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믿음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믿음을 배신하지 않도록, 그것을 최우선에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연적 삶이 아기 예수로 말미암아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바로 이 믿음을 우리 삶에 최우선으로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가지고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그러한 하나님의 믿음을 배신하지 않는 것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육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기독교의 진리]에서 이것을 아주 명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는 내가 어떤 복을 누리며 사는지를 보여 주는 본이 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진 거룩한 생명을 삶으로 살아내기 위함입니다. 그 생명이 나타날 때, 사람들은 우리의 선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로딩중...
0:00 0:00
닫기
1.0x
0.5 1.0 1.2 1.5 2.0
닫기

구독설정

구독한 콘텐츠는 MY구독에서 한번에 볼 수 있어요.

구독하기
통독 녹음을 해 보세요.
00 : 00 : 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