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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네, 그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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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눅 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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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주님을 따르는 것은 ‘상식’이 아닌 ‘순종’의 문제입니다..
  •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에게는 ‘모험’이 가장 확실한 선택입니다.

묵상질문

‘순종’ 앞에서 당신이 늘 머뭇거리는 지점은 어디인가요? 순종할 때 당신을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묵상 레시피

◆창세기 19:15-29절 + 누가복음 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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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9:15-29절)
15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이르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 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16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17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18 롯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
19 주의 종이 주께 은혜를 입었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에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20 보소서 저 성읍은 도망하기에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를 그 곳으로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읍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
21 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었은즉 네가 말하는 그 성읍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22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하였더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을 소알이라 불렀더라
23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24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25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27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28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
29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누가복음 9:61)
61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 천사들은 롯에게 무엇을 명령합니까? (15절)
  • 롯과 천사들은 각각 어떤 행동을 보입니까? (16절)
  • 천사들은 롯에게 다시 무엇을 명령합니까? (17절)
  • 롯은 어떻게 답했으며, 무엇을 부탁합니까? (18-20절)
  • 롯의 아내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26절)
  • 롯은(아내는/ 나는) 왜 지체하며 온전히 순종하지 못했나요?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18절)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롯은 자신만의 대안을 제시한다. 이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의심하는 태도이다. 상황은 이미 긴박하며 롯과 가족을 구출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와 명령도 명확했다. 그러나 롯은 지체했으며(15절, 히, 마하흐), ‘절대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롯은 재앙을 만날까 두려워한다. 다가오는 심판이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음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다.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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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각해보기

챔버스는 오늘 묵상에서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상식에 맞지 않는 일을 하라고 명하실 때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가 순종하기 힘든 상황은 늘 ‘상식’과 맞지 않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언가 말씀하실 때, 만약 우리의 상식에 맞지 않는다면 뒤로 물러서는 것이 옳을까요? 아니면 그럼에도 순종할까요? 1901년 챔버스가 결정적으로 하나님께 온전히 항복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 일로 인하여 챔버스는 깊이 변화됩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순종]에 보면 그 일 이후에 친구에게 편지를 썼던 내용이 있습니다.

네가 성령 세례에 대해 내가 그 자리까지 당장에 이르거나 쉽게 갔는지를 질문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 쉽지 않았어. 많은 친구들이 나를 추켜세우는 것을 즐기는 마음과 나의 교만은 오랫동안 나를 붙들고 있었지.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하고 제단 되시는 예수님께 나 자신을 제물로 드렸을 때, 이 모든 것이 시작되고 이루어진 거야 … 성령 세례는 절대로 ‘이것을 하라, 저것을 하라. 그러면 당신은 주님과 함께하게 될 것이다.’라는 식으로 되지 않고, ‘내가 너를 통하여 일할 수 있는 상태가 되라. 비우라.’는 식으로 이루어진다네. 즉, 손을 들어 항복을 선포하고 다 내려놓는 거야. 그러한 가운데 주님만 온전히 의지하는 것일세.


우리의 문제는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겠다고 매번 결심하면서 마지막 순간에 뒤로 물러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순종하며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면, 모든 것을 걸고 과감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한 결심을 가로막고 우리를 지배하는 어떤 물리적인 습관이 있다면, 우리는 그 습관을 깨뜨리기 위해 반복적으로 무언가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아주 나쁜 습관 중 하나가 바로 매번 주님이 원하는 일을 행하려고 일어나지만 꼭 마지막 순간에 뒤로 물러서는 것입니다. 이런 물음을 갖고 말이죠.

“‘네, 그렇지만… 만일 제가 하나님께 순종하면, 저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은 누가복음 9장 51절 말씀과 함께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로 굳게 결심하고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데,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사람들이 주님을 따르겠다고 말하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 길이 어떤 길인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상식에서는 그렇게 쉽게 따라갈 수 없는 길이죠. 어제의 말씀과도 연결이 되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무언가에 의문이 들 때,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챔버스에 의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판단하죠. 주님을 따르겠다며 왔던 사람들의 상식은 무엇인가요?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아버지도 장사해야 하고, 가족을 떠나야 하니 가족들과도 작별을 고해야 합니다. 이것이 모두 ‘상식’에 속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늘 여기에 ‘네, 그러나…’라는 말이 붙는 거죠. 이 말은 의무에 대한 소홀함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에는 가장 중요한 것을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선택의 순간에 올바른 순종을 할 수 있는 준비와 훈련이 되어 있냐는 것입니다.


2. 주님의 요구

앞선 질문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는 주를 믿는 자들에게 자연인이 스포츠 세계에서 보여주는 그러한 과감한 정신을 가지라고 요구하십니다.”


이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나요? 우리가 요즘 흔히 접하는 ‘익스트림 스포츠’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스포츠를 하다보면 위험에 맞닥뜨리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주저합니다. 진정한 선수는 그 순간 위험 앞에서 멈추지 않고, 그 두려움을 이길 때까지 시도하고 또 시도합니다. 스포츠도 그러하듯이, 우리가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면 모든 것을 걸고 과감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영적인 상태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식을 초월하는 상황에 직면할 때,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과감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이런 믿음을 가질 것입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은 [모험이 답이다]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왜 모험이 존재하는가? 우리가 무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래를 안다면 모험도 없을 것이다. 모험이 가능한 이유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곧 하나님은 모험을 하실 수 없다는 뜻이다. … 하나님은 전지하시므로 모험을 할 가능성조차 없으시다.


챔버스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의 울타리 안에, 우리 행동을 제한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존 파이퍼는 모험이라는 개념이 우리에게만 존재하며,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는 모험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을 상식이라고 말하고, 모르는 것을 모험이라고 말한다면 모르는 것이 훨씬 더 크고 넓은 영역입니다. 그 미지의 영역으로 발을 옮기는 것이 우리에게는 모험일 수 있지만 하나님께는 너무나 확실하고 선한 길일뿐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상식보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더욱 확실합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주님을 믿고 따르는 것은 ‘우리의 상식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닙니다. 챔버스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모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면 주저하지 말고 받아들이십시오.”


모험의 순간이 오면 우리가 이방인처럼 행동하는지, 아니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지 증명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성품’을 믿고 과감하게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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