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벧후 1:8
한 줄 노트
- 거룩한 습관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을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한낱 우상에 불과합니다.
- 경건한 습관의 본래 목적인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속에 있을 때, 습관을 숭배하지 않게 됩니다.
묵상질문
삶에서 나도 모르게 숭배하고 있는 습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묵상 레시피
(누가복음10:25—37)
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베드로후서 1:8)
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 율법사는 예수님께 어떤 질문을 했습니까? (25절)
- 예수님은 어떤 답을 주셨습니까?(27절)
- 율법사는 다시 어떤 질문을 던집니까? (29절)
- 예수님은 비유를 말씀하시고 어떤 질문을 하십니까?(36절)
- 율법사에게 어떤 권면을 하십니까? (37절)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25절)
예수님은 영생을 개인적 영역으로 국한하지 않으신다. ‘나’뿐 아니라 ‘우리’의 범주에서, ‘율법’뿐 아니라 율법이 본래 지향하는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만 참 영생을 이해하고 누릴 수 있다. 예수님은 당시 극에 달했던 인종차별, 지역감정과 갈등,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 습관적 종교생활을 언급하며 질문에 답하신다.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29절)
율법사는 모세율법을 연구하는 전문가다. 그는 ‘율법’으로 예수님을 ‘시험’하려 했다(25절). 적대적인 율법사에게 예수님은 율법의 해석과 정신 즉, ‘사랑’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율법사는 계속해서 사랑의 ‘범위’에 대해 묻는다. 이론적인 논쟁으로 관심을 돌리며 사랑의 ‘대상’을 확정 짓는 것에 관심한다.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대상을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은 오히려 이웃(대상)을 찾아낸다.
제사장(31절), 레위인(32절)
제사장은 유대교를 대표하는 성직자로 누구보다 계명을 잘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었다(레19:18). 제사장은 강도 만난 자를 피했다. 성전 임무를 위해서였다고 해석되기도 하지만 그는 길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즉, 임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레위인 역시도 그를 피하여 지나갔다. 두 사람은 율법의 ‘정신’ 이전에 율법의 ‘의무’도 지키지 않았다.
1. 습관을 숭배한다면
5월 10일부터 16일까지 일곱 번에 걸쳐서 ‘그리스도인의 습관’에 대한 묵상 글을 나눌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오늘부터 5번의 묵상은 모두 영어 제목에 ‘습관’(habit)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 묵상에서 챔버스는 습관에 대한 아주 중요한 신앙의 태도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좋은 습관’이 우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원문의 제목이 아주 좋습니다. “Make a habit of having no habits” ‘습관을 가지지 않는 습관을 만들라’는 뜻입니다. 사실 이 제목 하나에 오늘 챔버스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요점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작은 습관이 우상이 되는 것을 늘 경계해야 합니다.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거나 성경을 읽는 습관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챔버스의 말입니다.
“경건 습관의 본래 목적인 하나님과의 교제 대신에 서서히 습관 자체를 예배하기 시작하면서 결국 습관이 우상이 됩니다. 이때 하늘 아버지께서 얼마나 분노하실지 주의하십시오. ‘하나님, 지금은 기도하고 있으니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어요. 이 시간은 하나님을 위해 정한 시간이랍니다.’”
이렇게 말할 때, 우리는 경건 습관을 행하고 있지만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습관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 우상 숭배가 됩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처럼 습관을 가졌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단계까지 훈련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좋은 습관이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지난 해 [텅 빈 경건]이라는 책을 쓰면서 생각했던 것이 있습니다. 규칙을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그 규칙이 사람을 선하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법을 만들고 법으로 규제하려는 방법이 때로는 삶을 더 고달프게 만들기도 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그랬습니다. 이들은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기 위해 사소하고 세분화된 규정과 전통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율법을 만든 이유와 그것을 지키는 근본정신에는 무관심한 자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텅 빈 경건]에서 소개한 예화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목사님이 교회에 새로 부임해서 새벽 예배를 인도하는데 이해할 수 없는 전통이 있었답니다. 늘 반주자가 선택한 곡을 불러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왜 예배 시간에 설교자가 찬송을 선택하지 못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교인들이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전통”이라고 말했답니다. 예전에 반주자가 없어서 실력이 좀 부족한 분에게 부탁했는데, 그분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담임 목사님이 그분이 연습한 곡만 불렀다는 겁니다. 현재 반주자는 분명 실력이 있습니다. 더 이상 그 전통을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그때 그 선한 의도로 반주자를 배려했던 마음은 사라져 버리고, 꼭 지켜야 하는 전통주의의 율법만 남은 것입니다. 반주자를 배려하는 마음에 만든 규칙이 그 마음은 사라지고 율법으로 남은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 만든 작은 습관이 그 마음은 사라지고 우상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오래 전에 읽었던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 목사님의 책 [기도하십니까?]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었습니다. "기도에 대한 부담감은 기도를 더 어렵게 만듭니다." 하나님께 기도해야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기도는 우리에게 지루한 노동이 될 수 있습니다. 결심해야만 기도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 있지 않다는 말이겠지요. 물론 결심을 통해 깊은 교제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현재 상태는 불완전하다는 말입니다. 무서운 것은 우리가 결심한 거룩한 습관이 정작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가 좋은 예입니다.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지 못한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외면한 이유가 거룩한 습관 때문은 아닐까요?
2. 습관을 숭배하지 않으려면
오늘 묵상을 통해 챔버스는 좋은 습관을 예배의 대상으로 삼지 않으면서도, 잘 가꾸어 나가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늘 생각해야 할 문장입니다.
“만일 당신이 자신의 거룩을 의식한다면, 이는 당신에게 부족함이 있고 하나님과 거리가 있으며 그분과 진실한 관계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늘 우리에게 가장 좋은 모범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셨던 초자연적인 삶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주님은 어디에서나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가 되어 평안했습니다. 하나님과 평안한 관계 속에서 하는 행동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만일 평안하지 않다면, 하나님을 우리 안에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A. W. 토저는 [습관적 신앙에서 벗어나라]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습관적인 신앙생활로부터 어떻게 탈출합니까? 하나님께 여러분 자신을 송두리째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온전히 맡김으로써 습관적인 상태에서 벗어납니다. 여러분의 모든 삶을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하십시오. 그러고 나서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의 감미로운 매력을 알도록 노력하십시오.
우리가 거룩한 습관을 행할 때,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 상태가 될 때까지 훈련해야 합니다. 굳이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행하는 습관이 될 때, 우리는 더 이상 습관을 예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