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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하나님을 최고로 두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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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고후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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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오직 순종만이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 인생의 최고의 위치에 두었다는 것을 명백히 증명합니다.

묵상질문

당신에게는 하나님을 최고의 위치에 두기 위한 인생의 좌우명 혹은 모토가 있습니까?


묵상 레시피

◆마태복음 14:13-21 + 고린도후서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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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4:13-21)
13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
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17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18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2)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고린도후서 7:1)
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 언제 어디에서 어떤 상황이 발생했습니까? (13-15절)
  • 제자들은 예수님께 어떤 요청을 하였습니까? (15절)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16절)
  • 제자들은 각각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17절, 요6:5-8절 참고)
  • 만약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고, 어떤 결과가 나타났습니까? (18-21절)
    나는 들음과 순종의 과정 모두를 주님과 함께하고 있습니까?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14절)
‘불쌍히 여기다’라는 헬라어 단어는 복음서에만 나오며, 동사 형태로는 예수님께만 사용되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무리의 아픔에 공감하셨다. 예수님은 무리를 위해 무언가를 하실 것이며, 하실 수 있는 분이다. 당시에는 가르침을 받는 자가 가르치는 이를 대접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가르침을 주실 뿐 아니라 먹을 양식까지 공급하고자 하신다(16절).

이곳은 빈들이요… 저물었으니…먹을 것을 사먹게 하소서(15절)
제자들의 요청은 매우 상식적인 것이었다. 무리에 대한 인간적인 배려가 엿보이기까지 한다.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의심이나 불신앙도 아니다. 이 일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겪게 되는 현실적인 일이다.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요 6:6)
예수님은 말씀하실 뿐 아니라 그 방법과 결과도 알고 계신다. 제자들은 주님의 명령을 들었다. 그러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각각 자신의 방법을 강구했다(요6:7-8).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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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를 이루는 과정

오늘 묵상의 첫 문장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정당하게 요청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람 편에서만 그렇습니다. 당신이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본다면 주님의 요구 사항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제가 이해하는 한도 내에서 이 묵상 글을 나눠볼까요?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모두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해 주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말들이 인간 편에서는 맞는 것 같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이 하나님의 약속일까요? 온전히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기 시작할 때,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들이 이루어질 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오류가 드러나죠.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요구하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약속하셨어!’라고 주장하는 것 말입니다.


이제 중요한 관점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우리가 아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후서 7장 1절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 자신이 부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임을 안다면, 우리의 몸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빛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삶이 됩니다.


이것을 챔버스는 ‘성화’라고 말합니다. 조금 더 부연해 설명한다면 우리의 자연적 본성(natural life)을 영적인 삶(spiritual life)으로 바꾸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오로지 ‘순종’을 통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순종하기로 마음을 먹으면 하나님께서는 친히 간섭하셔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사소한 일 가운데서도 인도하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간섭이 우리에게서 일어날 때는 혈과 육에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정결케 함으로 매일 주님과 동행하도록 해야 합니다.


자신의 소원을 말하는 것 같지만, 실상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들이 우리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성화’입니다. 그러므로 성화되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영적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나의 할 일은 주님을 향한 순종을 통해 자연적인 삶을 영적인 삶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적용해 보면 어떨까요? 우리 삶에 필수적인 요소이자 치명적인 유혹이 되기도 하는 ‘물질’에 관한 태도 말입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요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요구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것인지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죠.


챔버스의 전기를 보면서 제가 처음 목회를 나갔던 때가 생각이 났습니다. 처음 시골로 목회를 나갔던 때 돌아가신 아버님이 하셨던 말씀 때문입니다. “목회자는 모래 바닥에 코를 처박고 죽어도 교인들에게 돈 없다는 이야기 하는 것 아니다. 그게 목회자의 자존심이다!” 그래서 시골에서 목회 할 때도,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에도 사람들에게 돈 없다는 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같이 공부하던 목사님 중에 한 분이 그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김 목사님은 한 번도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늘 풍족한 생활을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나서 생각해 보니, 저는 참 풍족한 삶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사는 것보다 더 풍족한 삶이 있을까요?


챔버스와 비디는 늘 긍정적이었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일에 완전히 의지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나 일의 경중이 챔버스의 사역에 장애가 되지 않았던 것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전혀 부족함이 없는 사람처럼 생각을 했지만, 사실 챔버스에게는 일정한 수입원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삶이, 우리가 하나님께 요구하는 약속과 소원을 다스릴 때 거룩함을 이루는 삶의 여정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나의 육신과 영혼이 모두 하나님의 속성과 완전한 조화를 이룰 때까지 영과 육의 온갖 더러운 것으로부터 자신을 깨끗케 해야 합니다.”


또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은 ‘거룩을 이루는 것’은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순종의 과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일어남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생각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과 조화를 이루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거룩하지 못한 우리의 자아를 깨끗케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깨끗케 하는 이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이 세상에서 당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셨던 그리스도의 마음이 우리 속에도 있는지 점검하는 것입니다. 공생애를 지내시는 동안 예수님의 가장 간절한 기도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자신을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삶의 최고 관심을 ‘하나님과의 관계’에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리 삶에서 최고로 중요한 것이 될 때, 나머지 사소한 것들을 버릴 수 있습니다. 답은 하나님을 정말로 우리 인생의 최고의 위치에 놓는 것입니다. 챔버스의 가지고 있었던 신앙의 정수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온전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창세기]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삶에서는 좋은 자리에서 더 나은 자리로 나아가고 더 나은 자리에서 최선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영적인 삶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대상은 오직 한 분이시다. 그분은 바로 최선이신 하나님 자신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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