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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말씀과 하나가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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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딤후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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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 하나님은 우리를 메시지를 전하는 통로가 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메시지 자체가 되라고 부르셨습니다.
  • 당신이 말씀을 전하기 전에, 그 말씀이 당신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묵상질문

오늘 우리는 무엇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묵상 레시피

◆야고보서 1:21-27 + 디모데후서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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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1:21-27)
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디모데후서 4:2)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 그리스도인들은 세례를 통해 어떤 삶에 들어섰습니까? (21절)
  • 심어진 말씀을 참으로 받아들였다면 무엇으로 나타나게 됩니까? (22절)
  • 심어진 말씀의 다른 표현은 무엇입니까? (25절)
  •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23-24절, 용어설명 참고)
  • 우리가 받은 말씀과 율법, 온전한 경건은 무엇으로 나타납니까? (26-27절)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22절)
‘너희는 –이 되어야 한다.’는 구절 다음에
헬라어 ‘데(그러나)’가 쓰였다. 듣는 것과 행하는 것이 별개인 상황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본문은 말씀에 대한 태도를 3가지로 말한다. ➀ 말씀을 듣는 태도 ➁ 말씀을 받아들이는 태도
➂ 말씀을 행하는 태도. 참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3가지가 분리되지 않는다.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23절)
거울을 보면 더러운 부분이나 매만질 부분이 보인다. 거울을 보며 잘못된 부분을 다듬는 것이다. 말씀을 보면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볼 수 있게 된다. 즉, 하나님이 창조하셨던 피조세계와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되었던 인간의 처음 ‘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Imago Dei,창1:26-27). 거울로(말씀) 더럽고 매만질 부분을 본 사람은 당연히 다듬는 ‘행동’을 보이기 마련이다.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25절)
‘심어진 말씀’을 가리킨다(시18:8,19:7). 율법(헬, 노모스)과 말씀(헬, 로고스)이 동의어로 보인다. 성경 속에서 이 둘은 곧 ‘사랑’으로 귀결된다(마22:34-40, 막12:28-34, 눅10:25-28).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26절)
재갈은 짐승의 입에 물려 저지하거나 인도하기 위한 도구이다. 혀에 재갈을 물린다는 것은 형식적이고 상투적인 종교적 말만 반복하는 것을 그만하라는 의미이다.


짧은 기도

하나님 아버지,
진리 안에서 자유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진리가 주는 자유 속에서만 정녕 사랑할 수 있고
양보할 수 있고 기꺼이 질 수 있음을 알겠사오니
오직 자유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 바른 삶을 살아가는
기쁨을 누리게 도와주시고
더 이상 이중적인 삶 때문에 고통받고 갈등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게 도와주소서.
또한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날
후회 없이 떠나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도와주시고
바로 그 날
참 신앙을 살았던 우리의 삶 자체가
우리 자녀들에게 입혀 줄 가장 거룩한 옷,
가장 위대한 유산으로 남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재철_참된 자유인(목사, 저술가) 「사귐의 기도를 위한 기도선집」121

◆ 묵상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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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시지를 담는 그릇이 된다는 것

챔버스는 오늘 묵상에서 아주 중요한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구원의 통로’가 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 위해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메시지를 전하는 통로가 되는 것과 ‘메시지 자체’가 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 자신이 메시지가 되셨습니다. 그 분의 삶이 영생의 말씀이고 생명이 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도 ‘메시지를 담는 성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이 메시지를 담는 성찬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성찬에 참여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함께 주님의 살과 피를 나눈다는 것이니, 우리가 성찬이 되면 다른 이들이 우리를 통해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게 됩니다.)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타난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겠습니까?


우리가 흔히 ‘성찬에 참여한다’라는 말을 하는데, 이것은 십자가에 달려서 찢기신 살과 흘리신 피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시며, 주님의 살과 피를 우리의 몸속에 모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메시지를 담는 성찬이 될 때, 우리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 이 세상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의 생명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챔버스의 말입니다.

“그 삶이 ‘메시지를 담은 성찬’이 되려면 죄에 대한 책망으로 상한 마음이 되어야 하고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하며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부서져야 합니다.”


2. 그리고 메시지 자체가 된다는 것

오늘 묵상을 통해서도 끊임없이 챔버스가 말했던 것을 확인하게 되는데, 구원을 받는 것과 사명자로 사는 것의 차이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은혜를 간증(testimony)하는 것과, 구원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preach)는 엄연히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구별이 혹시라도 강단에서 설교하는 목회자들에게 국한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모두를 말씀을 전하는 ‘증인’으로 부르셨으니 말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가 된다는 것은,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말씀의 증인이 되어 모든 힘을 쏟기로 결심한다는 것입니다. 성령강림절 이전의 제자들이 주님을 믿어 구원을 받았을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아직 증인이 아니었습니다.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자 이들은 지금까지 자신이 원하던 삶에서 벗어나 주를 위해 쓰임 받도록 다듬어진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아주 중요한 점인데요.

“성령 강림은 제자들에게 뭔가를 더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외쳤던 메시지가 그들 자신에게 성육신 하게 된 사건입니다.”


오늘 묵상의 핵심이 여기에 있습니다. 성령강림을 통해 제자들은 자신이 전하는 말씀과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위에 오셨던 예수님의 ‘성육’ (incarnation)이 제자들에게서도 일어난 것입니다. 이제는 말씀을 전하는 객체가 아니라, 그 말씀을 전하는 자가 ‘메시지’ 자체가 된 것입니다. 이 때, 주님께서 말씀하신 ‘너희가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요즘 흔히 쓰는 말 중에 ‘유체이탈화법’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분명히 옳은 말을 하고 필요한 말을 하는데,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다는 듯이 말하는 것, 즉 ‘영혼 없는’ 말을 일컫는 것이죠. 우리 크리스천들이 분명히 복음을 말하지만, 복음처럼 살지 못하면 소위 말하는 유체이탈화법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과 하나 되는 증인이 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말하는 것을 통해 아주 자유롭게 말씀하게 됩니다. 이미 우리를 자유케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다른 사람의 영혼을 자유케 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전하는 말씀은 먼저 우리 안에서 적용되고 역사할 때, 우리가 전하는 말씀이 다른 사람들 안에서도 역사하는 능력이 됩니다. 이것이 ‘증인이 된다’는 것의 참다운 의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디모데후서 4장 2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는 의미가 그것입니다. 말씀과 아무 상관없이 살아가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허공에 흩어지는 메아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과 하나 된 우리가 전하는 말은 능력이 되어 사람을 변화시키는 기적을 만들어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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