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갈 2:20
한 줄 노트
- 거듭난다는 것은 우리의 선행이나 노력, 정직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지독한 우리의 죄성을 주님 앞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 거듭난 자들이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하는 핵심 단어는 ‘포기’와 ‘양도’입니다.
묵상질문
주님 앞에서 당신은 무엇을 제거하고, 무엇을 꺾으시겠습니까?
묵상 레시피
(로마서 6:1-23)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10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의의 종
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갈라디아서 2:20)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세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3-5절)
- 죽으심과 합하여 함께 장사되었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6-7,12절)
- 그리스도와 함께 살았으며 하나님께 대해 살아 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8-10,13-14절)
- 죽으심과 생명에 연합하여 나의 신분은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16,17-18절)
- 이전의 삶은 어떤 삶이었습니까? (19-21절)
- 이제 나는 어떤 삶을 살게 됩니까? (19,22-23절)
우리에게는 여전히 본능과 욕구가 있지만 주님으로 인해 더 이상 그것의 종노릇 하지 않게 됩니다.
세례를 받음으로(4절)
본문의 ‘세례’는 침수를 배경으로 한다. 물에 들어가 푹 잠긴 상태는 ‘그의 죽으심과 합한’ 상태로, 물에서 나올 때에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을 연상하게 된다.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4절)
‘행하다’는 말은 ‘걷는다.’는 의미이다. 당시 사람들은 삶을 ‘길’, ‘여정’으로 생각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걸어야 할 삶의 여정, 삶의 기준으로 ‘새 생명’을 말한다. ‘새 생명’의 방점은 ‘새로움’에 있다. 세례 이전과 이후의 삶,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삶 이전과 이후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이다. 그리스도의 생명과 연합한 ‘지속적인 생명의 갱신’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누리고 향유할 참된 삶의 혜택이다.
몸의 사욕(12절)
성욕, 식욕 등의 신체적 본능의 욕구 및 지적, 정서적, 심리적, 사회적 제반
욕구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흐를 때 생기는 무절제, 탐욕, 집착 등의 모든 현상을 말한다.
죄의 삯, 하나님의 은사(23절)
죄는 군인에게 규정에 따라 급여를 주듯 율법의 규정에 따라 지은 죄에 대한 마땅한 대가를 치르게 한다. 죄의 마땅한 대가는 사망이므로, 급여를 빌미로 고용한 사람을 조정하려는 악덕 고용주처럼 죽음을 내세워 왕 노릇 하려 한다. 은사(헬, 카리스마)는 다양한 지체의 기능을 나타내는 단어라기보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간에게 허락된 구원의 선물 전체를 가리키는 용어로 쓰였다.
짧은 기도
제가 제 자신을 경건하다고, 주님의 종이라고 여기는 이유는
제 삶이나 업적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제게 자비를 베푸시겠다고 약속하셨고,
또 그렇게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거룩해지는 것은 그분 안에서 그분을 통해서 되는 일입니다…
주 하나님, … 제가 이제 거룩하고 당신의 종으로서 합당하다는 것을 믿습니다.
제 자신의 공로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오직 저의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것을 해결하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영원한 주님께 찬양 드립니다.
마르틴 루터_오직 주의 은혜로 중에서 (1483-1546, 종교개혁자)「사귐의 기도를 위한 기도 선집」57
1. 진정한 거듭남
오늘 말씀은 1월 15일에 나누었던 ‘당신에게는 당신의 무덤이 있습니까?’라는 묵상과 연관성이 있습니다. 이 물음은 챔버스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빳빳하게 살아 있었던 ‘자만심’의 문제를 해결하는 단서가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진정한 거듭남에 대한 챔버스의 입장은 단호합니다.
“죄를 멀리할 뿐만 아니라 사물을 보는 전반적인 견해가 바뀔 때까지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언어로 말한다면, ‘세계관의 변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장 정직하게 우리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십자가에 죽지 않는 한 불가능한 것이죠. 거듭난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위선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거듭남의 단계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드러내야하는 것은 우리의 선행이나 정직 노력과 같은 것들이 아니라 ‘지독한 우리의 죄성’입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가져가시고 ‘완전한 의’로 바꿔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의’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께 쓸모 있는 존재라고 착각했던 위선이 제거됩니다.
2. 거듭난 후에는
오늘 묵상은 정확히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서 보아야 합니다. 전반부에서 진정한 거듭남의 의미에 대하여 설명했다면, 후반부에서는 그 거듭남 이후에 계속해서 우리의 삶에서 ‘제거’되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성령님께서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들에게 제거해야 할 것을 보여주실 때, 거듭난 우리들은 자신에 대한 ‘주장과 권한’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챔버스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을 포기할 의사가 있습니까?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오직 주 예수님의 죽음과 하나 되기 위해 내려놓을 수 있습니까?”
이러한 포기는 참 아프고 힘든 과정입니다. 자신을 내어 놓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는 죽음의 고통을 동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 ‘거듭남’의 체험이 있다면, 모두가 이 과정을 지나갔을 것입니다. 고통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챔버스의 글을 인용합니다.
“주께서 나를 보시는 관점으로 나 자신을 보게 될 때 우리에게 충격을 주는 것은 내 육체의 징그러운 죄악들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께 대항하는 무서운 교만입니다.”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깊이 묵상 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죄 보다 더 무서운 것이 ‘교만’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런 생각은 어떨까요? 죄가 단지 자신의 육신의 소욕에 굴복하여 행하는 것이라면, ‘교만’은 적극적으로 그리스도께 대항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거듭난 우리들에게 이 사실이 보이기 시작할 때 무척 고통스러운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 고통을 챔버스는 ‘부끄러움’ ‘공포’ ‘처절한 비참’이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돌아가신 저희 아버님은 군목으로 사역하시던 때, 새롭게 거듭남의 체험을 하셨습니다. 그 당시 취미로 바둑과 낚시를 즐겼는데, 그게 그렇게 하나님께 죄송하고 교인들에게 부끄러웠답니다. 그래서 낚싯대를 꺾고 바둑판을 쪼개버리셨다는 이야기를 종종하셨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항하는 교만과 게으름은 그렇게 크거나 멀리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묵상의 제목이 ‘제거된 생명’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완전히 우리의 옛 자아가 제거되어 죽는 것입니다. 여기에 복음의 신비가 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을 때, 완전하게 주와 함께 다시 새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새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완전하게 변화시킬 것이라는 말입니다. 더 이상 교만하게 주님께 대항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합당한 자들로 바꾸어 주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우리가 완전히 죽기를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