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고후 6:4
한 줄 노트
- 성육신의 본질은 우리에게 종으로 찾아오신 주님으로 인해 우리도 기꺼이 종이 되어 섬기는 것입니다.
- 더 이상의 비전과 소망이 보이지 않을 때,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은혜 주시는 하나님께 시선을 두어야 합니다.
묵상질문
지금 당신에게 가장 하찮게 느껴지는 일은 무엇입니까? 혹시 그것들을 회피하면서 주님의 성육신에 참여할 기회를 잃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묵상 레시피
(고린도전서 1:18-31)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6:4)
4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 십자가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은 무엇입니까? (18절)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조용히 묵상해 보십시오. - 십자가는 어떤 평가를 받았으며, 무엇을 상징했습니까? (23절)
- 그럼에도 예수님의 십자가는 어떤 능력이 되었습니까? (24,30절)
- 하나님은 우리를 왜 부르셨습니까? (26절)
-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요구하시는 바는 무엇입니까? (19-21절 참고. 26-29절)
- 결국 우리가 시선을 고정하고 바라며 자랑할 것은 무엇입니까? (23,25,31절)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22절)
유대인은 종교적 인간을 헬라인은 정치 문화적 인간을 대표한다. 십자가는 인간적으로 추구했던 종교적 이상이나 정치적, 철학적인 이상, 기대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었다.
거리끼는 것, 미련한 것(23절)
십자가는 당시 저주와 범죄의 상징적 형틀이었고, 그리스도는 구원을 위해 오신 메시아였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란 유대인에게 절대 불가한 용어였다. 십자가는 철저한 실패로 받아들여졌다. 이방인들에게도 수치와 잔혹함, 극한의 대명사인 십자가, 사형수를 신적인 존재와 연결시키는 일은 비이성적인 일이었다.
택하사(27절) (헬)엑셀렉사토
‘뽑아내다’, ‘선택하다’라는 뜻. 본문에서 세 번이나 반복되는 이 표현은 하나님이 매우 특별한 목적을 갖고 성도들을 선택하셨음을 나타낸다. 즉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헬, 카타이스퀴노)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기꺼이 미련하고 약한 것이 되지 않으려 할 경우 그들을 제외시키시고 욕되게 하신다.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도록 하시는 것이 아니라 부끄럽게 만드신다.
폐하다(28절) (헬)카타르게오
사용하지 않다. 그치게 하다. 끝내다.
짧은 기도
주님,
씨앗을 통해 나무를,
알을 통해 새를,
고치에서 나비를 보도록
영안(靈眼)을 허락하소서.
그렇게 되면
모든 피조물을 통해 주님을 뵙게 되고,
“두려워 말라, 내니라”는 주님의 부드러운 음성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크리스티나 로세티_볼 눈을(1830-1894, 영국의 시인) 「사귐의 기도를 위한 기도선집」 113
1. 일상에서 필요한 은혜
오늘 챔버스의 묵상을 성경 본문과 연결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챔버스가 이야기하는 중요한 핵심을 놓쳐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 말입니다.
“더 이상 비전이나 소망이 없는 가운데 그 다음 단계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전능자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특히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독서나 부엌일 같은 것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일상적인 일에서 비전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 일상적인 일에서 우리를 알아봐주는 이가 없을 때, 그 시간들을 견뎌내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어쩌면 이러한 지루한 일상들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복음을 전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은혜가 필요할 것입니다.
챔버스는 오늘 묵상에서 중요한 것을 이야기 하는데, ‘성육신의 본질’에 참여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방법이라는 것이죠. 문제는 우리가 성육신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 답을 챔버스는 요한복음 13장에서 찾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모습을 묵상해 봅시다. 요한복음 13장 4-5절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성육신의 본질은 하늘에 계신 하늘 아버지께서 기꺼이 종의 몸을 입고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죽기까지 우리를 섬겨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은 그런 종 된 모습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주님의 모습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루함의 일상을 이겨내는 방법은 바로 종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섬겨주신 성육신의 모습이 우리 삶의 전 영역에서 나타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가장 미천한 일, 가장 미미한 일을 기꺼이 행하셨습니다. 종의 모습으로 말이죠. 그러니 우리의 일상이 아무리 하찮고 지루하게 느껴지더라도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과 사람을 위해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꾸준하게 인내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 시선을
지루하고 힘든 일상 가운데서 승리하는 비결은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챔버스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종종 우리들이 경험하는 것이죠.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힘겨워 ‘백기’를 들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이 때, 우리가 해야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당신의 눈이 부활하신 예수님께 언제나 고정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이전에도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 하나님은 가장 하찮은 일을 거룩하고 위대하게 만드시는 분입니다. 스스로를 조잡하다고 생각하는 소심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요? 종의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오셔서 가장 하찮은 모습으로 우리를 섬겨주신 주님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하십시오. 2월 19일 묵상 글에 나왔던 ‘시금석’이라는 말을 기억하시나요? 그렇게 가치 있어 보이지 않는 돌이 금의 진가를 드러내게 하는 시금석이 됩니다. 지루하고 힘든 일상 가운데서 우리를 이끌어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하는 시금석은 성육신 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우리도 종의 모습으로 하찮은 자리에서 섬기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역이 힘들 때, 고난과 핍박을 받을 때, 스스로를 채찍질 하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고린도후서 6장 4-5절.
4.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5.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시키면,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일들이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의미 있는 일에 우리가 어떻게 게으를 수 있겠습니까? 혹시 2월 15일 묵상에서 언급했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전도서 9장 10절 말씀을 가지고 챔버스가 나태한 자이툰 부대 병사들에게 설교 했던 내용입니다. “언제든지 끝낼 수 있는데, 꼭 지금 이렇게 해야 합니까?” 라고 따지는 경향이 있는데, 만약 5분 안에 해치울 수 있으면 바로 끝내는 게 좋다.”
제가 젊은 청년들을 보면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해야만 하는 일을 하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가 온다! 우리의 문제는 하고 싶은 일로 인해 해야만 하는 일에 게으른 것이다!” 제가 설교할 때면 힘든 교인들을 위로하며 하는 말이 있습니다. “힘들 때는 힘을 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일상이 지루하고 끝없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는 새로운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해야 합니다.” 게으름은 우리의 삶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데 가장 큰 적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