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마 10:27
한 줄 노트
-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두움으로 인도하실 때, 가장 선명하게 그 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입니다.
- 주님 앞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 때, 우리는 비로소 겸손해집니다. 겸손은 지금 주님의 음성을 듣는 열쇠입니다.
묵상질문
하나님 앞에서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한 없이 겸손하게 엎드렸던 때가 있었나요?
묵상 레시피
(창세기 37:18-36)
18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19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20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21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이르되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22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더라
23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24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25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즉 한 무리의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26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27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28 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29 르우벤이 돌아와 구덩이에 이르러 본즉 거기 요셉이 없는지라 옷을 찢고
30 아우들에게로 되돌아와서 이르되 아이가 없도다 나는 어디로 갈까
31 그들이 요셉의 옷을 가져다가 숫염소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시고
32 그의 채색옷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이것을 발견하였으니 아버지 아들의 옷인가 보소서 하매
33 아버지가 그것을 알아보고 이르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도다 요셉이 분명히 찢겼도다 하고
34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35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36 그 미디안 사람들은 그를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더라
(마태복음 10:27)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하나님은 요셉을 구덩이에서부터 다듬고, 훈련시키기 시작하십니다.
- 요셉과 형들의 관계는 어떠했습니까? (18절)
- 형들은 왜 요셉을 미워했을까요? (19절, 37:3-5,14절 참고)
- 형들은 요셉을 어떻게 하였습니까? 요셉은 어디에 던져졌습니까? (23-24절)
- 형들은 ‘죽이기를 꾀했지만’ 하나님은 요셉을 위해 누구를 예비하십니까? (25절)
- 하나님은 그분의 일을 위해 요셉을 어디로 보내십니까? (36절)
요셉이 던져졌던 그 구덩이에 앉아 고요히 묵상해 보십시오.
구덩이가 깊으면 깊을수록 하늘의 크기는 더욱 작아 보입니다.
던지고(20절) (히)웨나쉴리케후
내어버리다, 쫓아내다. (히)솰라크의 사역형(Hipili). 형들은 요셉을 죽여 시체를 ‘쓰레기 버리듯’ 버리려 했다. 형들과 요셉의 골이 매우 깊었음을 나타낸다.
구덩이(24절) (히)뽀르
물이 괸 곳, 우물. 빗물을 저장하기 위한 장소. 입구가 좁고 속은 넓었으며 벽면이 미끄러워 혼자 나올 수 없었다.
짧은 기도
제게는 어두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께는 빛이 있습니다.
저는 고독합니다. 그러나 당신께는 도움이 있습니다.
저는 불안합니다. 그러나 당신께는 평화가 있습니다.
제게는 쓰라림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께는 인내가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길을 이해하지 못하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저를 위한 길을 알고 계십니다.
디트리히 본회퍼_ 감옥에서 드리는 아침기도, 1943년 성탄절 中 「사귐의 기도」419.
1. 들어야 할 때
1월 3일 묵상에서 ‘구름과 흑암’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나누었던 말씀을 기억하시나요? 아직 주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를 ‘구름과 흑암’이라고 이야기 했었죠. 그 상태에서 우리는 아직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우리를 빛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그 뜻을 알게 되는 때가 올 것입니다. 어두움은 단지 우리들에게 두려움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세를 가르치시기 위해 지나가게 하시는 과정입니다. 종달새가 어둠속에서 노래를 배우듯,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은 어둠에 두시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십니다. 그러니, 어두움이 우리들에게 찾아올 때는 잠잠히 귀 기울여 음성을 ‘들어야 할 때’입니다. 왜 일까요?
“지금 어두운 상황 가운데 있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둡습니까? 그렇다면 잠잠하십시오. 만일 당신이 어둠 속에서 입을 열면 잘못된 기분 속에서 말하게 될 것입니다. 어두운 때는 우리가 들어야 할 시간입니다.”
어두움의 순간은 아직 불확실한 때입니다. 빛이 비추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어둠속에서 우리의 감정을 경솔하게 이야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빛 가운데 거하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귀한 메시지를 얻게 될 것입니다. 어둠이 우리들에게 주는 유익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어두운 곳에 두시면 시각적으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답답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때에는 시각 외의 다른 감각들을 주님을 향해 열어 두십시오. 그럼 어둠이 주는 유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 더욱 환하게 빛나는 우리 주님의 부드러운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 받는 확신이야말로 더욱 강한 것입니다. 어둠은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들리지 않는 고요함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고요함 속에서 듣는 주님의 음성은 더욱 선명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집안에서 생활할 때 나는 소음을 측정하면 50데시벨 정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기준에서 데시벨이 5씩 높아질수록 혈압이 10%씩 상승합니다. 일반 직장 사무실은 70데시벨인데 이 정도 소음이면 혈압이 평소보다 20~30% 정도 오르는 심한 스트레스 상황입니다. 본래 ‘소음’이라는 영어의 단어 ‘노이즈’는 ‘메스꺼움과 고통’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현대인들은 이런 소음에 익숙합니다. 습관적으로 TV나 라디오를 켜놓기도 합니다. 우리를 안정시키고 정상적인 상태로 만드는 것은 고요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두움에 두셔서 고요함 가운데 거하게 하셨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이때에는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의논하거나 세상의 소리로부터 차단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훨씬 유익할 것입니다.
2. 부끄러움이 찾아올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둠으로 인도하시는 목적은 보다 확실한 ‘빛’으로 보내시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마태복음 10장 27절이 그렇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세우시고 그들에게 당부하시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부탁하신 말씀입니다. 지금은 드러나지 않는 어두움 가운데서 주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광명한데서 곧 집 위에서 모든 사람들이 듣도록 그 말씀을 전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죠.
그 때가 되면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 묵상에서 챔버스가 언급했던 것처럼 기쁨과 더불어 ‘부끄러움’이 찾아오게 됩니다. 일견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주의 음성을 들었는데 어찌 그렇게 우둔하여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던고! 하나님께서는 여러 날 동안 계속 내게 말씀하고 계셨구나!”
아하! 상당히 시적이고 풍유적인 표현입니다. 기쁨의 크기만큼이나 그 기쁨을 깨닫지 못했던 시간들로 인해 부끄러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끄러움이 크면 클수록 그 기쁨의 크기가 더 크다는 반증입니다. 아주대학교의 명예총장이자 의사이기도 한, 이호영 교수는 ‘부끄러움’에 대한 연구를 했습니다. ‘부끄러움은 자기를 평가하고 성찰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는 길’이라고 설명합니다. 부끄러움은 이렇게 유익한 감정이지만 실은 고통스럽기에 많은 사람들은 이 감정 자체를 부정하거나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분노의 형태로 표출하곤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알았습니다. 부끄러움이 찾아올 때,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 부끄러움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내 모습’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차원의 ‘나’가 존재함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동안 내가 진리라고 믿어왔던 것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과해야 우리 자신의 껍질을 부수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 부끄러움을 통해서만 우리는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께로 가는 진리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은 그 큰 기쁨 속에서 자연스럽게 ‘겸손’으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 겸손은 우리로 하여금 ‘지금’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만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10: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이르는 것을광명한데서말하며너희가귓속으로듣는것을집위에서전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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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데는 골방이다. 골방에서 너희에게 말하여 준 것을 이제는 세상에 나가서 전파하라는뜻이다.
영의 귓속으로 들은 것을 많은 사람이보는데서(집위에서)전파하라는 것이다.
핍박이 온다고 하여 전파하는일을 중지하면 안 된다 .
만일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다.
씨를 부릴 때에 나지 아니할까 벌레가 먹지 아니할까 염려하지 말고 무조건 나가서 뿌려야 한다.
뿌리기만 하면 일은 하나님이 해 주신다.
받은은혜를감사하여다른사람에게 증거하여 나타내어야 한다.
속에 있는 것이 나와야 성장하고 결실한다.
성공과 실패는 하나님께 맡기고 두려워하지 말고 나가서 복음을 전하면 어두운 세상에 복음의 빛이 비치어 나가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이 생명의 빛으로 나아오게 된다...아멘,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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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두움으로 인도하실 때, 가장 선명하게 그 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입니다.
주님 앞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 때, 우리는 비로소 겸손해집니다. 겸손은 지금 주님의 음성을 듣는 열쇠입니다.
묵상질문
하나님 앞에서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러웠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그래서하나님앞에한없이겸손하게 엎드렸던 때가 있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