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빌 2:17
한 줄 노트
- 낮은 자리에 있는 것이 겸손이 아닙니다. 그 자리로 보내신 이가 누구인지, 그 자리에서 누구와 함께 있는지가 겸손의 유무를 결정합니다.
묵상질문
진정 낮은 자리에 있기를 원하십니까?당신을 그 자리에 있게 하신 이가 누구인가요?
묵상 레시피
(빌립보서 2:12-18)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17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18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무엇 하라고 권면합니까? (12절)
- 바울은 세상 가운데 어떻게 살아가라고 권면합니까?(15절)
- 우리가 그것을 행할 수 있는 원동력은 누구로부터 옵니까? (13절)
- 그것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과 의지는 누구로부터 옵니까? (13절)
- 바울은 이를 행하며 어떤 자세를 가지라고 권면합니까? (14-15절)
- 바울은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무엇 하라고 명합니까? (16절)
- 바울은 사역과 교인들을 위한 열정, 결단을 무엇으로 표현했습니까? (17절)
복종하다(12절) (헬)휘페쿠사테
순종하다, 복종하다, 듣다, 청종하다. 듣는 것에 더 나아가 행하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동사.
구원 (헬)소테리아
중생으로 얻는 구원과 종말론적 구원까지 모두 아우르는 단어이다. 본문에서는 성령으로 성결케 되어 가는 성화적 측면의 구원을 가리킨다.
(빌3:12, 롬14:19, 고전9:24-27, 딤전 6:12)
이루라 (헬)카테르가제스데
성취하다, 실행하다, 애써 완성하다. 완전한 모습을 이룰 때까지 ‘영적 성숙’을 위해 지속적으로 힘쓰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원망과 시비 (헬)공귀스몬 카이 디알로기스몬
원망은 ‘불평을 품고 수군거리다’라는 뜻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불순종 했을 때 사용된 단어다(고전10:10). 시비는 ‘논쟁, 의심’이란 의미로 악한 생각으로부터 나오는 불안한 생각, 의심, 논쟁, 다툼을 의미한다. ‘원망’은 의지적인 행위이고 ‘시비’는 지성적인 반역, 말다툼을 포괄한다.
생명의 말씀을 ‘밝혀’(16절) (헬)에페콘테스
소유하다, 굳게 가지다. 새번역에는 ‘굳게 잡으십시오.’로 번역되었다.
전제로 드린다(16절) (헬)스펜도마이
액체의 쏟아짐에서 파생, ‘전제로 붓다, 드리다, 부어지다.’ 라는 의미. 전제는 제사 마지막 단계로 제물 위나 제단 밑 부분에 포도주를 부어 드리는 제사 의식을 말한다. 고대 제사에서는 ‘전제’를 통해 제사가 완전해진다고 여겼다. 딤후 4:6에서 동일한 표현이 ‘죽음을 수반한 드려짐’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아, 여기서도 바울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즉, 바울은 자신이 순교할지라도 기뻐할 것이라고 말한다.
짧은 기도
더 많이 아파
아픈 이 받고
더 많이 잊혀져
잊혀진 이 받고
더 많이 없어
없는 이 받고
더 많이 쓰러져
쓰러진 이 받도록
나를 이기십시오, 주님.
일어서는 나를
거꾸러뜨리소서.
한희철_나를 이기소서(목사, 저술가) 「사귐의 기도」434
진정 낮아짐의 의미
오늘은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말씀인데, ‘이해한 대로’ 사는 것이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전제로 드려짐’을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전제’는 ‘부음’ 혹은 ‘쏟음’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위해 ‘생명을 바쳐 충성하셨다’라고 할 때 사용될 수 있는 말입니다. 구약시대에는 번제나 소제, 화목제를 드리는 사람이 하나님께 경배하기 위해 ‘포도주’와 ‘독주’(레 23:13)를 제물로 드렸다고 되어 있습니다.
전제로 나를 드린다는 뜻은 나를 ‘부어’, ‘쏟아’내어 드린다는 뜻입니다. 어떤 것들을 부어내고, 쏟아내면 그 안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챔버스의 오늘 묵상은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반만, 아니 십분의 일만 부어내고 쏟아내려 하는 얕은 신앙인의 자세를 꼬집습니다. ‘전제로 나를 드린다’는 것은 완전히 버려지는 겸손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짐 엘리엇의 전기 [전능자의 그늘]에 보면 선교사로 헌신하기 전이긴 하지만 ‘전제로 드려짐’을 생각하게 하는 그의 일기가 있어 소개합니다. 평소의 이런 생각이 그의 삶을 그렇게 순교자로 이끌어 간 것이죠. “아버지, 제 생명을 취하소서. 주님의 뜻이라면 제 피를 취하소서. 주님의 삼키는 불로 제 피를 태우소서. 제 것이 아니기에 아끼지 않겠습니다. 주님, 가지소서. 다 가지소서. 제 생명을 세상을 위한 희생으로 부으소서. 피는 주님의 제단 앞에 흐를 때만 가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묵상의 원제를 보면 ‘Are you ready to be offered’라고 되어 있습니다. 직역하면 ‘드려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즉 수동태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발적인 희생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도 언제든 나를 비워내고 쏟아낼 준비가 완료된 상태로 살아가는 삶의 자세가 중요함을 강조하는 듯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바로 전에는 아주 유명한 ‘자기를 비움’에 대한 복음이 나와 있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입어 이 땅에 오신 것을 믿는다면, 우리 역시 믿음의 지체들을 섬기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큰 기쁨일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위해 자신이 ‘전제로 드려짐’을 기뻐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낮아지는 섬김의 자리는 어디일까요? 챔버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생명의 피를 다른 사람의 믿음을 위한 전제로 부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럴 수 없다면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나는 아직 나 자신을 다 드릴 수 없어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내가 어떤 희생을 할 수 있는지 내가 결정하기를 원합니다.”
온전히 제단에 피를 쏟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아직도 내 자아가 살아있다는 말입니다. 진정 낮아진다는 것은 ‘섬김의 결정’도, 하나님께 주도권을 양도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드러나든지 완전히 낮아지든지 말입니다.
“영웅심에 빠져 외로운 길을 걷는 것과, 하나님에 의해 정해진 삶을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의 ‘신발털이개’가 되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남에게 천시받고 낮아지는 비결’을 가르치신다면 당신은 그 가르침대로 바쳐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영웅심에 빠져 걷는 외로운 길’은 무슨 의미일까요? 챔버스는 ‘하나님에 의해 정해진 삶’과 대비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해 놓으신 길을 가는 것 역시 때로 외로운 길입니다. 집 현관 앞에 놓인 신발털이개가 되어 사람들이 밟고 다니는 하찮은 물건 취급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 겸손할 필요도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완전히 낮추셨으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영웅심에 빠져 걷는 외로운 길’은 자신 스스로가 낮아졌다는 자만심을 가지고 뻐기는 상태입니다. 분명히 낮은 곳에 있는데 교만으로 가득 찬 모습입니다. 이 사람은 주님이 정해 놓으신 길을 가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결정한 길을 가고 있는 것이죠. 그러니 아무리 겸손한 자리에 있어도 성령님과 동행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예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다퉜던 제자들을 보면 여실히 드러납니다. 길은 십자가의 길인데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다투고 있으며, 주님과 같이 걷고 있으나 주님과 동행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가만히 우리들의 모습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들 스스로 성도라고 하면서 천하고 궂은일은 섬기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아닌가요? 심지어 이렇게 궂은일을 하는 것이 자신들의 품격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요? 진정 낮아진다는 것은 타인을 섬길 때 다른 사람이 알아주기를 기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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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 교인들이 믿음을 지키며 희생하고 봉사하는 것을 믿음의 제물이라고 하였다.
관제는 술을 제물 위에 붓는 것이다.
성도들이 믿음으로
희생하고 봉사할 때에 바울은 자신의 피를 거기에 붓는다 할지라도 기뻐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바울이 교인들을 사랑하고 진리를 밝혀 나가는 일을 자기 생명보다 귀중히 여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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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노트
낮은 자리에 있는 것이 겸손이 아닙니다. 그 자리로 보내신 이가 누구인지, 그 자리에서 누구와 함께 있는지가 겸손의 유무를 결정합니다.
묵상질문
진정 낮은 자리에 있기를 원하십니까?당신을 그 자리에 있게 하신 이가 누구인가요?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해요!
말씀을통해서 나의나됨을
알게하셔서 감사해요!
아무런비젼과꿈도없이 하루하루 소일하고있는
나를 들깨워주시옵소서!
복음을전하는소리가되길
앙망합니다!
믿음의주요 날 온전케하실
주예수그리스도의이름으로
간구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