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행 26:14
한 줄 노트
- 과도한 우리의 열정과 자기 주장이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습니다.
- 주님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하려면 그분이 원하시는 자리에 우리가 서 있어야 합니다.
묵상질문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자기 주장의 자리인가요, 하나님의 마음이 있음을 확신하는 자리인가요?
묵상 레시피
( 창세기13:1-18)
1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2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3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4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5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6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7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1)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1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13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사도행전 26:14)
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 아브람과 롯은 어떤 복을 받았습니까? (2,5-6절)
- 복과 동시에 어떤 문제가 발생했습니까? (6-7절)
- 아브람은 롯에게 어떤 제안을 합니까? (8-9절)
- 제안을 받은 롯이 한 행동은 무엇입니까? (10-12절)
- 롯이 선택한 땅은 어떻게 보였으며, 실상은 어떠했습니까? (10, 13절)
- 롯이 떠난 후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명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14절)
-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무엇을 약속하셨습니까? (15-17절)
풍부하였더라(2절) (히)카베드 메오드
히브리어를 그대로 번역하면 ‘대단히 수가 많고 무거웠다’는 의미. (히)카베드는 ‘무수하다, 무겁다’로 번역되는 단어로 수량과 더불어 무게가 많다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히)메오드 역시 ‘지극히, 너무’로도 번역된다.
다투게 말자(8절) (히)알 나 테히 메리바
아브람은‘(히)나(제발, 원컨대)’라는 표현과 함께 ‘(히)테히’를 사용하여 정중하게 허락을 요청하는 뉘앙스로 말하고 있다. 아브람은 연장자이며 가장으로서 권위와 거주지 선택의 우선권을 갖고 있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바라본즉(10절)
이 구절에 쓰인 히브리어 단어들을 번역하면 ‘눈들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는 바라보았다’이다. 즉, 그의 눈이 이미 선택 할 땅을 즉시 살피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택하고(11절)
한글 성경에는 ‘(히)로(그를 위하여 for himself)’가 생략되었다. 롯은 ‘자신을’ 위하여 그 땅을 택했다.
짧은 기도
아버지, 주제넘은 못된 교만의 목을 꺾어 주시고 비둘기 같은 겸손한 자세로,
죄인의 괴수로, 주님 앞에 엎드릴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가장 큰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처럼 권세를 가지고 다메섹으로 올라가던
사울의 목을 꺾어 길바닥에 넘어져
눈을 보지 못하도록 만들어 새로 창조해 주신 아버지시여,
교만덩어리의 자식들이 주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인간의 생각으로 보아도 저희는 감히 머리를 들 수 없는 것들이 아닙니까?
백성으로 백성 구실한 것도 없고,
자식으로 자식 구실한 것도 없고,
부모로서 부모 구실을 한 것도 없습니다.
이러면서 뭐 잘났다고 뽐내고,
나는 너보다 낫다고 이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 목을 꺾어 주시옵소서.
당신 앞에 무릎을 꿇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해서 당신이 직접 주시는 성령의 생명을 받게 해주시옵소서.
이호빈_제 목을 꺾어 주소서 (1898-1989 목사, 강남대학교 설립자),「사귐의 기도」238.
1. 고집과 자기 권리 주장할 때 우리 주님의 마음이 아프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주장과 고집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고집스럽게 자신의 방법과 계획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지 모르지만 성령님을 근심케 한다는 것입니다.
1906년 챔버스가 미국 신시내티의 성경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기도에 대하여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기도의 목적은 인간이 세운 계획을 하나님을 강요하여 복을 내리시도록 교묘하게 조작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함께 걷기 위한 것이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순종] 중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권리 주장’이 될 때, 주님의 마음을 아프시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름, ‘사울’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이 처음 등장한 곳은 사도행전 7장에 나오는 스데반의 순교 장면입니다. 스데반을 돌로 치던 장소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겠지만, 유일하게 실명으로 거론된 사람이 ‘사울’이니 그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이었겠습니까?사람을 죽이는 데 실명이 거론될 정도로 열심인데다 자기 소신이 분명했던 ‘사울’을 바라보시는 주님의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집을 부리며 자기 주장대로 하면서 자신의 야망을 이루려고 할 때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자기 권리를 주장하며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키려고 할 때마다, 우리는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입니다. 자기 존중을 주장할 때마다 우리는 체계적으로 주의 성령을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고집과 자기 주장은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영적 생활에도 상처를 입힙니다. 우리가 잘 아는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롯을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창세기 13장에 보면 둘의 갈등으로 인해 헤어져야하는 때에, 롯이 무엇을 선택했는지가 나오고 있습니다. 롯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선택했던 땅 소돔과 고모라에서, 어떤 영적 상처를 받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2. 주님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하려면
스스로 무언가를 하려는 시도는 늘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스스로 거룩해지려는 시도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챔버스에게 있어서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 유일한 시도는 ‘아버지와 하나 됨’입니다.
“예수님의 영은 오직 한 가지만 의식합니다. 곧 아버지 하나님과의 완전한 하나 됨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 11:29)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은 오직 주님과 완전한 하나 됨에 바탕을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과 하나 되어 ‘우리의 의지’를 버릴 때, 세상 사람들로부터 짓밟히고 우습게 여김과 무시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길만이 주님께서 핍박받는 것을 막는 길입니다. 다시 아브라함과 롯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롯은 자신의 주장대로 행동해서 영적인 상처를 받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은 롯과는 정반대의 길을 감으로,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될 만한 선택을 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하나님의 마음이 있으며, 그곳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 해결은 내 마음대로 환경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죄악이 가득한 소돔과 고모라를 보면서 롯은 그 땅을 에덴동산처럼 보았습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창13:10)
내 눈에 보기 좋은 것이 아니라, 내 생각에 옳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서 사역의 자리에 서는 사람이 되길 기도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스왈드챔버스 목사님은 '주님과 완전한 하나됨'에 바탕을 두고 우리의 모든 일이 이뤄져야 한다고 전합니다. 얼마 전, 목회의 승리는 교회를 부흥시키는 것도, 성도들을 자라게 하는 것도 아니고 목회자 스스로가 주님과 연합하는 것이라는 메세지를 들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주님과 연합하고 하나됨을 위해 기도합니다. 심겨진 곳에서, 나의 사명이 다 끝났을 때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이 아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