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마 16:13-16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하나님’에 대한 고백과 구약의 말씀은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가 어느 정도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예루살렘이라는 도시 역시 세 종교가 성지로 여기는 유사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고백하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세계 인구의 20%인 무슬림교도들에게 ‘예수님’은 무하마드 다음으로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랍비’, 즉 ‘선생님’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에 있어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처럼,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십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당시 ‘예수’라는 이름은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부르는 이유도 흔한 이름을 구별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이스라엘이 대망하는 메시아, 곧 구원자라는 특별한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 또한 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당시 많은 왕들은 자신의 권위를 신과 동격화하기 위해 자신을 ‘신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과 헬라인 모두에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것은 신성모독이었습니다. 즉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하는 것은 목숨을 건 신앙고백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이십니다.
당시 로마는 많은 속국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각자의 토착 종교와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로마는 각 지역의 종교와 문화를 억압하기 보다는 가능한 한 많은 자유를 허락하려는 정책을 써왔습니다. 단, 로마에 세금을 내고 ‘가이사는 주시다’라는 고백을 한다면 말입니다. 사실 이것은 타협하고 살아간다면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가이사를 주로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받고 십자가형 혹은 화형에 처해지기도 하고, 칼에 찔려 죽거나, 사나운 짐승에게 찢겨 죽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예수님을 ‘주’로 고백했던 이유는 예수님이 삶의 주인이 되시고, 구원자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천국소망의 열쇠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가장 크게 배우고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이 중요하다고 느낀 이유는 무엇인가요?
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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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존스 저, 김상근 역(IN크리스토, 2016.1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