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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을 갈고 씨를 뿌리다

5월 30일 교회는 종교 공동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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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1: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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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디트리히 본회퍼는 “교회는 그리스도를 통해 타자를 본다”고 말합니다.

교회는 내 생각과 판단으로 상대방을 대하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오직 기준은 그리스도입니다. 교회는 이익 단체도 동호회도 정당도 아닙니다. 중심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 연결되어 그리스도의 피로 새로운 가족을 이룬 한 공동체입니다. 교회의 문제는 예수님 중심이 아니라 ‘같은 종’을 찾아 공동체를 이루려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붙어 있지 않은 공동체는 교회가 아니라 종교 공동체일 뿐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염려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교회가 사라질 것에 대한 염려가 아니라 진정한 기독교, 곧 진정한 교회를 선언하며 살지 못하는 것을 염려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떠난 것은 ‘교회’가 아니라 ‘종교 공동체’입니다. 교회가 그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교회의 출발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다시금 옷 입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예수님 한 분으로 충분합니다. 믿음으로 순종해야 하며 순종함으로 믿어야 합니다(디트리히 본회퍼).

G.K. 체스터튼은 “기독교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아직 완벽하게 시도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진정한 교회에 대한 갈망이 있다면 떠날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부디 이 은혜의 공동체인 교회를 포기하지 말길 바란다. 교회라는 저수지가 말랐다고 한탄하며 비판하고 떠나려 할지 모른다. 그러나 저수지가 마를 때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다.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필립 얀시). 기독교 신앙은 철학이나 정치적 이념, 도덕이나 라이프 스타일 이상의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기독교의 출발점이요 전부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출발점이며 전부이십니까?

❶ 우리가 회복해야 할 교회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❷ 나는 무엇을 통해 타자와 세상을 바라봅니까?


묵상 도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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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 연결되어 그리스도의 피로 새로운 가족을 이룬 한 공동체입니다. 예수님께 붙어 있지 않은 공동체는 교회가 아니라 종교 공동체일 뿐입니다. 

❶ 관련설교 – 2020 창립기념일 설교, 2. 교회는 종교 공동체가 아니다 

하늘 아버지를 생각하며, 하늘 아버지가 우리에게 허락하신 형제와 자매들을 돌보지 않는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 하지만, 우리의 많은 신앙의 양태들이 너무나 하늘 중심적이어서, 하나님이 주신 세상을 잘 살아내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는 이런 우리의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사실 많은 크리스천들의 소망이 하늘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가는  

비전만을 가지고, 세상에서 고통도 참고 악한 일에 휩쓸리지 않으며 거룩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 너희들만 하늘의 소망을 품고 고고하게 살지 말고, 그 하늘의 비전이 이 땅에도 임하기를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잘못된 이분법적 논리를 가지고 세상을 경멸하면, 세상도 우리를 경멸합니다. 이러한 이분법적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사명지로 보내주신 이 땅에서 가치 있는 인생을 살지 못하게 됩니다. 주기도문의 순서가 놀랍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친밀하시지만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할 때, 당연히 우리는 그분의 뜻을 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분의 뜻이 이 땅 위에 이루어지기를 간구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고백하는 크리스천들이 품어야 하는 기도의 내용입니다. 

         

교회가 사라질 것에 대한 염려가 아니라 진정한 기독교, 곧 진정한 교회를 선언하며 살지 못하는 것을 염려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떠난 것은 ‘교회’가 아니라 ‘종교 공동체’입니다. 교회의 출발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다시금 옷 입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관련설교 – 2020 창립기념일 설교, 2. 교회는 종교 공동체가 아니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거룩한 영성을 위해 수도원으로 들어갔던 믿음의 선배들에 대하여 그렇게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우리들이 거룩을 이루는 곳은 세상과 단절된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은 『성도의 공동생활』에서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시는 동안 형제와 자매, 친구들과만 사셨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둘러싼 원수들 한가운데 사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우리 주변에 세상적인 것들이 널려있는 것이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악함과 무질서를 볼 때마다 우리의 기도는 더욱 간절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에 진정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채워지기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의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한, 이 세상의 모든 불의와 원수들이 사라지기를 부활의 주님을 의지해 기도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그분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할 수 있도록 우리를 특정한 상황으로 이끄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기도하는 상황으로 인도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며 붙들고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교회라는 저수지가 말랐다고 한탄하며 비판하고 떠나려 할지 모른다. 그러나 저수지가 마를 때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다.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필립 얀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기독교의 출발점이요 전부이십니다. 

관련설교 – 2020 창립기념일 설교, 2. 교회는 종교 공동체가 아니다 

우리의 심각한 오해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생각하며 기도할 이유를 놓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테니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주권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정한 상황으로 인도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도구로 사용하고 계시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누군가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그 역사는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할 때,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기쁨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계획이 펼쳐지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놀랍게도 우리가 그 계획을 이루어가는 과정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입니다. 

 

관련예화 – “예수님은 교회의 건물을 채우라고 하신 적이 없다”, 칼 베이터스(Karl Vaters) 

‘교회에 가는 것’만이 전부인 적은 없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람들을 많이 모아 교회 건물을 가득 채우기 위해 열심히 일해라! 그러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는 줄 알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를 포함하여) 많은 목회자들이 대부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쏟고 있는지 보면, 아마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페이스북 등 여러 SNS를 보면, 주일의 아침과 저녁, 그리고 주중에 교회가 꽉 찼었던 ‘좋은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종종 발견한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소규모 교회의 목회 현장에서 더 잘 찾아볼 수 있다. 나 역시 그 그리움은 이해한다. 나도 우울할 정도로 적은 주일예배 출석을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 시대는 더 큰 대형교회 혹은 꽉 채워진 작은 교회가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변화된 삶, 가족, 도시, 국가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교회 건물 안에 틀어박혀 있을 때는 이루기 어렵다. 

 

예수님이 강조하신 것을 우리도 강조하자. 복음서를 살펴보면, 예수님께서는 교회에서만 시간을 보냈었는가? 혹은 사람들에게 교회에 가도록 말씀하신 적이 있는가? 아니면 제자들이 그렇게 했는가? 아니다. 사실 예수님과 제자들은 교회에 가는 것을 강조한 적이 없다. 그들은 “교회가 되고” "세상으로 나가는 것 (막 16:15)"을 강조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교회 건물이 가득하기를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눅 10:2). 

교회됨의 본질은 교회 ‘건물’을 채우는 ’이 아니라, ‘이웃’을 예수님 사랑의 기쁜 소식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  

 

교회됨의 본질은 교회 건물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물론 교회가 열정적이고 예배하는 신도들과 성실한 구도자로 가득 차 있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교회 건물을 채우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 건물은 하나님이 세상에 도달하기 위해 사용하시는 ‘도구’이지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역사상 교회 건물은 가득 찼지만, 오히려 지역 사회는 지옥 같았던 적이 너무 많았다. 

 

모든 교회의 위대한 경험은 두 가지를 지향해야 한다. 

1.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확대하는 것. 

2. 말과 행동으로 사랑하고 섬기고 복된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더 준비된 성도들을 내보내는 것. 

 

아마도 교회의 건강함과 영적 거듭남의 정도는, 우리가 어떻게 교회 건물을 채워가는 지가 아니라 어떻게 교회를 비우는 지로 측정해야 할 것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람들을 교회 건물로 채우는 것을 강조하면서 그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것에 어려움을 겪어본 적이 있는가?  

 

*출처: 

https://churchleaders.com/pastors/pastor-how-to/175601-karl-vaters-never-told-us-to-fill-church-buildings.html 

 

관련예화 (『치열한 도전』 김병삼, 두란노, 18.06.14) 

최근 ‘진정성’이라는 단어를 점점 더 많이 사용하게 되는 것 같다. ‘그 사람 말은 진정성이 있어’, 혹은 ‘진정성이 없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게 되는데, 막상 이 말을 딱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진정성’이란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참되고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음’, 또 다른 하나는 ‘거짓이 없고 참됨’이다. 앞의 정의를 기독교적 관점에 적용하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인간이 지닌 순수한 사랑, 온전한 헌신을 생각해 볼 수 있고, 나중 것을 적용하면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선포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권위를 떠올리게 된다. 이런 조건들을 갖출 때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진정성은 막혀 있는 담을 허무는 힘이 있다. 기존의 편견이나 잘못된 관념에 사로잡힌 것을 허무는 요소이기도 하다. 오늘날 담장 안에 머물러 있는 교회가 세상 밖으로 나오려면 진정성이 드러나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보면서 ‘그래, 저게 바로 교회야’라고 느낄 수 있는 곳이 될 때 비로소 담장을 허물고 나올 수 있다. 

 

교회의 진정성이 드러나려면 복음을 향해 참되고 정직하게 애틋한 마음으로 정주행해야 한다. ‘속도보다 방향’이란 말을 자주 하는데, 그만큼 방향이 중요해서다. 방향을 잃으면 아무리 열심히, 빨리 간다 해도 안 간 것만 못하다. 

우리는 성공이라는 것 때문에 방향성을 잃을 때가 참 많다. 나 역시 이 때문에 종종 방향을 잃고 넘어지곤 한다. 참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목회자로서 다른 교회가 우리 교회보다 우월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면 견디기 힘들다. 질투심과 성공에 대한 욕구 때문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는 우리가 왜 다른 교회의 탁월함을 참지 못할까? 왜 우리는 ‘작은 교회 vs. 큰 교회’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는지 모르겠다. 날마다 마음을 다잡는데도 종종 이 프레임에 갇힌 생각 때문에 복음을 향해서 주행하는 데 제동이 걸리곤 한다. 그래서 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하여 다짐을 하곤 한다. 복음을 향해 정주행하지 않을 때 교회는 책망을 듣고 진정성을 잃게 된다. 

 

오늘날 교회가 되찾을 진정성은 세례 요한의 모습에 힌트가 있다. 교회는 자신이 아닌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짐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기꺼이 쇠할 수 있어야 한다. 교인 수와 재정을 자랑하기보다는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에 기뻐하는 교회, 자신의 재정을 세상을 위해 사용하고, 공동체에 기여가 큰 리더들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파송할 수 있는 교회, 이런 교회가 진정성 있는 교회다. 교회는 결코 꼴사나운 들러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가 진정성을 회복하려면 먼저 죽어야 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져야 한다.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한다. 그런데 세속적인 소유와 성취에 사로잡힌 교회는 결코 죽을 수 없다. 배부른 자에게는 진수성찬도 달갑지 않듯 육체의 소욕으로 가득 채워진 공동체는 영적인 은혜에 관심이 없다. 

 

과연 오늘 우리 교회는 무엇에 대해 살아 있고, 무엇에 대해 죽어 있는가?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대표하는 공동체가 될 때 진정성이 오롯이 드러날 수 있다. 그러려면 죽도록 죄와 싸우고 자신을 부인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고 난 뒤 사랑에 살고 사명에 살아야 한다. 오늘날 교회가 담장 안에 갇히게 되고, 박제된 그리스도인이란 비난을 받는 이유는 사명과 사랑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는 연결되어 있는데, 교회가 사명에 불성실해진 것은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랑이 식어 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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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종교 공동체가 아니다

1.교회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
교회는 오직 기준은 그리스도입니다. 중심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 연결되어 그리스도의 피로 새로운 가족을 이룬 한 공동체입니다,
예수님께 붙어 있지 않은 공동체는 교회가 아니라 종교 공동체일 뿐입니다.

우리가 염려해야 할 것은 진정한 기독교 곧 진정한 교회를 선언하며 살지 못하는 것을 염려해야 합니다. 교회가 그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예수님 한 분으로 충분합니다.
믿음으로 순종해야 하며 순종함으로 믿어야 합니다.

진정한 교회에 대한 갈망이 있다면 떠날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철학이나 정치적 이념, 도덕이나 라이프 스타일 이상의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기독교의 출발점이요 전부이십니다.

2.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교회를 떠날 이유가 없습니다.
그의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라.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말씀 하십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시고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게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 자 하셨습니다.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너희는 세움을 받으리라 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교회를 떠나지 못합니다.

3.복음의 진리를 깨달으면 교회를 떠나라 해도 못 떠납니다.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날부터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나게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 주십니다.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고 만세로부터 감추어졌던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과 소망이라

그리스도를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고자 함입니다.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함이라 그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내가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면 사랑 안에 연합하여 그리스도를 깨달음으로 인하여 그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를 알게 함으로 천국의 삶을 살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2023.05.31
김은실
기독교 신앙은 철학이나 정치적 이념, 도덕이나 라이프 스타일 이상의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기독교의 출발점이요 전부이십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예수가 없기도 하고 일개인의 생각이나 목적에 따라 좌우지되기도 함을 많이 봅니다.
인간들이 모인 곳이기에 더욱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데 종교성만 부각하는 울리는 꽹과리같은 세상의 문화가 점령한 뭣도 아닌 집단으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와 뜻이 기준이 되고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다스려야함을 무시하고 세상의 기준, 교회의 법으로 정당화, 규제화시키는 사랑없는 공동체가 안타깝습니다.

하나님!
오직 예수님만이 출발점이 되고 전부가 되시는 교회를 이루어가기 원합니다.
2023.05.30
김동춘
골로새서 1:23
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아멘.

때문이라고, 불쌍하다고,
두렵다고, 변질이라고
비판과 맹비난을 하고 싶은데
"무릇 네 마음이나 지켜라"
하고 생각이 든다.
내 마음을 지킬 수 있는
힘을 도와주시고
어느 공동체나
함께 하시는
주님을 믿고
주님의 마음을 품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용기가
있기를 원합니다. 🙏
감사합니다
2023.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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