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 100 주의 법도들을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나으니이다 101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102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104 주의 법도들로 말미암아 내가 명철하게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106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107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108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 입이 드리는 자원제물을 받으시고 주의 공의를 내게 가르치소서
성경 묵상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입니다.
하나님과 성경의 권위를 인정 하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경을 임의로 펴서 원하는 답을 얻으려는 조급한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대화’를 지향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동일한 말씀을 주셔도 들을 귀 있는 자만이 주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반응합니다(마 11:20; 히 11:6).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시 119:105).
성경 말씀은 ‘발에 등’이지 헤드라이트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걸어갈 만큼만 보여 주십니다. 말씀이 유한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유한합니다. 하나님이 많은 것을 말씀해 주셔도 우리가 다 이해하거나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맞춰 걸음과 보폭을 조정해 주십니다.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instruct) 너를 주목(with mine eye)하여 훈계(guide)하리로다”(시 32:8, KJV). 하나님이 시작에서부터 과정과 나중까지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만큼 걸어가십시오.
성경 묵상에는 몇 가지 ‘일관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묵상을 통해 다양한 말씀을 주시지만, 비윤리적인 길, 거룩하지 않은 방법은 결코 보이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거룩함’을 훼손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으로부터 온 음성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반드시 이루십니다(사 14:24).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자는 두 가지로 반응하게 됩니다. 순종 혹은 불순종입니다. 중간 지대는 없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요 8:4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
나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있습니까?
❶ 오늘 나에게 주신 말씀만큼 순종하고 있습니까?
❷ 하나님의 가르침과 인도하심과 훈계를 받고 있습니까?
성경을 임의로 펴서 원하는 답을 얻으려는 조급한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대화’를 지향해야 합니다.
❶ 관련 설교 – 2016 양은 목자의 하나님의 음성듣기 2. 패턴이 있다.
조이 도우슨의 글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있어
우리를 흥분시키는 것 중 하나는
아마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의사소통을 하시기 위해
선택한 방법들이 얼마나 다양한가를 발견하는 일일 것이다.
그분의 음성을 듣는 일은 평생을 해온 일임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평범한 적이 없었다.
…
오늘 우리가 읽는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친밀하게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분명히 해 두고 싶은 것이 있다.
성경을 임의로
기계적으로 행하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반면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그분께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에 성경을 위엄 있게 펴시고는
그분의 답이 있는 구절로 우리의 눈을 이끄실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항상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는 분명한 확신이나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평강을 동반하는
성령의 내적 증거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맞춰 걸음과 보폭을 조정해 주십니다.
❷ 관련 설교 – 2016 양은 목자의 하나님의 음성듣기 2. 패턴이 있다.
조이 도우슨의 책에 보면 아주 재미있는 예가 나와 있습니다.
그녀가 어느 교회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다양한 방법에 대한 말씀을 전하고 난 후
그 곳에 있었던 16세 된 여학생의 이야기입니다.
그 아이는 눈 화장을 나무 짙게 한다고 어머니의 잔소리를 들었답니다.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확신을 했는데 늘 그 문제로 어머니와 다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이 강의를 듣는 중 문제의 해답이 하나님께 있다는 말에, 하나님께 물었답니다.
“좋아요, 하나님 제가 어디 배운 대로 한번 해볼게요. 제가 눈 화장을 너무 짙게 하는 건가요?”
라고 물으며 묵상을 하는데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예레미야 4장 30절이 떠오르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찾아보았습니다.
"멸망을 당한 자여 네가 어떻게 하려느냐 네가 붉은 옷을 입고 금장식으로 단장하고 눈을 그려 꾸밀지라도 네가 화장한 것이 헛된 일이라 연인들이 너를 멸시하여 네 생명을 찾느니라."
이 아이가 깜짝 놀란 것이지요. 어떻게 이런 말씀이 있는지를 알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 말씀을 구할 때, 이렇게 작은 부분 세세하나 부분까지 응답하시는
응답을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아이는 곧 바로 어머니에게 가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했다는 것이지요.
참 재미있지 않습니까?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시고 지시하실 하나님의 말씀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묵상을 통해 다양한 말씀을 주시지만, 비윤리적인 길, 거룩하지 않은 방법은 결코 보이지 않으십니다.
❸ 관련 책내용 – 『하나님을 가슴 뛰게 하는 이야기』 (프리셉트 / 김병삼 저)
얼마 전 차량 안내로 교회에서 봉사해오던 성도들과 함께 식사하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하던 중 한 권사님이 공사현장에서 있었던 일을 나누었습니다.
콘크리트 레미콘 운전사 한 사람이 현장에서 시간만 나면 성경을 봤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44층이나 되는 높은 건물을 짓고 있었으므로 콘크리트를 쏘아 올리는 것이 중요할 뿐만 아니라,
긴박한 순간이 있음에도 그 운전사는 성경을 열심히 봤다는 것입니다. 그분 때문에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이 불안해 했다고 합니다. 급기야는 저 운전사가 내일도 오면 작업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인부들도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에 왔더라면 그렇게 가르치지는 않았을 거에요. 예수를 믿어도 뭔가 잘못 믿고 있네요”
이분은 하나님을 믿고 말씀을 읽었는지는 모르지만, 행동의 방식이 지극히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고 제각각인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것보다 말씀을 실천하는
것에 목적이 있음을 명심해야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요 8:47).
❹ 관련 설교 – 국민일보 더미션 / [장애인과 함께하는 설교] 잘 듣고 분별하라(마태복음 13:9) – 임창호 목사(부산 장대현교회)
예수님은 “귀 있는 자는 들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에 귀 없는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 말씀은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듣지 못하고, 무슨 말인지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원인을 마음의 완악함으로 지적하셨습니다. 마음이 미움으로 가득 차면 악해지고, 들려도 듣지 못하게 되고 듣는 신경까지 둔해져 이해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듣는 기능이 둔해져서 대충대충 듣다 보니 앞뒤의 말씀을 파악하지 못하고 오해를 합니다.
사람의 귀는 얼굴 양쪽에 두 개 있습니다. 몸에 둘씩 붙어있는 기관은 그만큼 부지런하고 신중하게 활동하라고 부여된 곳입니다. 눈이 둘 있는 것은 잘 보고 정확하게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손과 발이 둘씩 있는 것도 부지런하게 움직이기 위함입니다. 반면 하나밖에 없는 기관은 조심하고
절제하라는 기능이 부여된 곳입니다. 입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일 것입니다. 두 귀로 잘 듣고
두 눈으로 잘 보더라도 말은 절반만 하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말한 곳이 무려 11번이나 나옵니다. 특히 마태복음 13장 16절에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잘 듣고 잘 깨닫는
자에게는 복이 있다는 뜻입니다.
잘 듣고 구별하는 힘을 키우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적용한다면
첫째, 편견으로 딱딱하게 굳어버린 마음을 일궈서 부드럽게 해야 할 것입니다. 편견을 버리고
수용성 있고 부드러운 마음의 밭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남의 말을 들을 때 내 방식대로 해석하고 쉽게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애매하거나 서툰 표현 때문에 생기는 오해도 있지만, 잘 알아듣지 못해 생기는 오해가 오히려 더 많기 때문입니다.
둘째, 마음을 넉넉히 갖고 선한 방향으로 듣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자세는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먼저 배려하는 마음으로 듣고 생각하는 역지사지의 자세입니다. 예수님은 특히 오늘 말씀에서 듣는 자의 이러한 자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앙인의 자세가 이와 같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종종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오히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속이 좁고, 더 답답할 때가 있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신앙으로 산다는 것이 속 좁게 사는 것이 아님에도 이런 말을
듣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기독교인들이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삶의 양식대로 살고 있지 않고 미움으로 가득해 용서를 못 하며 손해 보기 싫어서 양보하지 않고, 편견으로 인해 완악해져 귀가
둔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잘 듣는 가운데 진위를 구분해 분별력을 갖추게 되면 선한 지혜가
작동합니다. 선한 방향으로 귀를 기울이다. 보면 더욱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런 식으로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매일매일의 구체적인 삶도 그렇게 변화되어
갑니다. 예수님이 “귀 있는 자들은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을 가슴으로 듣고 귀를 열어 편견에서 벗어나 수용하는 마음의 밭을 일궈내는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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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에 등이 있으면 밟는 반경 20-30cm만 보입니다. 그러면 우린 깜깜한 밤 걸음을 옮길때 아주 신중하게 발을 내딛게 됩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그냥 주변이 환히 켜진 길을 활보하며 가는 것이 아니라 조심스레 발을 디디듯 묵상을 통해 말씀 한구절 한구절을 온전히 깨닫고 삶에서 실천하라는 의미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길에 빛이 있다는 건 비행기 활주로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륙할 때 불이켜진 그 길을 따라서만 가야지 주변에 어두운 곳에 자칫 눈을 돌리다간 큰 사고가 나기 십상입니다. 이와같이 우리는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좌로나우로 치우치지 않고 세상에 한 눈 팔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길로만 가야한다고 깨닫게 해 주십
니다.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만을 붙잡고 살때 세상 것에 눈돌리지 않는 나로, 또 말씀을 눈으로, 입으로만 읽는것이 아닌 묵상하고 온전히 깨달아 하나님과 소통이 이루어 졌을때 비로소 삶에 적용하는 나로 변하도록 오늘 주님께서 제게 알려주시고 계십니다.
주여! 말씀을 붙잡고 살때 세상 것, 죄의 것에 눈돌리지 않는 저 되길 원합니다 그리고 눈과 입으로가 아닌 온몸으로 깨닫고온전히 주님과 소통하며 그 말씀을 삶에 적용하며 살도록 힘쓰겠습니다. 깨달은 대로 행할 수 있도록 함께 해 주시길 간구
하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1.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
등불은 등이므로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우리의 어둠의 인생의 길을 밝혀주는 등불입니다 어둠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발의 등으로 내가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볼 수 있게 도와줍니다.
성경은 세상이 어둠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모든 것이 불투명하고 불분명하고 신뢰할 수 없는 것이 어둠입니다. 캄캄한 밤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등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생의 길은 오직 하나인 각자의 자기 인생의 길을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은 길에 비추는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가야할 영원한 세계를 비추는 구원의 빛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매일의 삶으로 인도하는 등불이며 우리를 구원의 세계로 인도하는 빛입니다. 즉 예수님을 깨닫게 하여 진리의 영인 성령님의 인도가 하나님의 빛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범위는 발의 등과 길의 빛으로만 가게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빛으로 인도하심은 한발자국씩 한걸음씩 인도 하십니다.
3. 하나님은 왜 한걸음씩 인도 하실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함께 하는 것 즉 동행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동행하여 함께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진리의 성령이 구원의 길로 향하여 인도하십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6:8) 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동행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되고 신뢰하며 인생길을 걸어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한발자국씩 인도 받아야 하나님을 떠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4. 우리의 삶속에서 인도하심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일어나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야훼의 영광이 너 위에 임하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어둠을 밝히시리이다.(삼하22:29)
성경의 묵상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입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대화를 지향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만큼 걸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자는 두 가지 반응하게 됩니다. 순종 혹은 불순종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함이 하나님의 등이며 빛으로 가는 구원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등과 빛으로 인도되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렸을 적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숙제로 외웠던 말씀이 떠오릅니다.
내가 가야할 방향을 알게 하는 빛,
나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소망입니다.
막내가 오늘로 성년입니다.
두 아이를 양육하면서 가장 후회스러운건 학교 공부시키느라 하나님의 말씀 암송을 의무적으로라도 시키지 않은 것입니다.
이 아이들이 인생을 살아가며 가장 필요한 게 머릿 속에 있는 말씀일텐데~
나는 왜 그런 신앙교육을 등한시했는지 죄스럽습니다.
기도합니다...
아직 청년의 시기를 지나고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알고 싶은 욕구가 생겨 열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자녀들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