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2:20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역대상 29:11-12
11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십자가와 나의 죽음이 향하는 바는 단 하나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죽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로 사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삶의 전 영역을 주님께 내드립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뜻에 영과 혼과 몸으로 최선을 다해 반응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일의 시종을 주께 맡깁니다.
나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 내 인생의 시종을 맡깁니다.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권세와 주권을 지니신 하나님께 상황과 형편의 시종을 맡깁니다. 나라는 존재와 나의 인생은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 세계 안에 있습니다. ‘나와 너와 우리’가 창조의 순리와 하나님의 섭리 안에 맞물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마 6:33). 신앙생활은 나의 제자리와 가치 그리고 나의 능력과 사명을 하나님 나라와 그 뜻 안에서 찾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시며 무엇에도 제한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실 일을 정확히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때와 방법과 뜻이 최선이며 최상임을 믿으십시오. 천지 만물과 모든 주권이 주님께 있습니다(대상 29:11-12). 믿음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맡기는 전 과정을 가리킵니다. 나는 하나님이 아니며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십시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믿음으로 순종할 때, 구원을 얻게 됩니다.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로 살고 있습니까? 주님이 하시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nothing’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히 인정합니까?
❶ 모든 것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주님께 맡깁니까?
❷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믿음으로 순종하고 있습니까?
‘내가 죽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로 사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❶ 관련 자료 – 이주연 <산머루 서신> 2005.12.12.
출처 :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18549
솔개는 태어난 지 약 40년이 되면 고통스런 수행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40년이 되면 깃털이 무거워져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 힘들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부리와 발톱은 굽고 무디어져
사냥할 수 없게 됩니다. 이 지경이 되면 솔개는 높은 산으로 날아가 둥지를 틀고 반년에 걸친 자기와의 싸움을 시작합니다.
먼저 자기 부리를 돌이나 나무에 부딪쳐 빠지게 합니다. 그리고 다시 새 부리가 나기를
기다립니다. 그런 후에 자기 부리로 자기 발톱을 쪼아 발톱을 하나씩 뽑아냅니다.
그리고 발톱이 돋아나면 날개의 깃털을 뽑아 새 깃털로 바꿉니다. 이 과정을 통한 솔개만이 다시 30년의 새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한 마리 솔개에 깃든 하나님의 섭리를 봅니다.
우리 사람도 50년 혹은 60년의 삶을 살다보면 우리의 몸과 의식이 둔해지고 무거워지지는
않습니까?
➋ 관련 자료 –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2011.10.16.)
출처 : http://www.kscoramdeo.com/news/articleView.html?idxno=4681
‘예수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는 “In His Steps”(그분의 발자취를 따라서)라는 책의 제목인데 이 책은 1896년 미국의 조합교회 목사인 찰스 먼로 셸던(Charles Monroe Sheldon, 1857년-1946년)이 쓴 기독교소설이다. 한 때 그리스도인 청년들이 팔에 WWJD라고 쓴 팔찌를 끼고 다니는 것이 유행인 때가 있었다. 이 글자는 “What Would Jesus Do?"의 약자인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라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은 삶의 기준이 "예수님"이며 모든 행동과 삶을 그 분 중심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질문을 안고 살기 시작한 순간부터 행동과 삶에 변화가 찾아온다. 이 책은 1895년 초판이 발행되어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삼천만부 이상이나 읽혀졌다. 이 책의 내용 중에 이러한 이야기가 나온다. 미국의 레이몬드시에
헨리 맥스웰이라는 목사가 있었다. 그는 레이몬드 제일교회의 담임목사였다. 어느 토요일
오후에 그가 설교준비를 하고 있는데 30대 중반의 한 남자가 찾아 왔다. 그는 인쇄공이었는데 새로운 인쇄기계가 나와서 거기에 잘 적응을 하지 못하여 그만 실직을 당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집안 상태가 나빠졌고 아내마저 그만 중병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아이들도 친척 집에 맡겨놓고 일자리를 구했지만 구하지 못하여 이렇게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노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목사님에게 말했다.
“목사님 저를 그냥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에게 일자리를 하나 구해 주십시오.
그러면 아이들도 친척 집에서 데리고 와서 같이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맥스웰 목사는 난처하다는 듯이 말을 했다. 설교 준비에 방해되는 이 사람이 귀찮았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대신에 제가 기도를 해 드릴게요.”
그 남자는 쓸쓸하게 목사의 집을 떠나갔다. 그러나 이 일로 맥스웰 목사의 마음은 편치를 않았다. 그런데, 그 다음 주일날 예배시간에 그 남자가 회중석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목사의 설교가 끝나고 예배는 마쳤다. 그러자 그 남자가 회중석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섭섭한 말을 하려고 합니다. 제가 그냥 도와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저에게 일자리를 하나 구해달라고 부탁을 하였는데 아무도 제 말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과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그는 이렇게 말을 하고는 그만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성도들이 모두 놀라서 웅성거렸고 그 남자를 맥스웰 목사는 미안한 마음으로 집으로 데리고 가서 정성스럽게 돌보아 주었다.
그 남자는 목사님에게
“목사님 참 감사합니다. 예수님이시라면 아마도 목사님처럼 그렇게 하셨겠지요.”
이 말을 하며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 다음 주일날 멕스웰 목사는 교인들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오늘부터 일 년 동안 우리교회 교인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였을까 이 질문을 하면서 살도록 합시다. 우리가 사업을 하면서도 직장 일을 하면서도 공부를 하면서도 반드시 이 질문을 하고 일을 시작하도록 합시다.”
목사님의 이 제의에 교인들은 모두가 아멘이라고 대답을 했다.
사업을 하는 교인들은 그 사업을 하기 전에 과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였을까 질문을 하면서 모든 사업을 했고 변호사도 그 일을 하기 전에 이 질문을 하면서 자기 일을 했다.
그런데 일 년 뒤에 교인들의 삶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고 교회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고 한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삶의 전 영역을 주님께 내드립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뜻에 영과 혼과 몸으로 최선을 다해 반응하는 사람입니다.
❶ 관련 설교 – 131 2008 믿음을 믿음을 새롭게 (3)
저의 고백을 하나 하겠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한적한 중부 지역에 있었습니다.
좋은 주변 환경에서 주일 예배를 마치면 골프를 치러가는 교인들이 많았습니다.
소위 “초원교회”로 나간다고 표현을 했지요.
제가 늘 교회를 가기 위해 지나던 길 이름이 “Golf Road"입니다. 그 길가에는 골프장이
참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 번도 골프를 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겨울이 되면 제가 가르치던 대학생들과 함께 어김없이 스키장으로 수련회를 갑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도 저는 스키를 신어보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목사로서 골프와 스키를 한다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미국이라는 좋은 환경에서 저는 한 번도 그런 스포츠를 즐겨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만나교회에서 목회를 하면서, 청년대학생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스키를 배워야 하는 환경이었기에 스키를 배웠고, 담임 목사가 되면서는 소위 골프 8학군이라는 분당지역에서
교인들과 어울리기 위해 골프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나이가 들면 들수록 건강을 지키기 위해 골프가 좋은 운동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물론 제가 골프를 시작하고 함께 골프를 치는 교인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고, 교회에서 어떤 일이나 행사가 있을 때 마다 헌금도 더 많이 하는
사람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쉬고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저에게 그런 도전을 주셨습니다.
교인들이 골프를 하고, 목사가 골프를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고, 아니 오히려 저는
사업 하는 사람들에게 골프를 하도록 권하는 사람이지만,
그 돈의 쓰임이 적절하며, 잘 분배되었는가를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물론 제가 율법주의자처럼 이것을 하면 된다 안 된다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그런 신앙이
아닙니다. 저에게 있어서 신앙의 자유함이란 참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제가 목회를 하면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하고만 목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의
축복을 누리고 물질을 잘 사용하는 사람들과도 목회를 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 제 모습을 하나님께서 보게 하셨습니다. 골프를 많이 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관심과, 하나님의 생각과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저에게는 “건강을 위해서”라는 말이 늘 따라다녔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 그 기준이 더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중요한 고백이기도 합니다. 제가 그렇게 힘들게 목회를 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내 속에 계신 그리스도” 때문이 아니라, 늘 “보상 심리”가 따라다니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골프를 하고 나면 나 스스로 사치스럽다는 생각에, 나와 함께 한 사람들이
다른 교인들 보다는 어쩌면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생각 때문에,
병원에 있는 장기 환자들, 어려운 처지에 있는 교인들의 명단을 찾아서 심방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게 찾아다니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힘든 것이 내 삶의 헌신이라고 착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자유함을 잃어버린 채 율법적인 신앙에 젖어 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쉼이 쉼이 아니고, 때로는 내 몸을 학대하고 힘이 들어야 신앙을 지키는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앞으로도 저는 교인들과 골프도 하고 만나는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생각이 내 속에 존재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교회에서 골프를 칠 수 있는 교인들이 많다는 것,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주신 많은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골프를 하지 말라고 절대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골프를 한번 할 때, 한 소년 소녀 가장의 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라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의 삶의 방식을 조금 고쳐나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나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 내 인생의 시종을 맡깁니다.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권세와 주권을 지니신 하나님께 상황과 형편의 시종을 맡깁니다.
❶ 관련 설교 – 131 2008 믿음을 믿음을 새롭게 (3)
얼마 전 “영등포의 성자”라 불리던 한 의사의 죽음이 얼마나 많은 감동을 주었는지 모릅니다. 그 분을 추모하는 글을 함께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분은 의사로서 참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물질의 궁핍함으로 인해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부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서도 역시 하나님의 주권이 없었던 것일까요?
참다운 신앙과 물질의 축복이 꼭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축복을 받으며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잘 된다는 것이 물질의
풍요함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 교회에서 정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데 물질의 궁핍함을 겪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의 삶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물론 저는 주변에서 신앙이 좋아질수록 물질의 부유함을 얻는 사람들을 많이 경험합니다.
“하지만 신앙이 좋을수록 물질의 축복을 받을 것이다.”라는 공식을 가지고 있다면 분명히 하나님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안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물질의 부요함으로 사용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당신의 삶에서 물질에 얽매이지 않도록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때와 방법과 뜻이 최선이며 최상임을 믿으십시오. 천지 만물과 모든 주권이 주님께 있습니다(대상 29:11-12).
❶ 관련 설교 – 131 2008 믿음을 믿음을 새롭게 (3)
신앙이 없었지만 누군가 하나님과 신앙에 대해 언급할 때면 관심을 가지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700 클럽‘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패드 로버트슨을 보기 위해 멈췄습니다. 그는 온갖 질병에서 치유 받도록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불신자요 아직은 회의주의자 였던 이 비서는 그 사람이 손에 기형적인 골격 구조를 하고 있는 사람이 기적적으로 치유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손이 기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는데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평온함과 고요함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한 줄기 빛이 자신의 손에 비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순간 온전히 치유가 되었고, 이 후로 하나님을 믿고 신앙이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그녀가 보고 있던 프로그램이 생방송이 아니라 재방송이었다는 사실입니다.
- 댓글을 통한 금전요구는 사기성 스팸입니다.

1.어떻게 해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게 할까?
내가 이미 마음에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힘을 다해 준비해야 합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함으로 내 마음으로 사는 정욕 욕망 탐심 등 자유의지를 하나님의 성전에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세상적인 내 마음을 영혼속의 하나님의 성전 안에 있는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마음을 감찰 하시는 하나님은 정직을 기뻐하십니다.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림으로 정성된 마음으로 주의 계명과 권면과 율례를 지켜 모든 일을 하나님과 함께 행하게 합니다.
2.성전은 왜 짓는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짓습니다.
거룩한 하나님 여호와의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함으로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입니다. 주권도 주께 속하여 만물의 머리가 되십니다.
그리하여 주의 이름이 거룩함으로 주는 높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왕이신 하나님이 사시는 나라 즉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마6:33) 그리하여 거룩하신 하나님은 내 영혼에 하나님의 성전이 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에서부터 시작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신앙생활은 나의 제자리와 가치 그리고 나의 능력과 사명을 하나님 나라와 그 뜻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3.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므로 행함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기의 삶의 전 영역을 주님께 드림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뜻에 영과 혼과 몸으로 최선을 다해 반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실 일을 정확히 알고 계십니다.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권세와 주권을 지니신 하나님께 상황과 형편의 시종을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평안과 행복한 구원을 얻게 됩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내 생각과 자유의지를 십자가에 못 박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구원의 복이 되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뜻에 영과 혼과 몸으로 최선을 다해 반응하는 사람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암송해서 너무 친숙한 갈라디아서 2장20절 말씀이 신앙의 연륜이 쌓일수록 불편해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멀어진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여전히 팔딱거리며 살고 있으니 예수님이 내게 머무르실 수가 없음을 아는데도 내가 죽지 않습니다.
요며칠 같은 본문이라 하나님의 숨결 묵상을 하며 하나님이 내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을 듣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오늘 목요찬양집회에서 들은 말씀처럼 내게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 생령이 내 속에 숨이 되어 마른 뼈가 재구성 되듯이 내 신앙의 모습이 예수 그리스도의 DNA로 재창조되기를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매순간 WWJD~~?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민감할 수 있도록 깨어 있기 원합니다.
갈라디아서2:20.
아멘.
물질이 부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사시는 분들을
볼 때가 있다.
감동하고 이해하지만 현질에
흔들린다.
**예수로 사는 것**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모든 일의 시종을 맡기라고 하셨사오니
하나님, 저의 마음과 행동을
지키시고 도와주세요.
이럴 때 주님은
어떻게 하실지
주께 민감하게 반응하게 하소서.
내 안에 살고 계시는 주님!
오늘도 힘차게 살아내게 도와주세요.
감사합니다. 찬양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