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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광야에서 부르심

출3:1-5

‘슬픈인생’

모세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당시 애굽에 있던 유대인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아들을 낳으면 다 죽이도록 되어 있는 환경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석 달 동안이나 갓난아이였던 모세를 숨겨두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였을까요? 개연성 있는 해석은 석달을 미숙아 상태로 먼저 태어났으나, 건강해서 살아남아 있을 수 있었다는 기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미숙아로 태어나 서글픈 사연을 가진 모세, 그러나 갈대상자에 담겨져 나일강에 띄워졌던 모세는 건짐을 받아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자라게 됩니다. 궁중에서 왕이 갖추어야 할 리더십을 배우고 남부러울것 없는 삶을 살게 된 것이죠. 궁중에서 모세는 ‘Somebody’ 였습니다. 그러나, 권력지형의 이해관계로 인해 모세는 왕자의 신분에서 변방인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Nobody’ 가 되어 버렸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나는 지금 여기서 이러고 살 사람이 아닌데” 말이죠. ‘비참함’ 기억할 것도 없고, 누구도 알아줄 것 업는 인생, 그래서 투명 인간 같은 존재로 ‘잊혀진 광야’ 에 있는 인생 말이죠.

‘초라한 곳에서 시작된 만남’

모세는 그렇게 잊혀진 땅, 잊혀진 사람이 되어 40년간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쳤습니다. 그렇게 양을 치다가 별안간 희귀한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바로 출애굽기 3장 2절 말씀에 떨기나무 가운데 불로 임하신 하나님의 부르심 이였습니다. 모세의 초라함과 더불어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부르심도 역시 초라했습니다. 부르심이라면 응당 화려하고 웅장하고 뭔가 특별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더듬어 보면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던 장면은 모두 ‘초라했습니다.’ 어거스틴도 그저 정원을 걷다가 ‘성경을 읽으라’ 는 음성을 듣고, 종교개혁자 루터도 소위 ‘탑 체험’ 으로 그의 작은 연구실에서 있었던 회심사건 이였으며, 존 웨슬리도 길을 걷다가 작은 모임에서 들려오는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는 소리를 듣고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되었고, 1904년 웨일즈에서 10만명이 넘는 회심자를 일으킨 영적부흥 사건도 사실 17명이 모인 작은 수요일 집회에서 성령체험으로 시작된 사건 이였습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곳에서, 모든 것이 포기된 곳에서 하나님은 가장 긴밀하게 우리의 삶을 파고 들어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기대와 하나님의 임재는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들죠. 그러나, 모세의 인생은 그의 계획대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대로 된 인생 이였다는 겁니다.

이런 생각을 해보셨나요? 애굽을 떠나 광야를 지나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광야를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하는 것을 말입니다. 모세의 리더십은 교실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그가 살고 있던 광야에서 배운 것이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그를 하나님께서는 기억하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한 가지 요구’

하나님은 그 부르심 가운데 모세에게 요구하신 것은 한 가지였습니다. ‘네 발의 신’을 벗으라는 것 이였습니다. 이를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데, 한 가지는 이제 인생의 속도를 나에게 맞추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을 내려놓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왜 이런 요구를 하셨을까요? 하나님께는 우리를 향한 분명한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계획하심을 믿고 일상에서의 부르심에 순종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가장 크게 배우고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이 중요하다고 느낀 이유는 무엇인가요?
결단해 봅시다.


추천도서

『우연히, 바로 그때! 하나님의 인도하심』
원용일 저 (브니엘, 2020.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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