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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구덩이에서 시작되는 구원

창37:18-24

‘광야 구덩이’

우리 인생에서 만나는 광야 구덩이는 선과 악의 문제로 재단할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창세기 37:18-24은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한 구덩이’에 던진 일입니다. 구덩이 앞에 ‘광야’라는 말이 있습니다.(창37:22) 요셉이 형들을 만나러 간곳은 헤브론의 ‘도단’ 이라는 곳이며, 그 곳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비옥한 이즈르엘 평야의 최남단에 위치한 곳으로서 ‘광야’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헤브론은 포도 농사가 아주 잘되는 비옥한 지역이고, 요셉의 아버지는 사랑하는 요셉을 혼자 형들이 있는 그곳에 보냈기에, 목숨의 위협을 받을 만한 위험한 광야는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에 ‘광야 구덩이’는 지리적인 의미의 광야가 아닌 인생의 광야, 즉 어두운 구덩이로 던져진 것입니다.

던져지다

우리 인생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던져진 곳’에서 특별한 일을 경험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연’이라는 말을 쓰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일어나는 일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광야로 던지실 때는 이유가 있습니다. 본문의 사건은 요셉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꿈꾸는’ 요셉이 미웠고, 요셉의 꿈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증명하기 위해 구덩이에 던집니다. 인생의 광야 속으로 던져진 것입니다. 요셉의 광야는 팔려간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의 신분으로 구덩이에 던져집니다. 그리고 거기서도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주인의 아내를 겁탈하려고 했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요셉은 감옥에 깊숙이 던져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어떤 구덩이에서도 성실했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고 형통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덩이에 빠진 요셉을 매번 건져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요셉의 성공이 아니라, 요셉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즉 요셉의 이야기는 ‘우리 꿈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 언약의 성취’ 로 보아야 합니다. 요셉은 노력해서 성공한 것이 아닌, 성공하도록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요셉에게는 수식어처럼 따라붙는 단어 ‘형통’ 이 있습니다. ‘형통’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찰라흐’는 ‘밟고 건너가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은 산도 없고 강도 없고 장애물도 없는 것을 형통이라고 말하지만, 요셉의 형통은 구덩이를 넘고, 유혹을 이기고, 감옥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광야 구덩이에서 잘 된다!

광야 구덩이 속에서 구원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광야의 시절’을 지나고 나서야 환하게 보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광야 구덩이에 던짐을 당했지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우리에게 성공과 풍요를 주시는 것이라기보다는,그 어떤 고난에서 기도하고 견디는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붙잡아 주시고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광야 구덩이’에서 잘 되는 축복입니다. 즉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따라 산 사람들의 특징은 이 세상에서 풍요를 누린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더 나은 하늘나라 본향을 바라보며 살다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영웅들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 믿음으로 잘되고, 믿음으로 축복받고, 믿음으로 성공했다는 이야기들이 없습니다. 오히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고난을 견디며,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일을 했던 사람들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가장 크게 배우고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이 중요하다고 느낀 이유는 무엇인가요?
결단해 봅시다.


추천도서

『가나안에 거하다』
이진희 저 (두란노, 2021.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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