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두려운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행 27:20-26
사명이 무엇인지?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에게 있어 그의 사명이 무엇인지, 풍랑을 마주한 사람들에게 있어 스스로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지, 사도 바울이 믿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지 증명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로 호송되는 가운데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납니다. 사명을 가진 사람에게 풍랑은 명확한 증명의 기회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환난에 불과합니다. 풍랑을 만났을 때 우리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버릴 수 없는지 결단하고 선택해야만 합니다. 선택과 결단에 있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목숨이 걸린 중요한 선택과 결단일지도 모릅니다. 어려운 것만 같은 결정과 선택이 ‘사명 앞에 설 때’ 참으로 단순해집니다.
‘유라굴로’를 만난 배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지만, 사도 바울만은 두려워하지 않고 사명자로 우뚝 섭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사도 바울의 정체성이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이 예비하신 일을 증언해야하는 증인이었기 때문입니다. 풍랑은 하나님의 크신 계획의 과정이었고, 바울은 이후 증인의 삶을 감당하며 수많은 도시를 누빕니다. 하나님은 풍랑을 만난 배 위의 생명 뿐 아니라 수많은 도시의 생명들 또한 그에게 맡기셨습니다.
두렵지 않다!
“…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행 27:25-26) 갈 길을 알면 두렵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배를 타고 가는데 며칠 내내 풍랑이 일어났다고 생각해봅시다. 컴컴한 먹구름 속에서 해도, 별도 보이지 않습니다. 나침반이 없던 시대에, 해와 별은 길을 알려주는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니 광풍을 만난 사람들에게 해와 달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풍랑은 구조되리라는 작은 소망마저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어두운 시간 중에 풍랑을 만나 소망까지 끊어졌지만 지금 있는 곳이 종착점이 아니기에, 가야할 길과 사명을 분명히 알기에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광풍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고백을 하며 사명의 자리에 설 수 있었을까요?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시 23:4) 어떤 이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눈에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입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기억하며, 인생에 광풍이 찾아왔을 때 붙잡을 것과 버릴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래야 두려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나는 두렵지 않다!’라고 외칠 수 있는 인생은 참으로 복된 인생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가장 크게 배우고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이 중요하다고 느낀 이유는 무엇인가요?
추천도서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었다』
홍민기 저(규장, 2019.12.19.)
